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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효린과 소유의 원투펀치는 서울 경상계열 소장학자들에게 지금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by 마음대로다 2013. 11. 30.

효린과 소유의 원투펀치는 서울 경상계열 소장학자들에게 지금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미치지 않는다 할 수도 있다. 미칠이. 말은 갑싸고. 그러나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들이 지날 때를 보니까, 귀가 있었던 것일 것이다. 그것은 달팽이관. 우리는 달팽이를 귀에 넣고 다니면서, 빨리 다니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독일어 슈넬과, 영어 스네일이 네일아트처럼 별 모양도 달 모양도 분명 그려낼 수가 있다. 우리의 말은 갑싸고. 갑싼 말을 달리다보면, 우리는 없는 것으로서의 경상중심주의로 넘어가고 만다. 그것은 숨가쁘고. 투명한 건물 조명 구조 아래서, 여자들의 거터와 벨트는 화승총 같이 더럽게 타오른다. 잔치가 끝났다는 주장. 최영미....... 그리고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그리고 정글탐험 중에서의 박솔미. 한은정. 다른 훌륭한 프로그램에서도 진가를 발휘하는, 내가 좋아하는, 대놓고 늘 언제나 사람들에게 암시를 주는? 더러운 입법자의 눈에 들어온.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소유진. 아닌데. 유진박은 남자고. 아무튼. 애니웨이. 군자 브로드웨이 고. 우리는 그 옛날, 전남대학교 병원이 마치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 같은 나무들과 나란히, 가치의 불야성을 이룰 때를 기억한다. 그들 사이로, 우연히 통성명을 하는데, 여자 이름이 성숙이라는 것이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박성숙. 최성숙. 숙성은 없었다. 분명. 데피니틀리, 말은 갑싸지만은 않는 것이다. 전남대학교 병원의 나무들이 조선반도를 가로지르는, 서울향이었는지, 아니면 그곳으로도 뚫고 지나는 외국향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끼리도 키를 높이 쳐주는 훌륭한 인심이자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존재론자의 눈에 익히 들어온 한국주의적이었는지 유시무종 불문가지 알 수가 없다. 아바의 여름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기타의 피크였었다. 논리는 서늘했고, 성공적인 주리론자가 되지 못했어도, 범주 하나를 왕따시키는 일은 없었다. 갑자기 아이티 산업이 비등해질 때, 이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고 보이콧을 놓지 않았다. 클래식 선율이 넘치면, 우리도 넘쳤고, 교회를 세우면 세워라고 했었다. 버스 중에 몇 할은 테마가 증심사 가는 길이다. 그렇게도 증심사 가는 버스가 많다. 그것을 우리는 테크노 음악을 들으면서 보았었다. 어쩌면 오대수가 갇힌 곳에서 들었던 바로 그 비지엠일 것이다. 세월은 가고, 정치적인 것은 기층적인 것이다. 대통령을 욕하고, 정치인들을 멱살 잡는. 김성숙의 이름이 분명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유권자였다. 태권도 유단자라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다. 태권도의 종주국이지만, 태권도를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녀는 유권자였다. 판단은 선험적이고, 종합적이다. 이 말은 통과한다. 아무런 대기 발령 상태나, 경찰의 추가 조사가 없다. 우리는 몇 마디를 과하게 하던지, 조금더 음반을 눌러보고는 생각을 보태던지 해서, 밤하늘의 별 중에 내 것이 있다는 신앙의 표현으로서, 투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소찬휘 같았고, 눈이 예뻤던 가수 같았으며, 나를 너무나 사랑했던 그리스 여신 같았던 여자 같기도 했었다. 그렇게 좋아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우리를 맺어주지 않았다. 정조준을 하지 않으면, 타겟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유메가 되는 것이다. 씨스타는 바로 그 순간, 다리우스의 음악을 배경으로, 투표권의 한정에서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것은 바로 서울 경상계열 소장학자들의 두뇌를 코리안 룰렛한다. 관자놀이를 언어놀이한다는 소리이다. 인간 경제동물에 대한 이해는 막연한 종합적 제 2의 군집에 의해 늘 변호된다. 경제를 깡통으로 지칭하지 않는 이유는, 드라마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김연아 효과 때문이다. 그 숱한, 단어들, 방정식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일선 경찰들의 털뽑힌 맥심 같은 것들, 그것은 어쩌면 자조이며, 자기파괴에 대한 염원일 수도 있다. 있고 없음이 신과 선의 문제가 아니라, 돈이 있고 없음, 임포가 있음과 없음, 그러다가 삶과 죽음의 거북선 제일 밑바닥. 그곳은 겔리선과 중첩이 되는. 벤허와 허균이 같은 성씨로 만나는 능지의 경지. 경찰은 살인자를 잡았네 잡지 못했네의 전기장판에서 일어서지 못함. 살인자를 방관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살인자를 잡는다는 것은 어째서 최고의 선에는 아무런 <아들>이 없느냐는 것이다. 최고. 할리. 아들. 데이비슨. 이것이 어째서 외국 말이겠는가?

