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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전 세계가 육이오: 볼썽사나운 사

by 마음대로다 2026. 6. 25.

전 세계가 육이오: 볼썽사나운 사

 

 

 

 

 

 

 
 
 

남아공은, 사람이 좋다는 그런 찔러보기 유튜브 내용처럼, 유덕화의 열혈남아인가? 아니면 우리들 사공화국, 오공화국, 그런 오공본드 같은, 남아공화국인가? 그런 이상한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옛날 그렇게 온몸이 꼬여 들어가는 어떤 여자의 춤이나, 추상미의 아버지가 이상한 말들로, 한국판 셰익스피어의 심리극을 흉내 내던 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 미친 새끼가 오십번을 천장지구를 봤는데, 남아공, 전부 울었다는, 공옥진 여사의 춤 같은 것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세상을 힘들게 살았으면, 다만 일을 시키지 않고, 천장지구 보여준다고 강당에 모이게 하면, 눈물이 났겠는가? 언젠가는, 저 영화가 재미 없을 날이 오겠지 하면서. 파라타 항공을 타면, 프라이드 치킨도 먹을 수 있다는데, 만 육천 원에, 캔 두 개를 포함한 것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잘 살면서도, 그런 남아공 극한의 상태 구조나, 경제적으로 어울리는 말이나 하면, 정말 그와 같은 지옥에, 우리가 죽기 전에, 반드시 빠지게 되어 있다. 이런 말은, 감으로는 먼저 갖고 있었으나, 처음 한국말로 생생우동면처럼 듣는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갑자기 내 편 같은, 아편은 아닌, 표정을 짓는다면 나는 약해질 것이다. 삼손도 머리가 잘려서 약해진 것이 아니라, 데릴라가 힘들게 사는 것을 알고, 싸우지 않고, 내 편인 것 같은 느낌을 주니까, 약해진 것일 수 있다. 아니면 둘은 적과 아군이 아니라, 원수 같은 마누라, 그냥 평범한 이스라엘의 부부지간이었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생각도 옛날에 잠깐 한 적이 있다 하겠지만, 숱한 교회를 다니면서, 희미해지고, 그것을 위해서 다닌 것은 아니나, 계단에서 머리가 굴러 떨어지듯이, 그렇게 굴러 떨어진 것 같다고 회고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남아공은, 그런 강력한 말의 힘이 있다. 전두환이 죽어서, 남아공에 간 것 같은 북두신권이 있다. 그런 한국영화 신명이 있다. 김경재는 죽어서, 거기서 여자 주인공이나 된 것 같은, 파울 코엘료, 오직 파울로만 사는 세상, 미국의 회오리바람이나 된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내가 왕사남은 보지 않고, 군체나, 코엘료는 본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유식이나, 유럽 연합. 그런 것이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사람들이 미국보다 아름다운, 영국보다 천배는, 한국보다 이십배는 아름다운, 중국과는 차원이 다른, 그런 집에 살면서, 미시마 유키오는 이제 읽지 않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다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화도 코난인가? 코난이 아닌가로 구분되는, 차원의 변경점. 그런 한국 여자 가수의 노래처럼, 어떤 열대 저기압, 선생의 저기압이 아니라, 옛날에 선생이 저기압이면 수업 중에 학생들이 많이 맞았다, 고기압이면 자기 젊었을 때 연애 사건들을 그렇게 이야기 해주지만, 비가 오는 일본 주택가와 비가 오지 않는 주택가로 확연히 구분이 되는, 그런 지경에서 오래 살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의 코드네임이 한자와 나오키가 될 것이다. 연예인들은, 왠지 공부를 잘할 것 같은 킹, 연예인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고난을 당하고, 어떻게 보면 예수님처럼, 때로는 후지산이 보이는 곳에서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하늘로 발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일본 사람들에게, 후지티비에게, 아사이신붕에게, 충격을 주었다. 열도를 들었다 놨다 했다. 고시엔은 그것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백 엔인지, 아니면 오백 엔인지..

