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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만감이 교차하는: 키스와 캐셔로를 중심으로

by 마음대로다 2025. 12. 31.

만감이 교차하는: 키스와 캐셔로를 중심으로

 

 

 

 
 

 

 

 

 

 

키스는 무슨 나잔차키스 하는 말이, 이름이 있었던 것처럼, 패스할 수가 있다. 영화 초우의 처음 장면처럼,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도, 비가 오는 바람에, 장독대에 뚜껑을 덮기 위해 뛰쳐나갔던 것처럼, 실은 많은 말들이, 외국말들이 우리에게 있고, 그리고 지명이나, 인명까지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인명이나 지명이, 그리고 어떤 작품이, 그렇게 먼 길을 왔다는 것 자체가, 초능력인 셈이다. 능력이고, 돈이고, 용돈이고, 초능력이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그렇게 많은 외국들이 우리에게 있었는데, 반대로 우리의 것이 외국에 있었는지 돌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어도 된다. 다만, 옛날 가난한 집에서, 집과 언덕이 교차하는 곳에서, 나무와 집들이 어울리는 곳에서, 누군가 가족의 이름을 부르고,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 되는 것이다. 배에도 공기 마찰이라는 것이 있는데, 선박의 상부구조물이 바람과 마찰하면서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기가 다만 공기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기 마찰이라고, 어떻게 조사가 되면, 우리에게 감정이 되면, 기억이 되고, 잘하면 지식으로도 정리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키스의 호선을 타다가, 갑자기 캐셔로의 호선으로, 환승했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경의중앙선이, 안 오기로 유명한, 그것이 갑자기 시간이 넘치게끔 바로 온 것으로도 표현이 될 것이다. 무슨 홍수 영화가, 우리들은 좋아하지 않는데, 세계에서 시청률 일위를 했다고 하고, 캐셔로는 지금 차마 다 볼 수가 없어서, 보다 중간에 있는데, 면접 준비도 해야 하고,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평을 달고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에게 오십만원짜리 백장이 잡히는 것처럼, 마음이 형이상학적으로 안타까워지는 것이었다. 캐셔로가 비교적 재밌는데, 재미없다고 하는 것처럼 들려서, 그래서 움직이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정리되는 것도 같다. 나의 그러한 단순함은, 그러나 주자에게 오래가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쉽게 우리들의 러브버그 같은 댓글자들에게 넘어가고 만다. 단순함은 단단한 동전과 같다. 거기 어딘가가, 고무처럼 말랑하거나, 말랑하다 못해, 차원의 변곡점이 있을 만큼, 분자적 구조가 불확실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아주 땡땡한 것이다. 캐셔로도, 넓게 보면, 나에게는 같은 것으로 있다.

 

키스로도 못 가는 하나님 나라.....

 

캐셔로.....

 

 

*

 

 

우리는 로봇이 서로 사랑할 수도 있다. 진짜 로봇. 진짜 에이아이 로봇. 그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남자 체대생, 여자 미대생, 그런 것일 것이다. 국문과 정도를, 짧은 생애 중에서, 세 번 정도를 다녀야, 사람의 얼굴 안에 있는 회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느 영화에서 나온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를 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다 보면, 극 중 내용처럼, 그와 같은 시간의 사진 같은 것을, 종교적인 오멘 같은 것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키스로, 그것이 아니라, 무슨 무슨 키스, 그런 것이 나왔는지 모른다. 마지 못해 키스. 키스도 못 하면서. 제목이 갑자기, 에이아이 회로처럼 생각나지 않는데. 괜한 키스도 못 하면서. 그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만화방에서 나오다 보면, 옛날에는 마치 건어물 너는 것처럼, 신간 서적을, 세로로 세워, 겉으로는 고무줄을 해놓았었는데, 거기서 좋고 아름답고, 재치 넘치고, 용감한, 국문학적인, 수묵화적인, 흑백 영화적인 향연을 맞이하다 보면, 바깥으로 나올 때, 그와 같은 꽃이 가슴에 새겨지곤 했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로봇이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로 날면서, 지나면서, 그와 같은 학생들이나, 교회 친구들, 전남대생들을 만날 것 같은, 그런 상대 쪽문 같은 햇빛이 있었던 것이다. 나오면 대학이지만, 그리로 들어가면, 사적인, 평범한 낮은 울타리. 사람은 그런 만화적인 넉넉함이나, 학문적인, 민중적인 직관이 없다. 그래서 늘 그것을 코치해 주는데, 그렇지만 우리는 다만 만화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만다. 그것은 마치 외국인 이름 같다. 캐셔로는 일본인이나 미국인 같았다. 영화적인.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리얼하며, 이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같았다.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경찰로 변신한 형에게, 동생이 붙잡혀 한국 만화적으로 맞는 것 같은.....