 

 

서울 경상계열 소장학자들은 하이에크가 하이옌인지 판단내리기를 주저한다. 틈만 나면, 전투능력으로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스카우터를 때리는 병신 계급도 아니고, 그저 아프로사무라이, 다만 추동되는 것일 것이다.

 

 

씨스타는 여자들의 원죄를 안고 출발했다. 김연아와 달랐다. 술집에서 태어나면, 아주 비상한 어머니를 두지 않는 이상 가게를 이어받는 수가 많을 것이다. 그것의 활달함을 보는 듯 했다. 아직 문민정부이거나, 막걸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문창과 엘리트들은 아주 직급과 취미와 세한도에 딱 맞는 것이다. 나는 싫어했다. 네 여자가 훌륭해보이는데, 이런 노래만 부르나 했다. 특히 보라. 얼마나 달리기도 잘하는지. 미스에이는 땅으로 꺼지나, 씨스타는 달랐다. 박지윤은 프로파간다 같으나, 김예림이 박지윤을 두둔하면서도 보다 좋은 막연한 그렇다고 썩 더 좋지도 않은 것과 반대로. 소유의 매드클라운과의 더블 보컬은 총명한 젊은 여자의 악보를 그대로 프로젝션하는 듯 했다. 그 수능시험을 다 보고 무엇하는가? 바로 그 피엔큐. 볼 영화가 없는 것 같은 펠레의 저주가 세상에 없다. 친구는 사흘 동안을 자는 것 같고, 자기는 막 자고 일어난 해운대의 아침처럼 혼자서도 운동하고 싶은데, 돈은 청소년들이 환상의 점수라고 여기는 오만원이 있는데도, 남포동이건, 종로건, 두류공원이건, 보고 싶은 영화가 없는 것이다. 돈이 있어도 미러리스 카메라를 살 수가 없다. 바로 그와 같은 피엔큐도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죄를 저질러도 교화소에나 보내지는 것이 이유가 있다. 피씨방에서 오락만 해도, 좀더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저울이 발달할 수가 없는, 한계와 자유가 있다. 오직 영화만이, 남포동 들어가는 길의 카메라 거리를 눈에 띠게 한다. 주체가 미발달하면, 좋아하는 오빠가 좋아하는 오빠가 되는 계기로써, 그러니까 남의 행위와 생활을 전유하는 것으로서 먼저 그것을 맛볼 수 있다. 어른들은 돈을 함박눈처럼 펑펑 쓰나, 학생 때는 잘 입는 점퍼에 먼지나 때를 묻히는 데도 어른들은 인색하다. 노스훼이스에 놀아날 것이 아닌 것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떼를 쓰면서, 비싸더라도 내 옷을 입고자 했던 것일까? 부모님의 마음도 섞였겠지만. 그 백치 아다다 같고, 벙어리 바이올린 같고, 내 님을 향해 씌워진 콩껍질이 바로 세상의 모든 경제인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다 돈을 쓰는지 잘 모른다. 지리산 실상사이다. 그것은 성경에도 나온 구문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의.......

 

 

효린의 노래는 강력한 데가 있다. 그것의 주소는 알 수가 없지만, 도로명 주소, 다만 비유와 대수로서의 표현만이 가능하다.

 

 

"전대병원 간호원이세요?"

"예. 하하하......"

"......"

"......"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박성숙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