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랑의 교회 설교를, 그러나 듣다 말았다. 이런저런 양에 관하여
만일 오늘 아침에 별일이 없었다면 끝까지 들었을 것이다. 백제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의 형식과 예법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보다가 말다가, 끝까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오늘처럼 보다 만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일성수하지 않을 때의 마음낌과 같다. 경이로운 것은 나는 그런 것과도 씨름했던 것이다. 물론, 소질은 있었지만, 그와 같은 유치한 논쟁은 세상 전부를 장악하는 인촌 김성수 동아일보, 성수대교, 모든 성수라는 이름의 작동에 입회하게 하였다. 이슬람은 성수의 극치이다. 이태란로를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것은 신사의 자격이며, 형상의 구속이다. 하나님의 구속하심은, 옷을 좀더 맵시있게 입는 것에 늘 달려 있다. 그 사람이 예언자가 되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다. 나는 사랑의 교회 설교를 자주 듣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미 사랑의 교회에 있고, 그냥 들으며, 재미 있을 때는 재미 있다고 듣고, 재미가 없을 때는 재미가 없다고 듣는다. 자주 듣는 것이 아니지만, 늘 듣는 것 같다. 그것은 형제가 아닌 사람이 형제애를 처음 언급할 때처럼 어색하게, 지속적인, 콘티뉴어티, 그런 말 이름의 항상성 같은 것이다. 그런 늘리티 혹은 늘리언스라는 것은. 사랑의 교회를 볼 때마다, 저렇게 얌전하고, 사람 많고, 단정하고, 나름 힘 있는 사람도 있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내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어이도 없고, 억울하기도 한다. 공연한 것 같고, 마치 세상은 거대한 세트장과 동원 예비군 훈련처럼, 내가 가는 것에는 건물들을 세우고, 지나가면 넘어 뜨리는 망상에 빠드린다. 그러니 사랑의 교회를 비춰주면, 지구상의 전 인구가 모여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태어나 있지 않다. 사람들이 가족 이야기를 하면, 재미가 없고, 목사가 가족 이야기를 하면, 믿기지가 않는다. 그래도 그것까지 차후로 놓고 보면, 사랑의 교회는 나의 늘리티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이것은 물론 막무가내이다. 우리가 편지에서, 특히 이성간에, 상대 성의 문장력이 이렇게 좋을까 하는 것에, 사랑의 감정보다 놀라는 것처럼, 이런 식의 장면이나 감정 전환은 그런 것을, 그와 같은 독특한 방을 안내한다. 객관적인 상관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관이 넘치면 말이다. 주관이 주관적으로 넘치는 것도 에머넌스, 유출이다. 왜냐하면, 넘치는 한화인은 모습이 고대의 것으로부터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없으면 실감할 수 없으나, 예술가로 있다가, 낙화암 같은 데서 떨어져 죽은 언니나 형 오빠가 있었다면 마음이 고려대학교의 심볼처럼 절절해지게 된다. 주관의 주관적인 넘침이 아니라, 어떤 문서적인 근거. 그와 같은 때에 우리는 적어도 학교에는 가며, 친구가 도시락을 함께 먹는 기적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늘리티와 오정현 목사의 현생인류적인 늘리언스는 많은 부분이 닮았고, 그것은 나의 관심이 티에스엘리어트와 그것의 고양이가 에더라이즈드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이다. 형제는 아닌데, 형제애를 주장해야 하는, 보이스카웃이 아닌 아람단. 나는 아람단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못하고 말았고, 오토바이가 타고 싶었다. 그러나 못타다가, 지금 탄다. 이렇게 많은 말을 해놓고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바이크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교회의 형제애적인 쑥스러움과, 차후로 무조건 놓고 보면 괜찮은 신도들의 양적인 불만에 내가 어떤 기쁨의 일침을 가할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엔터프라이즈, 혹은 센티멘탈리즘은 우리를 태초에 로고스의 빛 아래서 저능했던 본원적 기억을 되살린다. 그것은 애니해슬램의 노래를 들으면 더욱 고양된다. 나는 스위티라는 호주 영화를 알고 있지만, 함께 과자를 꺼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일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도 복이 있고, 예술 작품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분명 종말의 때에 하나님 앞에서 보다 많이 복된 사람이다.
