우리들의 아남네시스. 고등학교 때 벌써 무인도가 땡기는 클래식은 못되나 형이상학......
집과 재산은 차이가 있는가? 우리는 잘 모르고, 죽음까지 이르는지 모른다. 그렇게 죽을 것 같았던 군대마저도, 선임이 되고, 후임에게도 자기 편안함을 불완전하게나마 권하고, 누워서 책을 보다가, 티비를 보다가, 후임과 대국문학자처럼 농을 까다가,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빛, 등화관제를 하는 순간 바라보이는 연병장은, 내가 미국 영화 자이언츠의 주인공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선사한다. 아직도 우리는 귓가에서 맴도는 한석규의 말을 잊지 못한다. 고향이 어디야. 고향이. 군대에 있을 때는 고향이 역력했다. 사회가 역력했다. 군대만큼 사회라는 말을 고향과 비슷하게, 떡볶이, 라면, 핫도그 설탕 뿌려가는 곳으로다가 상상하는 때가 있을까 한다. 나는 양구에서 이런저런 잡지를 많이 구입했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 읽었고, 뒷자리에 앉았던 동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동자는 혹시 삼척 동자인지, 환하게 웃으면서 좋아했다. 휴가나가는 군인이 약한 사람이긴 하나, 실제 거기까지 나아가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스즈키 오토바이 회사 사장이고, 어떤 공부 잘하는 청년과 콘도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한국 회사에 전화를 걸어 청년에게 하야부사 한 대를 선물로 주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가능성은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랗지만, 실제는 바늘구멍처럼 작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아남네시스는 가능성에 있는지, 아니면, 실제로 해봤던 작은 사진들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친구에게 국선에 내 대신 내보내라고, 오토바이 사진을 하나 보냈는데, 사진 국선이 아니고, 회화 국선으로..... 가까운 뒷배경은 아주 볼품 없는 소나무가 있었고, 나는 볼품 없는 여수 광양 소나무여~ 하는 듯한, 앞으로는 적당한 방파재와 도로를 경계짓는 얕은 담이 있었다. 담에 걸쳐, 누군가 근처에서 캐낸 굴을 까서 껍질들만 놔두고 갔는데, 그것이 하얗게 말라있는 것이었다. 그 앞으로 오토바이를 대고, 사진을 찍었더니, 그렇게도 시차적응이 필요한 사진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 그런 말이 있다. 사람은 물에서 나왔으니, 물로 돌아갈 것이다........
있는 전문적인 용어로, 현실태가 아남네시스일 수는 없다. 현실태는 현실에 넘친다. 그래서 현실 太이다. 가능태와 잠재태마저도, 아남네시스에서는 제외된다. 우리가 국민학교 때 착한 아이를 그다지 전 생애에 걸쳐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철학은 공부하지 않았어도, 자기 삶에 뿌리를 두는 지혜에는 누구나 다들 제갈공명이 있기 때문이다. 추억 만들기 같은 것도 아남네시스일 수 없다. 해수욕장 가서 수박을 많이 먹어도, 나중에 공부를 못하면 그때 수박을 너무 많이 먹어서, 머리에 물이 찬 것이 아닌지 헛된 인과를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시원이나, 도서관에서, 하나님의 강권처럼 수박을 한쪽 먹는 것도 그렇게 불품 있어 보이지 않는다. 모습은 아남네시스, 책상에 앉아 공부하지만, 그 물이 다시금 어디 해수욕장 근처에서 버러져 냄새나는 수박이 될런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남네시스, 포기할 순 없다. 전라도에서도, 경상도에서도, 강원도 고랭지 채소에서도, 농산물 값이 춤을 추어도, 심지어는 적자가 나는 한이 있어도, 햇빛에 노동을 보태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때 소를 팔아서 공부를 시켰던 사람은, 나 혼자일 수 있다. 나는 돈을 받지 못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의 돈을 다 받았다면, 여의도의 빌딩은 다 내 것이라고 선언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받지 않았고, 그러나, 아남네시스, 그 많은 돈을 받은 사람은 나일 수 있는 것이다. 트럭 운전사도 마찬가지이다. 늘 중간 유통이 문제이다. 그곳은 델타 삼각지인 것 같다. 적조 현상이나, 해파리떼들이 창궐하는 것과 비슷하다. 농민들이 거기다 황토 흙을 뿌리고, 쥐치떼들이 해파리떼를 공격하여 잘 먹는다는 소식으로, 우리는 못먹으나, 쥐포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혜의 학교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돌과 풀의 명상가는 그것을 두고 무엇이라고 했는가? 현실태가 이데라고 했는가? 아니면 가능태가 이데라고 했는가? 우리의 기억은 그래서, 약간, 아주 스코시는, 일제 강점기 기간의 소설들에 아직도 젓줄이 데어져 있는지 모른다........ 옛날에는 흙이 아주 질펀했으나, 지금은 우리 소년소녀들이 한 줌의 흙가지고 직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리고 또한 지금은 분명 그보다 발전한 감이 없지 않아서, 한국의 독립이 일본의 독립이 되는 쌍방향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대한 김부식의 가필처럼, 제한된 역사에서의 쌍방향성은 아남네시스의 피탈의 형태를 띠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세상 어느 누가 불타는 아남네시스라고 주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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