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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슬라브 노래 같은 엔젤스 패스 바이. 유진런 프랑프루트학파 연구. 서울대에서의 추억. 글쓰기 영도

by 마음대로다 2013. 9. 29.

슬라브 노래 같은 엔젤스 패스 바이. 유진런 프랑프루트학파 연구. 서울대에서의 추억. 글쓰기 영도

 

 

 

 

 

 

 

 

어째서 엔젤스 패스 바이인지 설명하지 않으면, 고립되어 있는 슬라브 민족처럼 슬픈 슬라브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이 어느 정도의 하부토대에서 가장 인간답고, 부족할 때는, 혹은 넘칠 때는 변형고무인형이 되는지 배구 심판은 명확하게 판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돌배게에서 나온 유진런 프랑푸르트학파 연구라는 책은 지금 읽히고 있다. 다른 더 좋은 책이나, 오자가 없는 것이 나왔다면, 돈을 들여서도 그것을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것이 만화책 같고, 앞뒤가 불분명한 임꺽정처럼 씹히는 맛이 있다. 그래서 이곳 부산 영도까지 오면서 가지고 왔다. 부산에 왔으니 책을 골라야 한다면서, 나들이를 했으나, 사단칠정에 관한 동양학 서적, 핏제럴드의 디스 책은 아무런 해양대학교까지의 산보를 유도하지 않는다. 사단칠정이 깊은 맛이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워의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리어 워의 시간을 채워야 한다고 꼬드길까 걱정이 된다. 그것은 고전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배운 자의 자세인지, 자세가 아닌지 판결하기가 애매하다. 핏제럴드의 디스 책은 영어로 읽을 때는 제법 서 있는 것 같았는데, 너무 맞침표에 맞춰서 해석하다보니까 문장이 꾸물꾸물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영어권 디스에 성공한 것인지, 아니면 한국 인구 형성에 실패한 것인지, 그것도 명확하게 판결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저녁에 해양대학교까지 산보하러 가는 길에는 유진런 프랑프루트학파 연구 책이 따라오고, 검은 저녁 바다 건너의 항구 불빛처럼 몰가치하게 개념들을 흩뿌려놓는 파트티쉐? 프렌차이즈? 기법을 얻을 수 있었다. 얻지 않는다 그런 것은. 이젠. 유진. 안한다 런. 그래서 유진런? 너무 심각한 예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싫어하는 마르쿠제가 선장으로서 칭찬의 말을 했고, 내가 보기에는 그를 수학적으로 상자에 담고, 감옥에 가두는 포졸처럼 보인다. 황재우라는 황지우 시인의 다른 이름. 희한한. 그런 번역서의 이력과 시인의 어떤 기억. 한신대 문창과 교수로 임용될 때, 실랑이가 있었고, 학생들이 많이 들었고, 내가 좋아하던 중문과 김옥금 누나가 좋아했던 교수라는 것이 이중 기억처럼 중첩이 된다. 책을 놓은 자리를 헷갈려서 찾기를 포기하는 시간 같은. 분명한 정리보다는, 기억의 독재가 있다는 두뇌 반응. 그것은 분명 유진런 프랑프루트학파 연구의 맥락과도 닿아 있는 것이다. 내가 마르쿠제를 싫어하게된 이유를 나는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아주 싸가지가 없다는 인상 밖에 없다. 유럽출신이긴 하지만, 개싸가지 없는 미국 학자라는 인상이 아주 독보적이다. 만일 여자로 변형고무인형이 되고, 갈 곳 없는 사십대 미등단 작가를 아들로 두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된다면, 자기집이나 짓고, 한번 패보라는 때려봐 파씨즘의 몇몇 인간의 스크럼 속에서의 수장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사람이나 될 것이다. 만일 선이 무게가 있어서, 그것이 겨우 생명의 기호나 내비칠 때, 늘 위로 옆으로 흐르는 기다란 띠를 발견하게 된다면, 조신하지 못한, 늙고 못생긴 강소라 같은 여자의 육체는 매우 고역스러운 것이다. 헐버트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은 비평서라기보다는, 학자가, 프랑크푸르트, 지가 그런 인간들 앞에서 겨우 반보 정도 앞서겠다는 공산당 메니페스토 밖에 더되겠는가? 읽어도 풀섶이요, 읽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공부도 안하고, 젊었을 때는 하지원이나, 늙었을 때는 그런 가난한 아들이 출입이 어려운 집에서 사는 어머니와 친교하는 이나 되어서, 또다시 초자아의 눈빛이나 쏘아대는 사람이 관념으로 낳은 딸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딸이 있는데, 보다 민속적이고, 그 마을 출신이며, 할머니면? 장땡인 기호적 맹자적 호불호가 전부인.........

 

 

 

 

 

그 시절 서울대 전철역 자취방에서 나는, 이런 삶을 살 줄 모르고, 지식의 처음을 쏟아냈는지 모른다. 정문으로 노을이 지면, 꼭 나처럼 보일까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