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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단 하루도 맑을 날이 없는 요사이 미국 영화들의 시리즈

by 마음대로다 2014. 11. 24.

단 하루도 맑을 날이 없는 요사이 미국 영화들의 시리즈

 

 

 

 

 

 

 

 

 

음침하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그늘 음. 침 침. 그늘에서 침으로 쑤시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유형원의 반계수록적 관점에서, 어째서 영화가 있으며,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다만, 대중 영화, 문화의 민주적 제도적 산업적 조건에 관한 성찰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가 달걀만을 먹었을 때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 여름날에 백숙이나 삼계탕을 먹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스펙타클해졌었다. 공공칠이 멋진 자동차를 태워줬고, 이런저런 사만다들이 미국의 평원을 질주하였으며, 특히 센프란시스코, 줄여서 에스에프, 스타월즈는 여자 주인공이 일본 여자보다도 흑발이 어울렸고, 알게 모르게 제국의 군인들은 성경의 뼈다귀들이 일어서 움직이는 듯한 묘함을 우리에게 자아냈었다.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일로를 벗어나, 제천을 벗어나, 영월을 벗어나, 서울이나 부산을 갈 수 있었다. 광주에서 전주를 가는 것은, 그것은 단지, 내가 있는 이층집의 풍경에서, 여자 친구가 있는 같은 이층집의, 저 멀리 보이는 야트막한 스카이라인이 그 정도의 각도만으로도 변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에 불과할 것이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할지 안할지 하는 전선은 사람들을 어느 때는 감전시키기에 충분한 일렉트리시티인 것이다. 한국에서 홍콩을 가는 것이 코스모 폴리탄들에게도 우주선과 같은 기분을 자아내었을 것이다. 우주선이란 비행기와 달라서, 비행기는 친구가 파일럿이기도 하고, 부기장이기도 하며, 스튜어트, 스튜어티스, 옆 좌석의 손님이기도 하지만, 우주선은 갈 때는 울릉도 호박엿, 도착하니 옆에 죽고 없고, 내려서 걷다 보니 최근 미국 영화 퍼지처럼 총알을 고속으로 심거나 훼스 시키는 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주선이란 것이, 영화에서도 중요한 것은, 그것은 철학과 종교 문학에 관한 개인과 제도의 홍예, 다시 말해서 무지개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믿었던 광해에게 허균이 능지를 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스타월즈의 우주선을 박진감 있게 보았던 것은, 그리고 폴 바호벤의 스타월즈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그와 같은 우주선에 관한 의미론적인 틀이 우리 안에 조금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선에 육박하는 철선은 중국에 많다. 큰 강에 많고, 중경을 오가는 옛날 철선에도, 구룡반도를 오가는 홍콩의 철선에도 그런 식의 분위기는 있다. 담배를 피웠던 오천련이, 내릴 때는 보이지 않고, 상당히 바쁜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진다고 하면, 그는 우주선을 탔다는 의미이다. 어머니는 중국어를 하시고, 아버지는 죽지 않고 착하게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자식 중에 셋은 상하이에 있고, 그 중에 대학을 다온 사람은 자기 뿐이다. 늘 그렇지만, 마치 노예의 인두질처럼 우리는 영어를 못한다. 그것의 철학적 의미를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이, 사람들은 타고, 내리고, 타고 내리고 한다. 그렇다면, 문학에서 어학으로의 길이 영문학을 전공하는 리자이웨이 군에게 열려 있는 것인가? 문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어학을 공부하는 것이 웬지 시스메틱해보이는 것인가? 닭 사이드 오브더 문. 혹은 디스사이드 오브 헤븐. 그와 같은 단호한 상해 정부의 결정은, 왠지 모르게 가방에다 러시아에서 재수입한 도시락 라면 폭탄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중경에서 내려 좀더 시골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다.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것은 한자의 서예 같다. 그것을 간파한 사람은 중국에 없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의 타이어가, 영락 없이 붓의 획을 닮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일제 오토바이보다 성능이 우수하며, 아름다운 오토바이 회사를 차리는 것이, 선전의 유명한 부호의 아들, 판유쳐이의 꿈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꿈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다. 이미 있는 오토바이 회사를 발전시키는 방안. 그리고 일본 회사 하나를 막대한 돈으로 인수하는 방안. 새로이 회사 하나를 만드는 방안. 계속해서 의논하고, 토론하면서, 시간이 벌써 십년 가까이 지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엎드려서 만지는 손바닭의 흙과 같은 절실함이고 진지함이었으나, 갈수록 어학적 현실을 알고 나니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연인의 향기 같이만 되는 듯 하다. 