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잠결에 이런 옛날 티비 문학관을 보게 된다. 동덕여대 시위가 거세고, 어떤 잘 모르는 남자 가수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의 신작 가면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나는 저녁이 다 되어, 선암사, 수덕사, 천안사, 천은사에서 나와서, 길을 잘 못 든 관계로, 바로 하동으로 가서, 내 있는 광양리치빌로 오지 못하고, 순천까지 가게 되었다. 차가 많아서, 마치 서울 같았다. 그러나 다들 재빨리 움직여서, 엘에이는 탈출할 수 있었다. 러쎌 크로우. 그리고 집에서는, 진라면을 끓이면서, 동아사의 미칠 듯이 아름다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고, 그리고 더블유의 비극으로부터, 그리고 세인트 세이야의 ost. 아무튼 나는 올드보이의 감옥 같은 집에서, 늘 왔다 갔다, 나갔다 갔다 왔다, 오토바이도 타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전두환이 옛날 자동차 프린스를 타고, 경찰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한 장면으로 집어넣는, 그런 티비 문학관을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김창옥의 말이, 말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회전하는 칼날에 잘리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김용옥과 김응용은 늘 칼날이 닿기도 전에, 우리 마음으로부터 첨성대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어떠한가? 우리는 불교를 신봉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가 늘 그렇게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원하는 것이 있고, 집안 구석이 단란하지 못해서, 불교를 또한 예또 신봉하게 되는 것이다. 숭유억불이라는 것도 그렇다. 아이들끼리는, 불만 멋지게 피워도, 멋지고, 병만족처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그런 시기가 있다. 그래서 억불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억불할 수도 있고, 억불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억불할 수도 있고, 억불은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억불한다. 김억이 그렇게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시도 몇 개 있다. 그와 같은 김희보 편집의, 한국현대시는 좀체, 그러니까 좀비, 억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윤희가 뻐꾸기에서 살다가, 홍콩으로 가서, 그리고 어느 동남아에 가서, 영웅본색 3를 찍는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드라마판 거울 나그네를 찍는다. 손창민을 보고, 키스하고 그렇다. 그렇게 다시 교실에서 만나는 것은, 손창민이 외국을 떠돌아다녔던 것은, 어쩌면 정윤희를 의미한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드라마, 영화, 그리고 각종 쇼프로그램은 늘 언제나 인간 존재의 극한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가수가 가장 좋은 것이,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하면서, 딱 그치기 때문에, 거기에는 짐승도 없고, 물체도 없고, 종교에 심취한 것도 없이, 조금도 사랑이 깎이지 않고, 극락보전, 보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것은, 사랑 바보를 낳는다.
티비 문학관이 거기서 그친다.
사람들은 그것을 실제로 티비에서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언제나 생각이 천은사, 한정적이고, 순간적이며, 순간적이지만 전체적인데 반해, 대게의 무책임한 티비는, 책을 읽지 않는 티비는, 우리가 책을 읽고, 책임이 있고,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나, 무책임한 티비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순간적이고, 정격적인데, 늘 김응용만 같은 것이다. 그러니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한 것이 아니라, 엔씨 다이노스가 우승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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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포토샵처럼, 저와 같은 호수 풍경이 천은사라면, 지구에는 수억개의 천은사가 있을 것이다. 너무 그런 식으로, 지칠 줄 모르는 박동원, 웃기지도 않는 사탄 개그, 그렇게 야구를 계속하다 보면, 마침내 머리가 모두 빠질 수도 있다......
민족
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