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람의 근원: 김주현의 모짜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앨범을 배경으로
클래식은 사실, 존만 하다. 그러나 클래식 연주자나, 연구가, 동호회나 출판사 사무실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단 그 복잡한 기술을 누구도 당장에, 코 풀 듯이 해재끼는 사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판단은 노동이 백을 달성한 뒤에, 그것을 반띵하려는 중간판매업자나 비슷하다. 그래서 비평이나 판단, 비판이나 논문 등의 상처를 입지 않고 민중에게 고스란히 클래식이 전해질 수 있는 가장 영웅적인 장르가 바로 클래식 음악이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사 비판적인 것이 괴물처럼 자생해서, 문단을 구성하고, 전단, 계급적 우위의 처녀 상실적인 지속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우리가 클래식 음악에 갖는 두번째의 영원한 본질적 오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더더욱 이유가 달라붙는 것은, 연주자들은 대개 음표에 일일이 하수인이 되어서, 문단의 깡패가 되어 있는 것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모짜르트가 그것을 예언했는가? 예언했던 것일까? 예언했다고, 누군가 나와 비슷한 백제식의 소설을 써서 발표하면, 그것이 기정사실이 될 것 같은 위기가 잠재해 있다. 통렬하면서도, 다시금 뚜렷하게 문장의 미덕을 획득하지 못하는, 어영부영의 잘난 체, 본질이 나타났을 때는 누구도 만나주지 않고, 그 사람이 비문단의 처지에 있을 경우, 읽은 채 만 채 하면서, 인디안들이 포장마차를 회전하면서 공격하는 장면이나 연출할 것이다. 대단히 고급스러운 것은 사실인데, 아무런 상호 협동이 되어주지 않고, 노동자는 소외되며, 물론 그것의 방식은 여러가지, 어린이 교육은 교사들로부터 못한다고 그래서 쏘리라고, 몬테쏘리라고, 몬탁괴물이다고, 아무런 정신적 우위도 없이, 순전히 경제와 정치, 행정과 국방의 파워가 있다고 뉴스의 중심에 서는 정치 괴물들이 바닥도 치고, 상한가도 치는, 주식전광렬이나 되는 것에, 수학적으로 보면 어처구니 없게도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 노동의 소외가 가장 깊다 하겠다. 결혼한 남녀가 바람이 나는 것은, 서로의 음부가 하나 음이나 해서 버려진 돌처럼 취급되다가, 거의 유일하게 그것을 서로 만질 때 마음이 상부해지는 것을 무의식적 전체가 체감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안성기라고 불리는 어떤 남자가 등장하는 바람 피우는 일본 영화를 내가 보지 않은 것은, 다만 이와이 슌지 작품이 아니래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은 너무나 무의식 같기 때문이다. 라라의 테마를 모방하는. 러브 스토리에는 갈 수도 없는. 다만 자기 나라의 야한 영화와나 구분 짓는. 클래식 음악의 하나님 같은 은혜는, 그런 사소한 데까지도, 그들 당사자는 상부했다가, 하부했다가, 정신도 없고, 다시금 바람 피울 날짜만 머리 속에 꽉 찬다고 한다면, 그들이 그래도 결단하고, 거북선 했을 때의 의기, 지방 자치 제도 같은 진여적인 채널의 기표를, 클래식의 아무런 비평도, 그것에 대한 의무도 없는, 다만 레이블을 사서, 비싸디 비싼 진공관 같은 방에서 듣고 있으면, 이것은 마치 영혼의 해방처럼, 파고드는 것이다. 그것은 훈계도 있다. 이것은 마치 앙탈 같은. 모짜르트 이펙트가 그것이 아닐까 한다. 이름의 인상. 세계 인민 누구도 그렇지 못하지만, 한국 사람들이나. 그것도 성리학적 혁명 이후에나 비로소, 모짜르트가 모자라다고 해서? 하는 의문형 반어법으로나 처음을 접할 뿐, 거의 단 한 사람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는데, 아무튼, 모짜르트의 음악을 바로 들으면 늘 언제나 지적이고, 학교에 가장 먼저 가고, 전효성 같고, 그러니까 공부도 잘하는데 춤도 잘추고, 아이들이 가을날에 몰려들어서 쉬는 시간에 떠들고 있으면, 자기는 야한 여자가 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시대적인 전위성, 영어로 프로그래시브니스를 과시하기를 팬시아트의 하나의 결정적인 무술로서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여야 한다. 피크가 어디인지를. 모짜르트인가? 모짜르트의 이름의 가장 정확한 해석은, 클래식의 참 피크이지만, 자기는 모자라다고 하는 음악 바깥의 시간에 있다 하겠다.
그러면 어디가 피크인가?
기타 피크와
피자 먹을 때 먹는 피클.
새벽에 한 무더기의 모자람들이 방문을 했다. 시끄러워서 나가서 조용히 시키면서 어디 다니냐고 했더니, 어디 다닌다고 했다. 그 중에는 여고생이 교복을 입고 다른 학생들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너무 우습고. 지금 보면, 탤런트 이지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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