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이란 무엇인가?
임금이 국문을 시작하면, 사미인곡, 송강 정철. 우리는 차원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시험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으로 갈리게 된다. 시험 보지 않는 것을, 예쁜 여자 친구와 사생결단하듯이 읽을 수는 없다. 그리고 시험 보는 철학책도 없다. 신학생이 입학시험에, 성경 시험을 보는 것이 유일한 토탈 이클립스이고, 그것도 야긴과 보아스, 그런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전부이다. 신학이 있기 때문에 철학이 있고, 구약신학이 있기 때문에 조직신학이 있는 것일 수 있다. 국문학은 쓸쓸한, 그런 한국 미술가의 풍경과 같다. 김재근. 조재근. 박수근. 그들은 모두 농부가 아니라, 학생이었다. 학생이 인터프리테이션, 아직 해석 전의 세상을 걷는 것과 같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 있고, 그래서 사과조차, 그의 그림에는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바나나, 파인애플, 피자, 그런 것은 머나먼 쏨팽이, 쏭바강과 같았는지 모른다. 숀팬.
시집은, 짧은 시집은, 국문학과 같다.
그리고, 추상적인 추사 김정희. 김정희는 사실 서예를 한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들의 나열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음악이 아름답게, 소품으로 진행하면, 우리는, 학교는 끝이 난다. 항상 그런 것들이 중요했으나, 우리는, 우리들의 국문학은 그런 섬세한 좌표를 얻는 데 실패했다.
한번 얼룩이 지고 나면, 사람들의 눈은, 그와 같은 얼룩에 빠지고 만다. 잔혹하기 그지 없다.
딱 한 번의 기회가 있다. 정말 딱 한 번의 기회가 있다. 그리고 인간 자신도, 자기의 삶을 만홀히 여기지 않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딱 한 번의 기회를 두고, 그냥 지나칠 때가 있다. 우리는 국문학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모국어가 관계적으로 가장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범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두고, 못 나가게 하고, 평생을 선생처럼 굴 수 있게끔 하는 것을, 사도세자로 만드는 것을 방관하기도 한다. 영어로 사람들의 어떤 정신적인 높이를,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데쓰의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하면 되지 않는가 할 것이다. 그와 같은 것도 실은 모국어이다. 그러니까 체급이 맞지 않는 것이고, 끊임없는 성희롱인 것이다. 김씨인데. 대김. 대최. 그러는 것처럼. 성경김. 곱창김. 그런 말들을 우리는 영어로 할 수 없다. 그리고 일본어로도 욕을 할 수 없다. 박가. 최가. 전대 국문학과 학생이, 거기다 야르.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추임새를 넣는다면, 다시금 우리는 춘향전에 빠지고 만다. 부활절에 전을 부치는 것처럼.....
정말 딱 한 번 기회가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공학을 다니지 않으면, 혼자만의 시간, 강수지 같을 수 있으나, 다행히 교회를 다니고, 그리고 요즘처럼 공학을 다니면, 딱 한 번의 기회, 시간에, 서로가 관족을 뻗어, 어떻게 건축학 개론의 납득이처럼, 딥키스의 여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딥키스의 여자를.
어떤 트롯 노래의 제목 같은.
어제의 유소년 한국과 중국의 축구처럼, 단번에 관념의 지배를 꾀찰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나쁜 영화도 없고, 나쁜 비평도 없다고 여겼다. 그런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늘 멋진 영화, 좋은 영화, 예술 영화에 합격을 했었다. 그리고, 면접관이 나의 짧은 비평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늘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합격했다. 그러니, 예언이 헛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늘 거기서, 성경책과 철학책을 읽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관념의 지배를 향한 골을, 잘 살리는 축구 선수처럼, 추계 선수처럼, 나는 여자를 사랑하고, 그러나 여자를 미워하고, 여자를 사랑하고, 그러나 공부하지 않는 여자를 등한시하고, 멸시하고, 멸치, 야무치, 그랬었다. 나도 합격하는데, 여자가 합격하지 않으면, 우리는 만날 수가 없는, 그런 수원 화성의 좌표를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것을 올려다 볼 때면, 늘 마음이 아팠다. 내가 저러는가? 그리고 어느 날에는, 거기서 내려오는 여학생들과, 선배들이었는데, 만남을 갖고, 젊음의 행진 같은, 카페 토크, 잔치를, 벌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길이 좋다고 하는 말을, 나는 마음 아프게 들었다. 여자들은 책을 읽을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잔디깔기처럼, 피아노나, 첼로는 켤 수 있다. 벙어리 바이올린. 그것이 그때도 현격하였으나, 나이가 든 지금에는, 거의 남극과 북극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남자는 남회귀선, 남자로 가고, 여자는 북휘귀선, 북한으로 다시 납북당하고 만다. 중국 공안. 그들도, 그런 강렬한, 슬픈, 사회부 사진을 보고는, 슬퍼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 점을 주고, 우리가 삼 점을 내고, 끝이 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문종이, 오직 실천철학을 가질 때만이, 우리는 열하일기 같은 것을 쓸 수 있다. 그것을 향유할 수 있다.
문종이, 꿀하고, 프레데터 같은 것을 동시에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칸트도, 목민심서도, 방향제만 가질 뿐, 기어가 맞물리는 일을 행하지 못한다. 자기가 나무가 되고, 열하가 되고, 기어가 될 때만이, 기어가 맞물리기 때문이다.
문종은 진주처럼 사라진다.
그것은 파사현종 같다.
모든 카테고리를 그렇게 섬세하게 표시하고 나면, 온통 전쟁 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어가 되었다가, 문송하듯이, 이송하다가, 기어가 되었다가, 왠지 흔한 것 같은 문종이 되려고 하면, 간장게장 먹고,
사탄의 예술, 예술은 독립적이지만, 사탄에 매여있는 예술도 좋은 상태로 다시금 떨어지게 된다.
수저우에서 잠깐 기억을 찾고,
한 번의 소년 소녀 시기를 기억하고
우리는 운하를 타고
적벽
서로 헤어지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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