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틈만 나면 영국, 우리나라는 호주의 빅토리아 주정부가 되고 싶었던 모양
어떻게 그렇게 연결이 된다. 사실 우리나라 이런저런 서원이니 고택이 그렇게까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 병산서원이 될 만큼 영향력이 있지 않은데, 일종의 관계 과장의 오류라고 생각이 된다. 관계 과장의 오류이긴 하나, 초구와 초크가 있는 법이고, 그 맨 처음의 치기가 가르타고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니발. 알렉산더.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마쎄도니아. 일종의 팔조 금법처럼. 안으로 길게 돌고, 세 번 돌고, 네 번 돌고 해도, 그 맨 처음의, 우리나라 방송국은 나라를 팔아먹으면서, 호주의 빅토리아 주정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은, 불꽃 토네이도처럼,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폼페이우스가 그랬다. 카이사르가 뒤를 쫓아가자, 부지런히 언덕을 넘었다. 그리고 늘 승리에 자신이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이집트에서 죽었다고 하나, 나중에는 폼페이우스 화산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쫓아가고, 격퇴하고 하는 것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다. 카이사르는 한국 사람 같고, 폼페이우스는 이태리 사람 같기 때문이다. 영국 여왕도 그렇다. 영국 여왕은 친한파 같고, 영국 왕실도 친한파 같기 때문이다. 다만, 늘 결정적일 때, 행보가 이상하고, 교황과 쌍으로 단 한 번의 주도권을 잡아본 적이 없어서, 우리나라가 북한과 결합하여, 세계의 빛이 되는 것이 좋은 것처럼, 어찌 영국 왕실과 바티칸이 하나가 되어, 어쩌고 그렇겠는가? 우리나라는 어째서 이 무지한 세계에, 북한과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단 하나, 분열이 사탄에게 이롭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사탄이 이롭다는 것을 깨달아 도리어 분열을 이어간다고 한다면, 통일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지 않고 지낼 것이다. 우리는 통일을 위해,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말을 타고. 수많은 정말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폼들을 갖고. 어쩌고 하자. 어쩌자. 물러나라. 물러나라. 그것들 모두 앙드레 가뇽의 주제들처럼, 보이지 않는 전방 백미터를 날아가는, 유탄발사기 같았던 것이다. 문제는 사탄이다. 사탄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아서 더욱 속도가 나는 것인지, 그때부터 이상하게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일본이 급격히 낙후가 된 것은, 다만 지리적인 원인 때문인 것이다. 일본은 사탄에게 이롭다. 그러나, 한국과 가깝다 보니까, 한국이 비사탄국가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탄 가능성이 금세 흐지부지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막대한 경제력 때문에, 사탄이 일본을 존중하였으나, 지금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금세,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이 발달한 것은, 전부 나와의 싸움 때문이었다. 중국은 금방 이념이 사라지고 말았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러한 것이다. 어떻게든 주자를 괴롭히는 정당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러나 주관이 강하게 되면, 별로 자기들에게 이로움도 없는데, 나에 대해서 적대적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부유하여졌다. 어찌 생각하면 대단히 우습고, 민망하고, 축을 잡고, 바둑도 못하는 사람이, 만주 벌판을 계속해서 내몰았던 것이 너무 기가 막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는 아직까지도 지옥의 리얼리즘을 갖고 있다. 일본이 많이 갖고 있고, 대신에 경제적인 국가로서 부를 과시해야 했는데, 작가도 따로 없는 판에 지옥의 리얼리즘이 확정되어 버리게 된 것이다. 한국은 아무런 목사들이 없다. 한 명 밀어봤자, 금세 외국 사람들을 인용한다. 얼굴이 북해도 대학교 외국인 남자처럼 생겼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얼굴에 탑이 보인다는 것은 영광인 것이다. 함께 걷는 중에, 공중의 성경 말씀을 인용할 때는, 그것의 처음이 습관인지, 아버지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고민과, 말못할, 어려움의 어떤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을 만큼 경이로운 것이다.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게가 유물론적 문예비평이 되었었다.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도 배우고, 저렇게도 듣고 했었다. 