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전깃줄과 바하의 두 대의 바이얼린을 위한 협주곡의 길항관계
우리 영화는 육이오 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피어난 창포꽃과 같았다. 먹으면 왠지 배가 부를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모든 것의 소문만복래처럼, 먹을 것으로 환원될 것 같은 위기 속에서, 꿋꿋하게, 사람들을 잡아먹지 않고,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국가와 미래를 위해 참고, 참고 또 참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먹을 것이 넘친다. 콜레스테롤. 혹은 트랜스지방. 어제 피자를 시켜먹고, 오늘도 피자를 시켜먹으며, 마땅히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는 소시민이 경우, 내일도 피자를 시켜먹을 수 있는 재력을 갖게 되었다. 피자엔 콜라. 그것의 발음상으로 잔칫집 같은 느낌을 보다 더한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먹었을 것이다. 햄버거는 혼자 먹는다. 나와 같은 사람이나, 두 개를 사와서, 어머니 하나 나 하나를 먹으려다가, 손님이 와 계셔서, 어머니가 다 드시지 않는다고 해서, 햄버거를 반으로 잘라서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잔치 같았고, 근무 시간 쪼개기 쪼개서 직업 늘리기 같았다. 우리 옛날의 드라마는 사실, 뭐든, 먹는 것을 중심으로 그려나가면 완전 리얼해질 수 있었다. 우리가 그렇지 않은 것은,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염려해서, 우리 문인들이 오직 리로만, 리로만 기를 쓰고 나아갔기 때문일 수 있다. 박정권이 잘 먹고 지냈다면, 그것은 경제 정의기 보다는 현실 반영으로서, 당연히, 그들이 만일 지금에서야 남들과 함께 먹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면, 드디어 밝혀지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피디들의 전언에 따르면, 드디어 밥 한 공기를 눈치 보지 않고 삼매에 빠져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자신부터 바라보게 되었다면, 그들의 생명 연장은 가상하고, 눈물 겹고, 경제 개발 몇 개년 계획 같았던 우리의 형이상학이 드디어 가면라이더나 액션물의 공사장 씬에서 벗어난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폴리탄은 실체일 수도 있고, 실제일 수도 있으며, 가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경제 개발 몇 개년 계획을 순전히 우리의 힘으로 추진했으니, 지금에는 자연 되살리기, 녹색 산업으로 나아가고, 눈을 감고도 이제는 뚝딱 항만도 만들고, 토목, 철로도 만들고, 마음만 먹으면 보잉 칠사칠 같은 거대 여객기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경복궁 중건이나 했지, 근대나 현대식 건물을 지어라고 하면, 처음부터 떨렸고, 때로는 치가 떨렸고, 추워 떨었고, 자신감이 떨어지자 노가다 십장의 장자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다그치고, 밥도 주지 않고, 그랬드랬었다. 사람이 산업을 회사 단위로 생각한다면, 대림은 자동차 다시 말하면 오토바이와 건설, 그리고 변기가 함께 있는 것이 놀라운 형이상학이고, 삼성이 자동차와 반도체 가전과 건설이 함께 있는 것이 그래서 한없이 경이로운 것인 것이다. 해도 해도, 우리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저변과 결여가 있었다. 학생들은, 캠퍼스 중심의 우주 한 켠에서, 하숙집에서 주는 백반을 벗어나면, 쓰레기 같은 운동권 지식에, 까라면 까는 군사 문화에, 무조건 흉내내고 보는 똘아이 근성의 영화에 마음 깊이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하고 돌아오면 혀가 꼬부라져 있고, 노랗고, 하얗고, 말을 적당히 믹싱하는 문법과 처세의 달인이 되어 있다. 유럽 쪽이 그나마 나았고, 미국을 다녀오면 하나 같이 여자들은 국적 불명의 머리 모양을 했으며, 남자들은 스킨쉽이나 프리허그 같은 것을 일삼았다. 건축은, 찰라처럼 행해졌고, 사람들은 덩그라니 남았다. 사람들은 찰라처럼, 그것의 로고스를 읽는 날이 있다. 분명히. 닥패의 할머니처럼, 드라마의 처음에서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는 전등사로서. 사람들이 음식의 맛을, 가장 좋은 것과도 서슴치 않게 비교하고, 못지 않다고 언행일치로서 칭찬할 때. 그것은 분명 을사오적에도 빠질 뻔한 인촌 김성수라는 시니피에가, 유인촌 김성수라는, 백터맨에서의, 재밌는 만두 육즙으로서 입에 터지는 것의 재미와 풍경인 것이다. 