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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중국과 일본 두 기름에 관하여. 북한도 포함해서

by 마음대로다 2012. 8. 19.

중국과 일본 두 기름에 관하여. 북한도 포함해서

 

 

 

 

 

 

 

 

우리 벅스에서, 엔니오의 숨어 있는 앨범을 보내주었다. 역시 다르다는 것. 같다는 것. 그것은 한신대학교 장공관의 급격한 경사에서, 어디 어딘가에서 내 가난한 아내가 국문학을 공부하고 있을 것 같은 긴장이다. 그녀는 공부한다. 그러나 열길 물속. 어부바인지, 어푸어푸인지. 사람의 의식이라는 것. 공무원인지, 민선시장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어부바인지, 어푸어푸인지. 나는 완전히 아름다운 카페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이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동물 인이 아닌 사람 인의 상태에서. 그 시절에 나는 신돌석과 함께, 일렬진 나무 그림자들을 티비에서 보았고, 끊임없이 문답하였다. 사람들도 다 나와 같다는 수많은 비가 내릴 때의 파문현상. 에스더라는 것. 죽으면 죽으리라는 것. 나는 민은경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했고, 다만 나중에 짜맞추기를, 이제는 하강국면 밖에 되지 않는 수원 내려가는 전철에서, 누군가 어떤 여자가 에스더를 읽다가 내게 기대 잠이 드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민은경 같았고, 다른 한 사람은 친구 중에 가장 먼저 공무원이 되었던 고향 광주 교회 친구 요심이를 닮았다. 정요심이.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지하철이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요심이는, 숱한 굴곡 안에서는 이명박이를 닮았다. 그것은 충격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돌잔치 속에 있었고, 내 친구들은 수많은 에이도스를 향해 돌진했던 것인 셈이다. 우리에게는 요리사가 있는 것이 좋다. 내 친구 대련이가 전문대학이긴 하지만 조리학과를 갔다. 선생이 있으면 좋다. 내 친구 나라가 교육대학교를 갔고, 선생이 전문지식이 있으면 좋다, 그래서? 나중에는 약대인가로 편입을 했다. 공업은 근대 국가의 기틀이다. 친구 종수가 공대를 갔고, 그러나 인간적인 가르침과 배움의 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학원 수학 강사로 일하고 있다. 법이 또한 있어야 하지 않는가? 내 친구 찬훈이가, 매우 복잡한 도와 법을 익히기 위해서, 한양대 공대를 나왔고, 정보통신, 그러다가 변리사, 변호사 어려운 시험을 모두 패스해서는 서울에서 사무소를 개업하고 있다. 사람은 결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여학생들 중에는 졸업 비슷하게 결혼한 사람도 많았고, 내 친구 지영이는 유아교육학과를 나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우리나라의 화석과 같은 정신 지도 안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가공할 만한 인빈서빌리티를 달성하였다.

 

 

 

 

중국과 일본은 무엇일까? 그 무엇도 연결이 될 수 없다. 그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다위다아워 같다. 돌은, 존재와 운동의 최대치, 던져진 곳에서는, 그 나라 말을 익히고, 결혼도 할 수 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독도는 내 땅이요, 우리 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말을 쓰고, 알아듣고...... 이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명박이가 한 돌 안에서는 중국이건 한국이건 할 것 없이, 일본도 마찬가지, 큰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일본은 그것이 뭔지도 모르게 천년 가까이 내려오는 주군에의 충성 철학이 있기 때문에, 학생이 사라지는 검정 흑의 인터벌이 막강한 것이다. 그런데 주군은 굉장히 가꼬이 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그들에게 없는 주군론을 채워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선의 임금처럼, 학생의 거대한 배움의 텃밭 위에서, 경연도 하는 그것도 나처럼 수학적으로 접근해가는 사람에게는 약간 의문시되겠지만, 있음이 그래도 약정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가꼬이 주군 영화는 그쳐버린다. 너무나 쉽게. 다만 닌자들이 아니라..... 더욱 예리하게 설명하고 싶은데, 설명이 되지 않는다. 주기론과 주리론으로, 이것은 조금 의외인데,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정치범에게 사약을 내린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마치 신석기 시대마냥, 같은 국민의 무사들에게 마을이 참살당하는 일도 없지 않다. 임진왜란 때에, 조선의 도공들을 모셔간 것도, 죽을 때의 도를 사약을 받는 것으로다 하고 싶은 가등청정이나 소서행장의 소망이었을 것이다.  

 

 

주리론이던지, 주기론이던지, 지금 일본은 자기들 일본말이, 내용적으로는 서양을 흉내내기 좋아하고, 자체적으로는 상당히 수준이 없다는 것에 놀라고 있다. 주기론이던지, 주리론이던지, 역사는 미터법과 같아서, 원하는 방향으로 돌이키려면, 같은 동작을 똑같은 분량 만큼 반복해야 한다.

 

 

 

 

중국은, 김용옥의 잠깐의 설명처럼, 그것은 일본과 동시동작적인데, 국가를 직관하는 문법이나 매개로서의 훌륭한 철학자가 없다시피 한다. 공부를 해도 쉽게 배신감이 들 터인데, 북경이나 상해 청년들도 아닌 순양 청년들이 주장을 할 것이 무엇인가? 사치스럽고, 지역에서 잠자다 일어난 것 같다.

 

 

 

 

뭘 빼먹은 것 같은데.......

 

 

 

 

 

 

 

 

 

 

 

*사진은 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