내게 육천만원이 있다면, 신사가 다가와 말하길 오토바이 협회에서 왔기 때문에, 주로 오토바이를 구입해주십시오 말을 내가 듣는다. 나는 기쁨으로 서 있지를 못하고...... 아무튼 혼다의 씨비알천알알을 구입한다. 그것은 다른 오토바이 회사를 내가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혼다. 일본. 그것은 존재와 존재의 무의 변주에 한번이라도 발을 담가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연가시는 보고, 나는 공무원이다는 나중을 기약하는가? 나는 공무원이다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얼마나 서운한 마음에, 애니 해슬램으로 강요되겠는가? 나는 나도 어째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영화 평론 전문가로서, 물론 철학이 있어서 내 돈 주고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글을 쓰면 너도나도 중구난방 언론사에서 돈을 들여 구입하는 것이 된다면, 하루에 영화를 세 편도 넘게 볼 수 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할 때, 개인적으로는 그런 문왕적인 통치를 기약했었다. 그러나 아니되었고, 그것은 안드로메다로 가고 말았다. 어떤 딱딱한 절대적 관계의 존재가 어느 영화는 몸을 담그고, 어느 영화는 냅두는 것은 분명 상처를 준다. 그것은 분명 과도기이다. 영어로 패시지. 과도로 과일을 벗기면 먹을 수 있고, 다만 필그림하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그뿐인 것이다. 그러나 존재와 영화는 체급이 다르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축제와 같다. 그것의 상권, 부끄럼 없는 경쟁, 그것의 에이도스는 개별자에서부터이다. 선물은 분명 남의 눈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영애가 최근 예쁜 얼굴을 내보일 때, 나는 나의 옛날 사진을 보는 듯 했다. 나는 이영애와 결혼할 줄 알았다. 우리기니모노. 정말 그와 같은 회로를 적을 수가 없다. 사람은 존재로도 살고, 단독자로도 살며, 우리들의 발견처럼, 연가시로도 살기 때문이다. 영화 중에 물에 뛰어든 자, 죽은 자, 연가시가 바깥으로 나온 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이런 해석은 몹.시. 기.발.한 것이다. 우리는 분명 연가시로도 산다. 내 말이 거짓말 같지만, 어차피 연가시가 나왔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티아라 효민을 사랑하는 마음은 강요된 것이다. 여자들의 부상은, 세상 우라기니모노 중에 우라기니모노이다. 티아라는 재미 없는 노래를 갖고, 현균 영화제와 패션쇼에 강제로 들어오려고 한다. 나는 늙었고, 만산은 홍협하며, 철불인지 석불인지 모르나, 이름이 매우 신비로운 효민이 있는 것이다. 우리 사는 나라에서, 가수라는 목적 없고, 널리 알려진 말로는 정처 없는 사당패의 처자가, 옷을 잘 골라 입고, 자기 멤버들의 무대 의상을 직접 디자인했다는 발라드가 있었는가? 그것은 정말 야긴과 보아스와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영화 미션을 보고서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기독교라는 의미가 강했다. 서양의 기독교는 애초부터, 나의 관심 바깥이었다. 심지어는 두 주인공의 죽음에도 나는 심드렁했다. 그러나 필리핀의 기독교도 서양의 기독교와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을 찢는 두 개의 구멍은, 서양의 아름다운 노래였고, 그것을 완벽하게 부르는 인디오들이었다. 나는 내게 귀족층이 있는 줄 몰랐다. 친구에게 그것을 선물받고, 아니 내가 직접 구입해서, 금호고등학교를 다니는 루트에서 몇 번이고 들었다. 인디오들은 모두 죽는데, 왜냐하면 비기독교성 때문에, 서양은 침탈만 남고, 그것은 이미 인이 아니기 때문에, 접히게 되면 자기들의 무기가 되는 비극, 칡쇼와 극치, 두 아이가 남아서 어딘가로 갔다. 그것은 고통의 인장이다. 너희 아버지 뭐 하시는지 모르는, 다만 하나님 아버지와 사랑의 어머니의 아들 딸들인 것이다. 효민의 시니피에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닭살과 같은 사삭의 전대협 강철대오의 발생은 그와 같은 늘리티의 있음 때문이다. 늘리언스도 인정한다. 그것은 독자할 수 없으나, 다른 그 무엇이 있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케이천삼백에스는 씨비알천알알의 존재 옆에서, 천재와 같은 연가시로서 나의 경제를 뽕내고는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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