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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소설책과 지능

by 마음대로다 2012. 7. 11.

소설책과 지능

 

 

 

 

 

 

 

 

 

분노와 탁류 속에서, 나의 이런 말은 늘 교양의 까탈스러운 옷고름을 풀어제낀다, 하나는 위대한 문학, 하나는 멋진 영화, 우리는 늘 저능하고. 나나 분노와 탁류 속에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를 도구적 인간처럼 두들겨 팰 수 있지, 어떠한 기자 지구들 팔레스틴들은 하지 못하는. 쪽 팔리다고 여기면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쪽 팔리는. 돼지 족발. 그것의 무능적인 증거. 닭발을 즐겨 먹는 것은 육식의 축제요, k pop 같은 것이라면, 무슨 불 닭발집 같은 식으로, 돼지 족발은 그것이 초원을 뛰어다녔을 원령공주 때문에, 먹는 것이 식당의 동일시 속에서, 건축학개론, 먹는 것의 단 하나의 부정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 한국어, 어디쯤의 바닷가에서 쪽 팔린다는 말을 시작했을까? 여서도였을까? 아니면 홍도였을까? 내륙에는 사람이 없고, 그들에게는 언어를 창안한다는 기쁨의 학교가 없는 것 같아서, 아들을 막연히 생각하는 완력 좋은 육십의 택시 운전사 같은, 남의 고시원 문을 두들겨 패는. 극단적인 한국 남자의 어쩐가보게. 어쭈 이 놈 좀 보게. 얌전한 척 뺀질거리는, 영덕이 같기도 하고, 에스케이나 한화 감독 같기도 하고. 어째서 도종환이나, 십구단에 관해서 언론에서 떠든데 반응이 하나도 없느냐는 식으로. 연가시 같은 개촉수. 누구도 사람 속을 모른다는 의미에서의 충남 공주. 젊은 외모의 아저씨 공주. 너희들 같으면 지금 같은 시대에 도종환이나 십구단 언급을 하겠냐? 하기 좋아하면 너희들이나 해라. 일을 하는 손도 괜찮은 손이다. 그것을 돼지 족발이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돼지 족발은 일을 하는 척 하는 시니피앙들이다. 정치인이 악수를 많이 하면 돼지 족발이 된다. 그것은 교차로 같은 것이다. 나름 머리 쓴다고 건널목 건너에 오토바이를 세우는데, 신호등이 저 건너에 없고 바로 위에나 있는 경우, 내가 정치인이 악수를 많이 하면 돼지 족발이 된다 하는 것의 가부를 딱히 결론내릴 수 없어 나도 또한 곤란을 당하는 형국일 것이다.

 

늘 입에 족발을 물고 있는 풍경. 자전거 탄 풍경. 그것이 아니라, 고소하고, 연대하고, 내게는 어째서 딸딸이나 치면서 직장을 구할 일이지, 지금껏 나무를 어렵게 심었느냐고 핀잔을 주는 세계관적인 적반하장. 즉결처분이 아니라, 즉결 고소함. 배가 항시 부르는 듯한, 한국어 '거' 상태. 하지원의 코리아 탁구 영화를 끔찍하게 좋아하는. 돼지처럼 땀딱는. 활자들. 신문들.

 

소설은 눈과 같다. 클래식은 도덕과 감동을 하나의 모델로서 두고, 그나마 뛰게 한다. 말을 그나마 조금 하는 듯한 기쁨 상태가 지속되다가, 다시금 즉결 고소함으로 넘어가는, 국문학적 쪽팔림의 서로 위로하고 덮어주는 경계. 주자어류 초장에 나오는 양의 넙적다리살과, 삼손이 셋도 세지 못하는 것들과 싸워 이겼던 당나귀 턱뼈가 우리의 지금 족발과 연결이 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