가난하니까 신학대학 간다는 말은, 기가 막힌 과학적인 천사와 세상 편한 사탄과의 합성인 것이다. 가난해서, 병산서원처럼, 그것의 어떤 흐름처럼, 이렇게 선택하고, 저렇게 연습하며, 함께 도와주고, 일으키고, 같은 노래들을 많이 부르고, 사람들의 뜻을 따르고, 가난하니까 그 안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을 지키고, 혼자서 좋아하고, 어떻게든 함께 하고 싶고 하는 것이다. 내가 부자면 안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부자면 학교에서 살지 않고, 강남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도 분명, 헤겔의 근원적인 레퍼적인 속성을 간파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규명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천년 레퍼처럼 떠들면, 마침내 우리에게서 변증법적 지양이 생길 것이다. 그것이 바로 헤겔인 것이다. 난 네가 아침부터 떠드는 것이 싫어. 나는 네가 책이라고 사서, 읽는 것을 내게, 자랑하는 것이 싫어. 그렇게 강남에서, 해가 백년 동안 지고, 백년 동안 뜨고, 사람들이 동상처럼 여기다가, 마침내, 우리 한국말 특유의 힘까지 보태져서, 대상의 일반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집으로 가자고, 거기서 함께 내려오는 것이다. 강남에 살면서, 비싼 차도 타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자주 가지 않았을 것이고, 집에서 학교로도 자주 가지 않았을 것이다. 돈이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 병점 근처의 모텔에서 잤을 것이다. 아니면, 돈이 많기 때문에, 좋은 집 한 채를 저렴하게 구해서, 적당히 마당을 보면서, 겉으로는 가난한 학생처럼 학생들 사이에서 살았을 것이다. 모두가 다 공부를 위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우리나라 학문의 발전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어떻게든 노력하고, 아름답게 힘썼을 것이다. 하지만 부자가 어떻게, 낙타의 바늘 구멍을 지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을 인용하는 것은, 바늘 구멍이 아니라, 터널 같은 것을 자기 정원에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은데, 존재는 터널 앞에서 당연히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존재는 터널을 앙드레 가뇽한다는 말이 있다. 낙타의 바늘 구멍은 성빈 학사 남자동 일층의 모퉁이와 같다. 이층이나 삼층, 빛이 많이 들어오는 사층은, 크기가 정확히 들어온다. 그런데 일층은, 가난한 신학생에게는 매우 넓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고집이 없고, 편안하며, 음악이 있고, 이상하게 빛 바랜 영혼 같은 것이다. 문을 열고 다녔기 때문에, 문이 열려 있어서, 곧 사람이 들어올 것으로 안에서 기다리면, 저녁 식사 시간이 되도록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문을 열고, 어, 현균아. 뭐해? 응. 나는 문이 열렸길래, 사람 기다리고 있었지. 문이 열려 있었어? 응. 얼마나 고조선 같은지 모른다. 막 웃고. 배워서 딱히 실천한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는 우리끼리 저녁 먹는. 글을 쓰려고 하면, 그 비좁은, 넓은 낙타의 바늘 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여름 저녁에는 그래도 시원하고. 씻고. 공부하고. 저녁 불을 밝히고. 모두가 다 아름다운 책귀신에 휩싸이고. 몽달 귀신처럼 꿈 속에서 돌아다니고. 처녀 귀신을 만나고. 그 사이에서 내 이름은 신현균이고. 저녁에, 저녁에도 야간 학부가 생겨서, 그 야간 학부의 수업조차 호기심이 생기고, 청강을 하다 보면, 바깥에서 야간 학부가 없던 때의 버릇처럼, 여자 애가 미친 소리를 내면서 웃고, 지나가고. 수업을 하다가, 우리끼리도 웃고. 누구냐고, 묻고 답하면 대충 알던 공동체였으니까, 사회복지학과 아무개인 것 같다고 답하고. 그러면 누군지, 증명사진처럼 떠오르고. 수업에 배워서, 뭘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 달콤한 생강차처럼 달콤한. 입술은 아리고 쓰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 사이에서 작가가 될 것 같은, 최명희의 불꽃이 있었던 것이다. 혼자만 작가가 되면 슬퍼할까봐, 학교 전체에 문창과가 생겨서, 사람들과 함께 했지만, 더더욱 작아진, 마음으로 내용져진, 소설을 쓰기란 어려운 법인 것이다. 요즘 말로, 누군가 취재를 위해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왔다고 치자.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위안부 소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처음에는 칵테일 사랑도 부르고, 섹시한 남자도 부르고,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같은 것을 불러도,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오면, 얄짤 없이, 가난한 신학생들처럼, 위안부 소녀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현상이, 그때는 없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의 호주 산불이, 과거의 우리나라 영화의 빈곤에서 없었다고 하면 곤란한 것이다. 