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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영화 열한시의 깊은 숭고함

by 마음대로다 2013. 12. 1.

영화 열한시의 깊은 숭고함

 

 

 

 

 

 

 

 

우리나라가 아이티 산업에서, 이티나 티비엔 이비에스를 제치고 세계에 우뚝 서게 된 것이 기성 가전 제품과의 유기성과 통기성 때문이다 할 것이다. 처음에 모니터가 호쓰란트의 성에서처럼, 머리가 잘려진 채, 책상에 놓여져,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었던 것과는 상비적으로, 엘씨디, 그리고 지금의 엘이디 모니터가 최고의 디자인을 자랑하게 된 것은, 수입과 투자, 가치 창출의 숨가쁜 질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 노트북은 노트북 액정 화면이 있었고, 모니터는 약간 티비 브라운관틱한 것으로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삼성과 엘지 양대 연구팀에서, 동시적으로, 노트북 액정 화면을 개발해서 보통의 데스크탑 모니터 더 나아가 티비를 대체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삼성의 안희상 개발 에이팀장이었고, 엘지의 유병철 연구소 차장의 주장이었다. 그때 하늘은 마치, 프레이저가 손오공을 상대하면서 처음으로 휠체어 같은 것을 내려올 때이고, 부피가 두 배로, 약간 여자 같은 인상에서 전투의 화신으로 변하는 듯한 기운과 일치했다. 그와 같은 착상은, 동네에서 엿바꿔 먹는 백범 김구의 일화와 비슷했다. 숟가락을 일부로 부러뜨려 방 안에서 엿장수를 부르고, 엿을 먹고는, 아버지께 사실을 고했더니 별 말을 하지 않더라는. 알 수 없는, 참 알 수가 없고 요해가 불능인, 소년의 지혜였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의 컴퓨터는 일본 도시바나 소니, 미국의 이런저런 회사에 뒤쳐져 있었다. 당연히 반도체 생산국으로서는 크게 인상적이었지만, 이런저런 컴퓨터 생산품은 가까운 일제에 뒤쳐진 게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애플. 메킨토시가 그렇게도 디자인하는 사람들의 애장품이 되었던 때가 있었을까 싶다. 메킨토시 전문 컴퓨터 서적이 있기도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엘씨디 모니터가 나오기까지도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티비는 피디피 방식이라고 있었다. 평면 티비이긴 하나, 열이 많이 나고, 당연히 전력 소모율도 높았다. 가전제품으로는 하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소비를 해주었다. 그로 인한 수입도 과메기적인 단계에서는 상당했었다. 막대한 자금을, 엘지건 삼성이건 엘씨디 엘이디에 투자했다. 그것은 기분이다. 사람은 반도체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반도체 일등국가가 아이티 산업이나, 최종 가전 제품의 사용에서도 일등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상식은, 일종의 저변과 국민성의 문제가 개입된 것이다. 그들은 민주를 모르고, 김용옥의 말처럼 건강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한국말을 쓰기는 하나, 하루종일 연구실에 있고, 새로운 기술에 두려움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금에 이른 것이다. 지금은 애플은 삼성이나 몸을 조금 낮춘 엘지보다 한 단계 아래에 있다. 우리가 애플을 존숭해주는 이유는, 세계 천재지변과, 소요국가의 무장 투쟁 세력의 후원자로 오해나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서이다. 중국은 한번 삐치면 돌이키는데 이백년 정도가 필요하고, 일본은 가장 한국과 가까우나 누군가 일부로 떨어뜨리는 유리동물들 같다. 처음에 영화보다 화질이 선명한 티비를 개발해서 무엇하겠는가? 여담의 차원에서의 논쟁도 있었다. 그러다가 차이코프스키의 슬프고 큰 낙엽 같은 로망스처럼, 우리는 불후의 명곡을 찍고, 세계의 슬픈 유안진으로서의 나는 가수다를 찍었다. 불후의 명곡은 계속 찍고 있고, 나는 가수다는 쉬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용도 보지만 화질도 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기세가 걱정이다. 좀더 전기세가 덜드는 평면 티비를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 모든 잡세들을 분석하지 않는다. 세상은 충분히 세이터닉 월드 같고, 우리는 다만 우리의 할 일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영화속의 대사처럼, 만일 열한시에 폭발이 있다면, 열시 오십구분에 포기해도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