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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사물의 느낌: 보론

by 마음대로다 2025. 12. 2.

 

 

사물의 느낌. 보론

 

 

 

 

 

 

 

 

 

이번 중국과 한국의 농구를 보면서, 도리어 중국이 농구도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고속의 기차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젊은 여자를 내가, 바람에 스치는 것처럼, 김제동의 명언처럼, 통장에 월급이 스치우는 것처럼, 그렇게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어젝티브스, 형용사들을 갖는다. 그들은 용사가 아니다. 그러나 오바로크. 혹은 영국 경험론자들은, , 로크, 토마스 홉스들은, 그런 것들도 용사들이다고 할 것이다. 용사의 집에서 멋지게 오바로크를 새로 하고 나오면, 이병에서 일병으로, 가장 멋지게는, 일병에서 상병으로 오바로크를 하고 나오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영국인들에게 두려움을 준다. 리바이어던. 리바운드 같은 것. 혹은 로얄 엔필드의 인터셉트 같은 것. 그것을 아는 분깃점이, 바로 영국 경험론의 한국적인 미장센적 극치가 아닐까 한다. 오블리비온. 그렇게 외국 사람들이 말하면, 연주 전에, 약간 어울리지 않는다, 오블리지 않는다 느낌이 들지만, 우리가 영국 경험론을, 농구에서 리바이어던을 멋지게 하고 나서, 다시 슛, 독침을 누군가에게 쏘게 되면, 삼점 슛, 적들은 벌벌벌 떨게 되어 있다. 그들은 죽고, 가에 있는 가디언이라든지, 지켜보는 옵저버들은 덜덜덜 떨게 되어 있다. 원래 영국이 농구를 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 영국인들이, 그것을 차일피일 미뤘고, 마이클 조던과 피펜, 그리고 샤킬 오닐 등이, 인터셉트를 하였다. 이런 내용들은 정말, 처음 듣는 말들일 것이다. 그들 모두, 영국 경험론을 익히고, 한국에서, 용사의 집에서, 멋지게 오바로크를 했던 사람들이다. 그것의 레어어는 감추어져 있고, 문을 열고 닫을 때, 콧구멍이 일치한다 싶으면, 갑자기 그런 누군가의 심정 같은 것이 환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것도 처음 듣는다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제대한 사람들은 무엇이냐 할 것이다. 나는 그것에 적잖은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을, 미안한다, 사랑한다. 나만 그렇다. 나만 늘 이상하게, 진지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떠는 기회와, , 그런 것들의 나가르주나, 혹은 누미노제 같은 것을 주었을 것이다.

 

영어는 홍콩이나, 일본 오사카에서 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토익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신의 토익적 저변은, 오블리비온, 여름 날의 시원한 미역 냉국처럼,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갑자기, 영어도 잘하고, 신문물, 신식여성, 개화기 여성, 여자 대학생 수준까지 급상승을 하였다. 거의 나로호도급이였다. 그리고 고고학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림사지 석탑을 아는지, 미륵사지 석탑을 아는지, 성경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너무 프로이트의 성리학을 배신하는 것 같았다. 그냥 쓰나미급으로 배신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렇게, 엄정화네 마네 그러다가, 지금은 일본 총리네 마네, 그러는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태도의 변화였다.

 

*

 

내가 그 지하실의 삼복서점에서, 팡세를 읽을 때였다. 나중에 읽을 때는, 특수적이었지만, 깊이가 없고, 의지만 있고, 서양의 예쁜 것만 흠모하는 것 같은 나는, 그 순간만큼은 팡세의 모든 말들이 아름답게만 느껴졌었다. 토익 시험으로 보자면, 이번, 청암대학교, 삼백점 정도 맞을 것 같았다. 나머지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었고, 내가 죽고, 내가 산다면, 내가 죽고, 내가 산다면, 그렇게 술 마시면서, 대학촌에서, 돌아다니다가, 세 번째, 책을 드는 순간, 비로소 절반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될 것 같았다. 그와 같은 계획. 예정조화. 그리고 해석학적 선이해라는 것은, 그러나, 생각보다 시작이 절반일 때가 많다. 나는 성경이 너무나 지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 관한 해설서를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점진하는 과정으로서의 오블리비온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모든 한국 방산 산업이 그와 같다. 그것의 추진력. 완벽함. 유럽의 제3세계에 대한 신뢰. 참다운 부가티 가치. 그것들은 모두 우리들의 낙안읍성에 대한 눈물 나는 오블리비온인 것이다.

 

영어도, 잘 모르는 지문을 읽을 때는, 그것이 한글처럼 보였다. 찌아찌아처럼 보였다.

 

영어 지문이 펼쳐진 여성성 같은 것이면, 그런 식의 해석 기법이 있는데, 정신분석학적, 마틴 스콜세지, 나의 독서는, 한국 킹콩 원시인의 찌아찌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영어는 스톤헨지 같은 것이다.

 

그들은 생각의 진행과, 버트레스, 주술포 기둥 같은 것이, 그래도 꿀벌 같은 것이 아니라, 있음일 것이다.

 

 

 

 

우리가 세계와 함께, 지금, 극한의 슬픈 개여울을 지난다면, 한국 사람이 항구의 검수원으로서, 인도인 선원과 희고 높은 산의 학교적 분위기를, 콘테이너 빽빽한 곳에서, 기분에는 공중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스톤헨지를 물자체로 바라보는 일등급의 정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사탄이 지켜보다가,

 

 

꼬붕들을 시켜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처치참한......

 

윈스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