모든 미국 영화의 시리즈는 동양척식회사의 불분명하고, 불균등하며, 태초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판단 미스를 파고드는, 파괴력은 없대도 생존력이 있다. 브레히트의 인문학적 테제 중에 하나, 모든 인민 예술의 핵심은 세계관적인 불편에 있다는, 나름 주의주장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때문인지, 북경 무슨 호수의 예술촌의 화면 필과 미국 영화의 무본질적, 무형식적, 무인과적 영화가 나름 합작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본질이 높이이다. 존재가 시작이라면. 갈 곳이 없는 인생이긴 하나, 우리 인간이, 그와 같은 본질을 상실한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역사적 주장이고 사람 목숨이 걸린 실험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 읽을 만한 근대의 저작이 하나도 없다. 만일 그와 같은 헝가리를 직관하여, 중국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퍼지 최근작을 찍고 죽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용납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중국인은, 중국인 후배를 남긴다. 그것의 유서를 어떻게든 본질로 올리려는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그러니, 실존주의가 사람들의 자연적인 노력 때문에도 본질주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가공할 만한, 터키제 잠수함을 갖고, 태평양에서 미국 본토?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평론가는 중국 도시 어디에도 생쥐존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만, 필사적으로, 미분을 얇게 펴서, 구워, 안에 내용물을 담아 보편적인 크레페 길거리 음식을 만들 뿐이다. 그걸 먹고, 몇 페이지나 읽으려나. 새들이 날아가면서 똥을 누는 무협 영화는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랬다간, 다시금 눈 주위에 다크서클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고대 중국 엘리트들이 문화 혁명을 일으킬 당시, 어쩌면 한고조 유방과 모습이 일치해서 숙청당했던 백미인의 우상에 다시금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 영화를 보았다가는, 미국 작가 플렌리 오코너,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나 궁금해야 하는지 안해야 하는지 모르게 되는 야트마한 지적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더러운 미국 영화를 보고, 그들의 백미인을 흡수하면, 그와 같은 단순한 서브리메이션을 통해서, 중국인은 그만 자기들의 문화유산이 아름답지 않다는 결론에나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설치는 되어 있으나, 감동이 없고, 전체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구비되어 있으나, 왠지 모르게 사진으로 빨려지지 않는. 계림이 아름답다 하나, 가면, 뭘 뜻하는지 모르겠는 인공석 뿐이고, 황산이 아름답다 하나, 케이블 카를 타고 오르내릴 때 아름답다고만 여기는 사람은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인 것이다. 그것도 우주선인데, 중경에서 철선을 타고 고등학교 동창이 있다 싶었는데, 내리고 나니, 그 사람이 오합분신, 다섯여섯 명이 되어 멀찌감치 사라지고 있는 풍경, 그 이상의 것인 것이다. 그 중에 한 명은 벌써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경찰이 벌써 출동해서 서로 말싸움을, 썀마, 뭐이썀마, 싸우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소매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소매치기를 한 것 같고, 누구 한 사람은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제발, 제발, 혼또, 오토바이를 타서, 가방에서 붓을 꺼내, 흰 종이 위에 먹물을 드뷔시의 라 메으처럼 뿌리기라도 해라. 왔노라. 보았노라. 오토바이 타고 왔노라. 그런 말이라도 썼으면. 자기는 그렇지 못하니까 말이다. 황산의 무시무시한 케이블 카를 타고 오르고 내려오면. 마음이 글을 쓰지 못한 붉은 천들이 생각나고, 생각이 너무 머리 속에만 있어서 벌써 녹이 슬고 있는 사랑의 열쇠들만 같다.

 

 

 

 

영화는 이미, 오토바이와 풍경의 단순하지만, 그것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음으로 인해서,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영화의 제일 원칙은 사냥의 쾌감이다. 팔다리가 부정확하고, 그 놈의 건강이 없거나, 제작자들이라는 집단주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같은 만찬이 없으면,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칼을 들면, 칼로 사람을 죽이고, 집을 불지르고 한다. 총을 주면, 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집도 부수고 한다. 오토바이는 어떠한가? 오토바이는 사마리아의 선인인가? 도리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다........

 

 

 

 

그리 오래된 옛날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문명과 영화라는 공식이 있었다. 지금은 문명과 전진무의탁으로서의 사진찍기, 신유람& 차유람이라는 공식이 있다.

 

 

 

 

 

 

 

 

 

 

 

 

 

*사진은 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