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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하박국 사람들. 너무나 아름다운 눈매......

by 마음대로다 2026. 6. 19.

 

하박국 사람들. 너무나 아름다운 눈매......

 

 

 

 

 

 

 

 

 

사람들은 손흥민을 보고,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인 줄 알았다. 그와 같은 변명은, 변화는, 우리가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축구는 강철 체력과 세련된 동작으로 하는 것이지, 한국 팀의 면면처럼, 얼굴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프레데터에서도 등장하는 대목이다. 전 세계의, 여러 인종들 중에서 최강의 남자들을 모아 놓았다. 그러나 그 외롭고, 힘든, 피비린내 나는 밀림에서, 밀림은 마치 미림이나 밀양처럼, 우리가 영원히 가꿀 수 없는 한국어와 같아서, 정글과 같아서, 정국과 같아서, 그와 같은 영원한 무책임의 밀림에서, 영혼의 죽음으로, 도리어 영혼을 증명하면서 떠난 인디언 한 사람이 그렇게 우리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오늘 멕시코와 한국의 경기처럼, 정국의 경기처럼, 앞으로는 슈바 제네거보다, 그 한 사람의 인디언이 생각날 수 있을 것이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니, 한국적인 철학, 프라벌브, 몇 개 없는 맥심 중에 하나, 올드보이, 그와 같은 다리에서 만나니, 어쩌면 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친구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계산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텅빈 가죽처럼, 슈바 제네거에게 외모의 영광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슈바 제네거가 인물의 마지막, 그러니까 영화적인 프레데터의 공장 과학적 군사의 현실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가 된 것처럼, 어떤 사람은, 수많은 인디오들은, 다른 영혼의 죽음으로, 어떤 영혼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내가 멕시칸이었다면, 멕시칸 치킨이었다면, 얼마나 미국 아이비리그에 침투가 원활했겠는가? 어렸을 때는 위대한 게츠비를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폴 드만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리고 차를 몰고, 중고차 하나를 사서, 멕시코에 있는 집에 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장 환경의 이중 부담이 없이, 단일 부담과 기억, 지원을 갖고서, 다시 아이비 리그의 영문학과에 전투를 하러 갔을 것이다. 그런 것을 멕시칸들이, 멕시칸 치킨들이 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나만큼 못했더라도, 실은 굉장히 많이 시도했을 것이고, 수 많은 사막들과 저녁 하늘들을 보면서, 집에 가고, 다시금 학교에 가고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없는 수준은 넘었을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한국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존재의 엘에이 폭동 같은.......

 

만일 멕시칸들이 공부를 못했다면, 어쩌면 미국은 대도시만 발달하고, 다른 곳은 진정 좀비들이 나오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보면, 나만 공부하고, 북해도의 눈처럼 하얗고, 다른 이들은 온통 학교에서 싸우고, 던지고, 터지고, 붙고, 욕하고, 그리고 좀비들이 창궐하지 않는가? 미국을 기호학적으로, 미국의 어머니를, 그런 이상한 반지를 선사하는 젊은 축구 감독 같은 짓은, 너무나 쉽게 횡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멕시칸들이, 낮에는 알로에를 수확하고, 저녁에는 공부를 해서, 미국이 대도시 바깥으로 좀비들이 창궐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일본도 그렇다. 일본이 아시아 유일한 에이브이 국가라고 해서, 야한 것만 찍고, 야학에, 들불 야학에 힘쓰지 않았다면, 일본은 지금 북한처럼 굶고, 굶다가, 아사히 신붕처럼 아침에는 죽어 있는 이들이, 클럽이나, 나이트 클럽, 다방사였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 자신이 추국이 되어서, 미국을 추앙하는 일을 하는 이들을 보고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꼬리는 너무나 짧고,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우나, 사랑하면서 꼬리뼈가 과도하게 나온 여자를 평생 기억하는 것처럼, 그것을 잡을 수는 없고, 잡고자 하는 이에게, 다만 꼬리뼈의 형태로 그것을 감추듯이 드러내는 것일 때도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마치 중남미에서 사라진 미야, 마야, 길음 사람들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멕시코의 자연적인 전쟁에서, 코드명 알로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이민을 와서, 내 중학교 때 이민자 선생님, 아름다웠던, 그들이 인공적으로 점차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마야 사람들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멕시코와 한국의 월드컵 경기처럼, 그것은 그렇지 않음을 기억하는 축제와 같은 것이다. 이태리는 멕시코와 거의 모든 것이 비슷하다. 우리나라에 이태란이라는 아름다운 여배우가 있는데, 베로니카 벨루치 같은, 사람들은 야유할 것이나, 이름을 조금만 바꾸면, 멕시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김태리가 있는 것처럼, 그것도 조금만 바꾸면, 김시코가 되는 것이다. 마치 한 팀이 분열하여, 월드컵 경기를 채우는 것처럼, 공이 영 이상하게, 비정상적으로 골인이 된 것이, 그래서 발생한 것일 것이다.

 

우리가 일본 사람들을 보면서, 놀라는 것은, 샤미센과 벤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이다. 아는 것도 많고, 재즈를 좋아하고, 하루키가 그렇게 일본 사람 같아도, 그의 취미가 우리들의 모범이 될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선입견과 벗어나 있는 것들을 발견할 때가 너무나 많다. 일본에 근대 서양식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다. 일본에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있대서 그런 것도 아니다. 어느 겐 날. 그런 것들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다. 뭔가 추해지는, 추레해지는, 추레라, 멕시코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뭔가 격렬해지고, 파울을 하는데도, 파울로, 혹은 코엘로, 둘을 합쳐서, 파울 코엘료, 그래도 판사가 휘슬을 불지 않는, 초반의 어린이 감기약 코코 시럽 같은 수준을 우리가 잠깐 발견하여서, 드디어 그것의 현실을 발견하고는, 그것의 뉴멕시코를 발견하고는, 네바다, 플로리다, 텍사스, 일리노이를 발견하고는, 일과 놀이, 그런 몇 개의 건축과, 오페라 하나 쯤은 이제는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이 되어서 그럴 것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자기를 멕시코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는, 헐리우드에서 로보캅들을 찍어왔겠는가?

 

얼마나 멕시코의 영토가 컸는가? 다만 영토 분쟁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정신을 자극했던 것이다.

 

서양 철학이 어려운 백인들. 체력이 좋고, 고무 같은, 흑인들. 그들이 어울려 춤을 추면, 지구의 멘틀에까지, 멘탈이 나갈 때까지, 지오까레, 놀고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디오들.

 

인디오들. 인디사들. 인디육들.....

 

오디오들....

 

인디세이들......

 

한국 사람들이, 죽은 마야인들이 돌아와, 그런 고대의 인디오들이 돌아와, 자기들 근처에서, 나타나는 것 같은 환상은 어쩌면 현대적이고 이미 오래된 신화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점차로 알게 되는, 한국 사람처럼 글을 잘 쓰려면, 그들처럼 찢어진 눈매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 정신의 섬세한 최종 판단을 가지려면, 그래야 하는 것인가?

 

그들은 기차를 타고 그런 생각까지 하고는, 남미 어딘가에 있는, 중앙역에 내리기도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