 

밍밍한 한국 드라마를 보고, 거기서 야릇한 육수를 맛보고, 몇 개의 한국 소설을 읽고, 우리에게는 없는 한국 비평의 우주를 보게 되면, 테오티후아칸,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 사람이 아닌지, 사진을 다섯 시간 넘게 쳐다보았다는 보고도 있는 것이다. 마치 삼일운동처럼, 어느 날은 한국 사람 같고, 어느 날은 한국 사람 같지 않고. 어느 날은 한국 사람 같고, 어느 날은, 갑자기 어느 날은, 우리들의 현균씨 같고 그렇다는 것이다.

 

악마의 편에 산다는 것은, 교수형의 오랜 실험과 같다. 논리적으로 악마에 편에 서는 프로페서가 있을 수 없으니, 교수 논문 한 번에, 살인 사건 한 번, 그리고 집과 차를 주는 원불교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친구들을 주고, 함께 여행을 가게 하는. 그러면 우리의 생각에도, 꽤 오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오현규를 낳는다. 그러니까 그렇게 프로페서형의 몇몇 인간에 대한 사탄의 과도한 관심이, 두뇌의 뒷편적인 관심이, 일억이 넘는 일본 일반인들을 그만 방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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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식은 전세계에 파급된다.

 

사람들은 학교에서는 급식이나 용기를 받지 못하고, 미국 학생들처럼, 오직 갱스터즈 랩에서나, 흥분하고, 공포 영화에서나 용기를 받는다. 그것도 파라타 항공에서 언급된 것이다. 라면이 신라면 큰사발을,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광기에 젖어, 남아공으로 여행을 가서 사람들을 죽일 것 같으나, 그래서 그들 중 한 명이 내 일하는 곳까지 와서, 한국 영화 인랑처럼, 어떻게 하려고 했으나, 내게는 저런 씹새끼가 어째서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하는 욕이나 쳐 듣고 갔다. 마음으로. 그랬더니, 치마를 입고는, 임우일에게 팬티를 줬다는 둥 말았다는 둥 그러는 것이다. 그렇게 귀여운 목소리를 내던 것이, 사람들 많은 대만 거리에서 깽판을 벌일 일이 무엇인가? 어쩌면 자기가 테오티후아칸의 주인이라고, 사람들을 쏴 죽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물론, 그것은 사탄이 시킨 것일 것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좋고 아름답고, 깨끗한 거리를 살다가, 속으로는 곪는, 그런 사탄이 원하는 도식을 살지 않고, 속으로도 깨끗한 세상을 살았던 것일 수 있다.

 

사탄의 육영수는

 

자기도 키움이라는 주장일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이나 듣다가, 일본 전역이 그런 중간 좀비들이 들끓어야 하는데, 화산들이 인도네시아처럼, 그래야 하는데, 그들은 항상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광주에서 살면서, 화성과 서울에서 살면서, 사람들에게 내비쳤던 인간형이라는 것이, 쿤밍이나 남아공에서, 벌건 대낮에 살인이나 저지르면서, 혹은 해가 지는 중에, 도무지 박수칠 때 떠날 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군체가 그런 사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있다지만, 탱고를 추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숱한 인간형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내가 몇 명이나 되는지 헤아려지지도 않는다. 일본에서 깡패로만 나오고, 한국으로 술 먹으로나 오고, 하는 것도, 한국에서는 목소리 좋고, 잘 부르는, 아직도 살아있는 하춘화 같은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순간 절대적인 인간이라는 것이, 목적도 없이, 살벌하게 아이들을 키움이라는 코드네임으로 찌그러지는, 그런 자기들은 내려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은 한 명의 종로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했다.

 

내가 오늘의 한국시. 무슨무슨 상, 그런 패턴으로 유일무이한 한국어를 말하자, 갑자기 한강이 노벨상을 받은 퍼포먼스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화가 첨단을 달려왔기 때문에, 문학이 자국 내에서, 영화를 따라잡기는 매우 버거운 상태이다. 영화는 사전적인 정의가 필요치 않다. 분위기와 효과음, 조명애만 있으면 된다. 사전적인 정의가 충분하지 않는 문학은, 그런데 그것이 없는 문학은, 기억에 남지 않는 볼썽사나운 사가 될 수 밖에 없다. 

 

한국 축구는 한국 영화인가? 아니면 한국 문학인가?

 

무슨 한국 축구가 한국 문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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