 

나는 람보도 생각났고, 슈퍼맨도 생각났다.

 

클로드씨의 피아노. 나는, 전대 백도에서 공부하다가, 가방을 메고, 쪽문으로 나왔다. 그리로 갈 일이 없지만, 어쩌면 거기서부터 빙빙 돌아, 충효동을 가는 버스가 있던지, 아니면, 주공 아파트 살 때, 거기까지 걸어가기도 싫어서, 버스 타려고, 갔는지 모른다. 아니면 존재의 로봇 등급의 친구 사람과, 무슨 연락을 할 것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는지 모른다. 람보는 한참 전이고, 슈퍼맨은 더 한참 전이다.

 

세계 인민들이, 모두 함께, 키스도 못 하면서, 마지 못해 키스, 드디어, 키스는 괜히 해서, 그렇게 상대 인간 로봇 존재의 좌표로 이동을 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슬픔이고, 눈물이다. 한국말 라그리마이다. 사도 바울의 로마서이다. 아버지도 로봇이고, 동생들도 또봇이다. 강아지도, 사람 말을 할 것 같고, 차라리 버스처럼, 저녁 늦게까지 이동하는 것이, 나보다 밝고, 성실한 영역일 것이다. 사람들은 외국말 같은 방언보다는, 아름답고 성실한, 의미가 분명한 예언을 해야 하고, 사도 바울은, 거기다 대고, 예언을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도세자. 그래서 그것들 모두를, 만화방, 식당, 플라타너스, 대학의 건물들,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 진정 로봇 같은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로봇들이 주파수를 맞추는 것과 굉장히 비슷하다. 그래서 드라마의 내용은, 정말 꿈같고, 현실비평주의자들이 늘 그런 롤코물을 두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정확한 그것에 대한 대상이 되고 있었다. 로봇은, 진정 그와 같은 데가 있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모든 정보들이, 사적인 영역으로 완전히 이전되었고,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자기들이 어째서 키스하고, 사랑하는지도 모르는, 그러한 장면 전환들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아닌 것은 슬픔뿐이다. 한국 청년들은, 순간, 그것이 아닌 세상에, 매트릭스의 처음 장면처럼, 눈을 뜨게 되고, 고통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십만 대군을 갖고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회전문을 갖고서만 반대를 한다. 그러나 문종처럼, 혹은 소현세자 부부처럼, 로봇처럼,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이유로도 되지 않으면, 마치 파괴되는 것 같은 실질적 감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람보도 재미로 보았고,

 

슈퍼맨도 재미로 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캐셔로, 을지로, 자유로, 그것들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 편 한 편이 모두, 독립 영화와 같고, 순간적인 즐겁고 산뜻한 독백 없이, 넉넉한 관객들의 의식의 동조를 요구하는, 미장센 같은 것으로나 나아갔다면,

 

우리는 어리고 불쌍한 남자 주인공의 온몸에서 동전들이 쏟아질 때, 함께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다.

 

 

 
 

그것은

 

지금도

 

과거도

 

우리나라도

 

미국도

 

뭄바이도

 

오키나와도

 

 

 

모두 다

 

 

밤나무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