일본어로 후우케인가? 어쩌면 기자들이 단지 황신혜나 박지윤처럼 말하고 싶은데, 지면의 마성과, 습관과, 경쟁 때문에 잘 모르는 말들을 들여와 신탁통치를 시키기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반탁 운동, 신문 안보기 운동을 당한 것일 수 있다. 만일 시집이라고 생각해보자. 그것을 아주 만담가로다가, 지식과, 정보, 사진들을 직접 가서 찍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누가 오백원을, 팔백원을, 천원을 아까워하겠는가? 떡하니 헤드라인부터가, 배반의 깊은 장미가 되면, 사람들의 아직 상하지 않는 시니피에가 소리나지 않게 절규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전화를 하면, 찰라와 건축과 연결된 폴리탄들이 먼저 받는 편이다. 한번 하고 싶지만,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마치 채석장에서 돌을 수십톤 손으로 깨고, 일본에서 괴물 영화를 실사로다 찍고, 전깃줄을 끊고, 스파크, 그것들을 모두 재생 처리 공장에서 재활용 부품으로 정선하는 작업을 거쳐야지만, 하지원과도 하고,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여배우와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아래로는 양구와 같다. 양구는 한국이다. 오직 양구에서만이, 마치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혹성의 풍경에서처럼, 우리는 겨우, 역광 속에서 드러난다.
고갑희와 어떻게 연락을 주고 받을 때가 있었다. 나는 삐삐에 바하의 협주곡을 녹음했고, 내게 메시지를 남기려면 그 음악을 들어야 했다. 그것은 양구와 같다. 조금은 자랑하고 싶은 의식의 전면부이긴 했으나, 내가 바하인가? 아니며 소품이나, 소꿉놀이이지만 그와 같은 협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나누는 요정을 만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학교에서 선생들과 양구였다. 친구는 친구고, 선생은 친구였다. 신학과 선생들과도, 내가 마치 서울대학교 학생처럼, 그것의 횡경막, 서스름?이 없었고, 대화를 나누거나 하면서, 뭔가 내 앞에 거대한 강사가 떠오르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나의 시니피에. 그것은 선생을 공경하고, 나의 의지를 스스로 아무런 시간에서도 발견하며, 늘 바쁘고 어려운 다음의 악보처럼, 재빠르게 넘기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여겼다. 인사는 구십도로 했지만, 말을 하다보면 언제 인사를 했는지도 모르는 무뢰한이나 해동검도 시범자 같았다. 고갑희 교수도 지면 상에는 실력이 좋았고, 왠지, 한신대는 실력 좋은 교수들이 많아서, 서강목 교수도 나름 빼어난 사람 중에 하나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들이 도리어 신학과 교수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것의 목적치, 혹은 기대치에 두 사람 차오르지는 못했어도. 마치 스피노자처럼. 그것의 고대 동양철학자 노자와의 스핀적인 관련성처럼. 이 모든 것이, 젠부, 두 대의 바이얼린을 위한 협주곡을 포터블로 듣지 않으면, 입장해서 볼 수 없는 휴우케들인 것이다. 우리 고갑희 교수가 나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삐삐 음악이 바하냐고 했고, 나는 그때는 제목을 알았던지 뭐라뭐라 했을 것이다. 음악이 아주 좋다고, 두 개의 달이 뜨는 혹성을 여행 중인 사람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했었다.......
나는 바하가 친숙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이거나, 전의식이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는, 자랑치 않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계속해서 자랑하는. 쿤데라도 겨우 야나체크나 찾았지 않은가? 오늘 케이티 실내악 모임을 아르떼티비에서 보는데, 한 어려운 사람의 무의식이 또한 드러나는 것처럼......
모짜르트는 그렇다면 모자라거나, 슈베르트는 좋은 신을 버리는 짓인가? 좋은 것을 깊이있게 드러내지 못하고, 늘 쫓기는 것들을 애매하게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는, 좋은 시간을 이미 차지 하고 있는 것들은 서울시의 영원한 휴우케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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