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한국인
우리는 지금 알 수 없는 빠짐 속에 살고 있다. 그것에 관한 보고는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편안하다. 그리고 한국말을 들을 때 편안하고, 한국 연예인을 볼 때 편안하다. 외국 음식이나, 외국 여행, 그리고 외국 연예인들은 우리가 외국말을, 한국 외국어 대학교, 못하기 때문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못하는 것을 두고, 억지로, 억지로, 끊임없이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잘 하는 것을 집중하고, 보다 빼어나고, 아름답게,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듣고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제작자들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외국 음악이나, 외국 드라마, 그런 것을 다만 햄릿이나, 로미오엔 줄리엣으로 봐서 그렇지, 다른 것들은 우리가 외국어 대학교,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좀더 노력해야겠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쉘부르의 우산만 해도 그렇다. 완전 한국 우산 같지만, 그것이 프랑스 영화다보니까, 우리가 다만 이성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진한 감성, 아름다운 감성, 아름다운 사랑도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생각을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감성이 부족한 것이, 이성이 부족한 것과 연관이 된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성을 개발하는 데는, 유학하는 학생들의 수가 제한되어 있고, 그들이 마지널한 지식에나 관심을 가져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정신병에 있기 싫었다. 착한 사람이 잘난 척을 해야, 웃기고, 사랑스럽고 하지, 조금 잘난 사람이 잘난 척을 하면, 어딘가에서 깡패 짓을 할 것 같고, 허영이나 일삼을 것 같고 그랬다. 그것은 분명 정신병과 관련을 맺었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을 타산지석 삼아서, 내가 좀더 노력하고, 공부하고, 질서를 확보하고, 선에 힘쓰고, 우리나라 고전 공부에도 힘을 쓴다면 모를까, 정신병에 걸린 사람 옆에서, 똑같이 맛없는 음식이나 먹고, 정신나간 건물이나 돌아다니고, 또다시 마지널한 지식의 캠페인, 발표회나 따라다닌다면, 마침내 정신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난한 중에도 있었고, 정신병에도 있었다. 조금 서울 정신병에 있다가, 고향 생각이 나고, 다시금 그 옛날 가난한 때의 정신이라도 되찾는 템포를 살았던 것이다.
모든 국가는 정신병에 사로잡힌다.
우리가 외국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나라는 가난과 정신병의 두 갈 수 없는 곳에서 영원히 맴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양의 지식이 좋아서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겨울의 추운 날, 이광수의 순옥과 같은, 이상한 의사와 관심을 가질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의 맨 처음은, 추종이고, 우리의 것이 항상 기형적이었다면, 경험적인 단계에서, 우리 자신의 발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험하고 하였던 것이다. 정신병을 외면하는 것도, 정신병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목적으로서의 분명한 문법이 없다면, 정신병을 케어하다가, 다시금 의사와 환자를 바꿔서 실험하는, 똑같은, 햄스터밖에 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와 같은 종합적인 사고는, 필연적으로 차원을 구성하는데, 우리는 단계의 의미에서, 삼차원은 되었던 것이다. 조선을 압박했던, 일본은, 한 이차원은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구분과 단계에서 많이 벗어나 있으나, 유튜브를 보면, 허구한 날, 그와 같은 미침과 국가의 논쟁으로 뜨겁다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사고 방식은 정작, 장작, 공중파에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왜냐하면, 너무 긴밀하고, 첨예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도, 자기에 대한 아무런 성찰이나, 문법, 형식적인 반성이 없다 보니까, 무조건 발견되는 것들을 말하는 편이다. 공중파의 편을 들기도 어렵지만, 유튜브의 오래된 시소로스를 타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늘 외국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처음에는 김신조와 같은 단순한 사고인 줄 알았다. 영문학과 미국 영화의 환상적인 연결이 그만 끊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재밌는 것은, 우리나라에 철학자 한 명, 소설가 한 세 명, 그렇게 해서 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신조들처럼, 알고 보니,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는, 종로까지는 도달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포석정이라는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안압지, 압구정 했었다. 포석정이라는 것은, 그와 같은 유물과, 유품, 경주 전체가 아름다운 그림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망해가는 나라의 포석정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김신조들처럼, 종로에는 도달하는 사람들이 되어 있는 것인가? 영화는 기다랗게 드리워진 올가미와 같고, 올가미 같은 수로에는,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술잔 하나가 조심히 돌아다닐 상상력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포석정에는 사탄의 얼굴이 드러날 것 같았으나, 이념이 사라지고, 교육은 황폐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는 술 잔 하나의 여유도 없으면서도, 그것에 취하고, 조심조심,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만, 그것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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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너무 추궁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아직 이념 서적이 있고, 기계적인 교육의 연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도한 세계관적인 판단은, 도리어 사탄을 어린 그들에게 침입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외국 드라마는 원래 재미없는 줄 알았다. 우리가 외국어 대학교, 영어를 못하고, 번역을 잘못해서, 장면들의 페이소스나 대화들의 뉘앙스를 잘 모르는 것인 줄 알았다. 아주 작은 차이에서도, 작품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면, 어째서, 그렇게 과도한 세계관과 문법들을 항상 작품에서 차용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표현처럼, 페이소스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페이소스처럼, 케찹처럼, 찾다 보면, 핫쏘스, 항상 마음이 서글퍼지게 된다.....
몽고군이 고려를 몇 차례 침략하고도, 정복하지 못한 것은, 그와 같은 차원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