얼마나 바보선언처럼, 거의 날것으로, 기를 쓰고 노력해야, 겨우 몇 편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고, 소설이나 영화는, 막상 작가는 학교와 연이 깊으면서도, 찾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할까? 어째서 우리는 소재를 바깥에서 찾을까? 내가 철학과 수업을 들으러 갈 때였다. 하나님은 내게 함께 너처럼 청강하는 신학생이 없느냐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 나는 한가하고, 그들은 교회 생활로도 바쁩니다 하였다. 그리고 나는 잘난 데가 있고, 그들은 소박한 마음이니, 어찌 복잡하고 현란한 철학을 하겠습니까? 하였다. 하나님은 슬프구나 하셨다. 그리고는 내게 성경책은 읽을 만 하느냐고 하셨다. 어렵고 복잡하여, 솔직히 말하면, 잘 읽지 못합니다 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철학과 수업을 듣고, 문학책을 읽고 하는 것이냐 하셨다. 나는 답하였다. 아버지. 저는 반짝이는 물빛이 좋고, 새가 좋습니다. 성경에 그것이 가장 많고, 철학에도 문학에도 없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웃으셨고, 진리라고 하기에는 표현이 너무 문학적이다 하셨다. 기숙사를 지을 때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바위를 부수고 들어간 내용이 바깥으로 보였다. 때로는 연인과 함께 갔고, 노동자들과, 포크레인과 함께 갔으며, 계속되는 공사 현장과 함께 갔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풀들과 함께 갔었다. 우리 학교는, 말 천재들의 경연장이었었다. 드라마의 배우들이고, 연애인들이고, 가수들이고, 세계의 석학들이었지만, 그처럼 찬란한 공야장이 있을까 싶었다. 나는 원래, 모든 대학이 그런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에 공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했어도, 대학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들이 늘, 훌륭하고, 처음에는 어려울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그러나 왕건처럼, 여색을 밝혔고, 금세 나의 세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인간은 어째서 자유롭지 못한가? 하는 것에 천착하였다. 그래서 교회 활동을 하는 대신, 과감하게, 학교에서 주말에도 공부하는 것을 택하였던 것이다. 책에서는, 와플처럼, 꿀이 나왔다. 모르는 철학적 문장들이라는 것은, 꿀벌의 비행과도 같은 것이다. 여학생들은, 숱한 정신적, 육체적 난제들 사이에서, 행복해 하면서도, 어려워 했었다. 치킨과 맥주를 먹는 것이 가장 좋았다. 가장 가정적이었고, 우리들도 좋았지만, 돈이 많이 드는 행사였던 것이다. 항상 공부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시간이라는 것은 그래서 복합적이었던 것이다. 우정이 그렇게 좋았다. 이야기의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방안이 있었다. 헤겔의 철학이 항상, 그와 같은 주체의 자각, 그러니까 자기 의식에 관해서 말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당연히 그와 같은 능력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더욱 나아가서, 붓글씨의 붓처럼, 마르지 않는 먹을 머금고, 존재를 말하고, 이어가고 했던 것이다. 나는 마르지 않는 수묵 담채화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서, 나도 좋아하는 한국 소설이 전부였던 것이다. 꿈에 사람들이 버스에 함께 올라,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는데, 겉에 쓰여 있는 글을 읽어보니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광고였을 것이다. 여학생은 예민하고, 자기애가 깊고, 비활동적이기 때문에, 사소설적인 볼륨이 있을 것 같았으나, 늘 항상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이얼을 맞춰보고, 북북서로, 혹은 남남동으로, 그래봤지만, 다이얼을 맞춰보다가, 서울대도 가고, 방송국에도 가고 그랬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마땅한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마리아 칼라스처럼 생긴 수학과 여학생과 결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때에는 지구의 유일한 전쟁에 관한 시각에 있었기 때문에, 모자란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지금은 자족하고, 혼자서도 죽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함께 죽고자 하였기 때문에, 아름다움 말고는, 내게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것이 싫기도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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