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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설교가 없는 사회는 얼마나 슬픈가? : 선동열의 제구

by 마음대로다 2026. 7. 19.

설교가 없는 사회는 얼마나 슬픈가? : 선동열의 제구

 

 

 

 

 

 

 

우리 모두는 박정희, 학생 제군, 그러니까 다 아는 것이 아니나, 공은 던져야 한다. 껍데기는 가라도 그렇다. 금세 자기가 프랑스 사람 장 껍데기가 될 줄 알았다면, 그런 시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슬픈 박정희, 학생 제군, 공은 던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유동에서 계림동으로 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가깝고, 그렇게 가깝지는 않으나, 제법 영화로운 거리와, 안쪽, 알려지지 않는, 그리고 가로수들을 벗 삼아 걷다 보면, 거기에 또 있는 학생 제군, 김대중, 김영삼, 금세 대인시장 입구와 파출소가 나타난다. 거기가 끝이다. 그런 느낌을 주었다. 왜냐하면, 맞은 편에는, 지금은 없는 계림 극장과, 무등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수 오거리로 가면, 어린 나이에는, 이제는 산수화로 들어가는 것인가 했었다. 그것은 기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무서운 것이었다. 우리는 늘 오만가지, 오만석,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생각들 중에 살아남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다 사라지는 것들이 아닌가? 반찬이 맛있었다, 감자볶음에 간장이 덜 들어갔다, 여자애들은 자기 친구의 옷이 너무 비싼 것이 아닌가 하는, 경제 정의 같은 것, 그리고 성적, 거기서부터는 종교의 영역인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절대적으로 절대자를 찾는 사람들과, 그런 기미는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그 어둠의 너른 거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상권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상중하 할 때의 상권이 아니다. 한자로 쓰면 제법 아름다운 조선 사람이 눈에 띈다. 램브란트가, 원래 조선 사람으로 변신해서, 자기를 그리고, 다시 램브란트로 변신해서 좋아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한 것이다. 어쩌면 이제부터 유명해질 것이다. 그것에는 아름다운 상권의 옷이 담겨 있다. 웃음도 보기가 좋다. 그 사람도, 조선에서 철학자가 나올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알 수 없는 다부진 마음이, 늘 천상의 상권으로 진행하는 것을, 잉글리쉬맨 인 뉴욕, 느꼈던 것일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잘 하는 것을 하게 되어 있다. 남자가 상권이 있대도, 아름다운 여자를 거쳐, 공부하는 남동생에게 이득을 줄 수 있다. 이득렬. 그리고 여자가 상권이 있다면, 다만 중국의 슈퍼마켓, 초시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국문학적 문단의 초시만 통과한 사람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목사님이 에스더를 설교하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둘 만의 키아로스큐로가 발생하며, 저녁 가로등 아래서, 한 여름인데도, 시원해지고, 어느새 눈이 내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쿤밍에 눈 내릴 날씨는 없지만, 고속도로로 질주하면, 금세 눈에 옥룡설산이 보이는 느낌 같은 것일 것이다. 여자도 얼마든지 남자를 따라, 문자를 연습하고, 프랑스의 잔다르크처럼, 아무런 인과도 없이, 문학적 마녀가 되어서,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여자가, 노르웨이 사람이라든지, 페르시아, 혹은 중국 사람이라든지,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러나 그와 같은 단단한 마음은, 아주 짧은 시간, 요즘 말하는 짤처럼 들어왔다가 나가고 만다. 천사가 수태고지를 하려고 해도, 금세 종적을 감추고 나면, 천사도 어쩔 수 없이 지능장애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러니까 옆에서 악마가. 어쩔 수 없이, 너는 천사, 해주는.....

 

짤은 사탄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짤은 그 누구의 짤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축구는 그와 같은 끊임없는 짤로 승부를 보는, 그런 것들 같다. 야구도 자세히 보면 그렇다. 대신에 많이 진득한 것이 사실이다. 누구 말마따나, 자다 나와서 할 수 있는 것도 야구이다. 뒤에서, 팥죽을 누군가 시켰는데, 못먹고 있는 것을 보고, 묻고 답하고, 대신 먹는다 해도, 그래도 되는 시간이 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을 다 먹었는데, 수비를 보면서, 잠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잠이 온다는 것은, 바이블이 펼쳐진다는 신호이다.

 

