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은 시니피에인가 하는 것을 두고
보다 세련된 인용과, 초상, 빵굽는 냄새의 거리를 가져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는 늘, 즉흥적이고, 인접적이며, 그것은 발음하기에 따라서는 집적적이다. 맑스주의 비판 문예론이 그런 것을 말한 것도 아니고, 잭슨 폴록류의 현대미술가들이 그것을 기치 올렸던 것도 아니다. 작고 오래되고 귀여운 자동차를 타고, 우리나라만 뱅글뱅글 수십바퀴를 도는 것도 아니다. 나는 가능했다. 내 오토바이 살 돈 정도면. 나는 현대미술가이고, 피카소 같은, 글쓰는 사람이며, 마구 쓴다고 해서, 마구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차이가 있는지, 맑스주의 비판 이론가이다. 삼십구번 국도 공주 근처에서 나는 멈추었다. 그 무엇이 내 머리를 마구 흔들었기 때문이다. 전날 시흥에서 친구를 만나고, 어느 목사를 만나고, 수상한 안개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상벌체계, 아파도 살아야 하는 세상을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내 여행기와 오토바이 이야기를 했고, 프라이드 치킨이 유난히 맛있었고, 적당히 맛있는 알 수 없는 등급의 수박을 서비스로 먹었다. 서비스는 서비스이나, 문학적으로 다시 쓰면 늘 새롭게 된다. 그것은 적당히 맛있는, 그러나 가슴을 파고드는 촉촉한 여유였다. 내내 오랜 만에 마시는 생맥주가 있었는데도, 작가의 헤테로를 도전하는 주변의 헤테로가 대단하다. 헤테로는 존재론적 차이를 두고 발생하는 효과를 뜻한다. 자주 말하는 것이지만, 잘 모르는 도시를 내내 돌고 오다보니 내 말에 그런 것이 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는 것은 아주 진부한 것이고, 다른 것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유명한 예술가로는, 추사 김정희가 될 것이다. 이런 막무가내도 헤테로이다. 헤테로는 생각보다 깊다. 테헤란로라고 있지 않은가? 해태 타이거즈는 진부하다. 퇴계로라고 있지 않은가? 해태 타자들이 뒤늦게 점수를 따는 모습이랄까? 우리들의 걸음은, 상념은, 실은 헤테로의 천국이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이루수와 달라서, 유격수나 삼루수에게서 공을 받아서 일루수로 던지는, 어쩌면 정해진 헤테로. 그것은 헤테로가 아닌 것 같은. 유격수에게 공을 받아서, 이루 베이스 찍고, 아무 생각 없는 유리 상태의 삼루수에게 공을 던지는 것. 상대 선수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헤테로이다. 효과. 그것이 연원을 알 수 없는 헤테로 용어의 가장 안정적인 한국어일 것이다. 그러나 효과와 헤테로는 다르다. 명사형이 뭔지 모르겠다. 퇴계로까지는 막강하다. 그것의 반대말은 모노이다. 헤테로가 좋다는 것은 쉽게 직관할 수 있다. 한번 가본 적 없다면서 심부름을 거절하는 사람보다는, 한번 가본 적이 있다고 쉽게 나서면서 경비를 조금 더 요구하는 사람이 빛이 나는 것처럼. 헤테로리어티가 아니었나? 그렇다면 모노가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아픈 몸을 돌보기 때문이다. 정해진 정확한 길의 형상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대학 강사까지 된다면, 그 모노는 아름답다. 오토바이는 모노가 있다. 누군가는 모노사이클이라고 할 것이다. 아닌가? 오토바이는 멈춰 있다. 그것은 양귀자가 자기 새로운 소설 제목으로 차용할 만 하다. 우리는 숱한 모노에 있다. 그 숱함 속에서 모노에 집중할 지, 헤테로에 집중할 지,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러나 헤테로, 테헤란로, 퇴계로는 마치 서울이 혹성이며, 그것의 달이 세 개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남산 도서관 사진이 많은 이유는, 나의 세번째 이름, 신현균, 신휘, 시니피에가 많기 때문이다.
나혼자만 청결자나 영화자가 아니기에, 사진으로 다시 마무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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