남이 해주는 설교는 한계가 있다. 거기에는 악마가 보고 있다가,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대신 걱정해 주는 것도 있다. 방금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그리고 돈이 없으면 안 하면 된다, 그런 설교 제목을 보았다. 대체 그런 짤은 어떻게 연상하는지, 연상호, 잘 모르겠다 싶다. 연상의 끝에는, 옛날에는 연상의 여인이 있고, 나이 든 여자가, 아름다운 옷차림으로 지나는 것이 있으나, 사회가 발달하다 보니, 연상호 같은 감독도 그와 같은 도시의 깊은 키아로스큐로에 서 있는 풍경이 되었다. 영화 요수도시에는 그런 것이 잘 그려져 있다. 소녀는 나를 찾아오지만, 나는 일본어를, 영어도, 아무튼 그런 것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내가 일본 사진들에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이나마 그들에게는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돈이 있으면 하고 싶은 것이라는 것은, 수태고지와 같은 짤이다. 그것은 현상이고, 메시지이다. 그러나 돈이 갑자기 생겨서,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면, 다만 몸만 피곤해지고, 살이 찌는 현상이 되기 일쑤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돈이 있고 싶은 불만은, 일종의 다이어트 효과 같은 것이다. 뇌하수체가, 숱한 신경들을 자극해서, 지방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숱한 원망과, 차단과, 아쉬움의 연속들이, 마치 프로그램처럼,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상한 말에 아무런 문지방이 없는 신부는, 툭하면 내게 향하는 공중파를 태우지만, 그러니까 다시 보면 같은 도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돼지와 멧돼지는 다른 것이냐 하는 논쟁이고, 콜럼버스의 알이 돼지냐, 아니면 멧돼지가 닭이 먼저냐, 그런 논쟁도, 마침내 산수 오거리의 시계방을 지날 때 내게는 있었다. 분명히 내가 경험하는 것으로서, 상권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의 날개를 갖고,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태권도장을 향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자의 축복이다. 악마가 상권의 아름다운 빛에 당황해서, 블레이드의 뱀파이어처럼 사라졌다는 말은, 그것도 이제부터 유명해질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감별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홍콩은 실제로 그 모든 것의 전초기지 같은 것이었다. 우리들 전방에는 지오피가 있고, 지피가 있다.

 

 

*

 

 

청년의 동복을 벗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잔인할 정도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죽을 때까지 벗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소찬휘가 자기를 가리켜, 잔인한 여자라 그렇게 욕하지 말아 달라고 노래를 했던 것이다. 아니라면 하는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 정신이다.

 

 

 

선동열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평생 내 거울을 보면서, 가장 못생겼을 때의 얼굴을 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때는 대게가 동글동글하다. 어쩔 수 없이, 평생을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구가 먼저인가? 스피드가 먼저인가? 나는 다시 계림 파출소를 지나면서, 산수 오거리를 올라가는 길을 가기 시작하면서 생각하였다.

 

 

제구가 먼저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정신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진정한, 다시금 반복되는 단어로서의, 키아로스큐로의, 그와 같은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던 것이다.

 

제구가 항상 먼저인 것이다. 제구가 먼저가 아니라는 만심이, 도리어 스피드를 망치는 것이다. 우리가 학생 제군, 학생 제군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아니라면 하는 수 없다. 그것은 에이비에스존과 같다.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 같다.

 

선동열의 낮은 허리는, 그것의 고난의 증거이다.

 

만심이 가득하지만, 만심이 없다.

 

어둠 속에서 혼자 던지는 것 같은 슬라이더가 그래서 탄생하는 것이다. 조용필과 위대한.....

 

일종의 정만호 같다......

 

 

 

*

 

 

별기

 

 

나는 무조건 스트라잌만 던졌다. 일종의 스타리아 같았다.

 

에이비에스존에 따라, 무조건, 그것의 외곽선으로만 공을 던졌다. 공이 빠질 때는, 너무 투구 동작이 흩어졌을 때 그랬다. 그래서 항상 타자들은 치려고 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왔다. 무조건 스트라잌만 던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나는 우연히 어깨가 준비가 안 되어서, 눈높이 높은 공을 던지는데, 나를 처음 보는 타자는 스윙을 하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고, 자초지종을 조금 알고 있던 수비들도 다 함께 놀라게 된다. 그래서 나의 투구 철학은 좀 더 철저해지게 된다. 바깥 공에는 백 개의 변주가 가능하다. 직구, 변화구, 가로 질러가는 횡선, 그냥 내가 힘이 없어서 공이 뚝 떨어지는 것, 그것이 다 스트라잌이다. 가장 잔인한 것이, 직구인데, 내가 그날 먹은 것이 없어서, 힘이 사라지는 것 같은 투구이다. 나는 마치 초능력자인 것처럼, 요수도시의 남자주인공인 것처럼, 그와 같은 공을 던졌다. 그러면 그렇다고 그런 공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공에는, 그와 같은 아주 미세한 수학이 담기게 된다. 그와 같은, 수학의 정석 같은, 미세한 차이를 갖고, 그들의 국가의 기둥 같은 배트가 헛스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심심하니까, 가운데로 공을 던지면, 일종의 쓰리디 안경효과처럼, 자기에게 공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운데 공은, 또한 있는데, 직구가 있고, 회전을 많이 주는 속구성 변화구도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차이들을 두고, 하나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다른 쪽으로 이사를 가고, 거기서도 자신이 붙지 않았는데, 내가 다시 유동으로 오고, 계림극장이 있던, 대인시장 입구로 오면, 이제는 공이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우연히 공을 맞히고, 안타가 되고, 일루로 뛰어가면, 나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안타를 친 것처럼, 마치 전지적 관찰자 시점처럼 좋아하기도 하였다. 만약에 스피드까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이 나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실제로 어두울 때, 그 길을 걷기도 했다.

 

나의 생기는

 

 

 

그 많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