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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劍값: 빛나거나 미치거나16편과 반젤리스의 음악 세계........

by 마음대로다 2015. 3. 11.

劍값: 빛나거나 미치거나16편과 반젤리스의 음악 세계........

 

 

 

 

 

 

 

 

노동을 하다보면, 농담을 단조비 많이 하는 사람을 참 좋아라 하게 되어 있다. 농담이 신비한 것은, 반젤리스 음악의 팔할의 근원처럼, 말 그대로 신비로운 문예지를 근거로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대학을 다닌 것인가? 이석재 교수의 강의를 탓할 것이 아니다. 그가 만일, 몰락하는 물레방앗간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물 한 칸 위에서 위태로이 균형을 잡아 그런 말을 했다면, 사람들은 도리어 아름답다 여길 것이다. 그것은 그의 인격에서 발로한 것인가? 아니면 철학이라는 신비로운 아리스토텔레스 하프에서 발원한 것인가? 그것의 트럼펫이나, 섹소폰을 탓할 것이 아니다. 대게의 백제는 주자 아래서, 서로가 서로의 등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사람들의 영체는 배신을 당하지만, 육체는 그와 같은 기가 막힌 blade runner의 산업에 의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국을 자주 가야 하는 것은, 영국이 우리의 불쌍한 홍콩이기 때문이다. 홍콩 영화를 싫어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홍콩 영화를, 시루떡의 팥만큼이나 입에 가득 넣고 좋아했던 적이 있다. 그것의 다이나믹했던 첵랍콕 공항. 매우 위험해 보이기도 했고, 한국 항공기 조종사가 묘한 비행선을 과시했었던. 좌우 날개짓, 그런 짓을 잘해야 조종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짓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관념과 훈련과 실제의 일치. 그들이 농담을 잘하고, 노동의 무게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대학을 다녀서가 아니다. 이석재를 보라. 농담을 어떻게든지 시도하려고 한다. 그것은 자동차의 강아지 인형 같기도 하고, 싹이 위아래로 춤을 추는 인형 같기도 하다. 어린아이가 집에 반강제적으로 갇혀서, 경찰이 찾아와 부모님이 가둬둔 것이냐 물으니까, 뒷문을 열어보이고는, 아니라고 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도 없고, 돈만 있고, tv도 더 이상 은하철도 구구구 같은 것을 틀어주지 않으니까, 집에만 갇힌 셈이 되는 것이다. 경찰은 돌아가고,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싹이 위아래로 춤을 추는 인형을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위에서, 이석재 교수가 춤을 추듯이 철학자들을 언급하고, 이런저런 맥심 커피를 관중들에게 타주는 것은, 먹다가 잠을 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잠만큼 철학적으로 가지런한 것이 없을 것이다. 잠은 이생의 연장이 있다. 싸우다가 잠이 들면 싸움이 계속 되고, 공부하다가 잠이 들면 공부가 계속 된다. 성행위를 하다가 잠이 들면, 바닷 속에서 문어가 되는 꿈을 꾸곤 한다. 나쁜 일을 하다가 잠이 들면, 불이 나는 꿈을 꾸고, 누군가에게 해코지하다가 잠이 들면, 저녁에 劍값 받으러 오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것의 배경 음악은 투에니 에잇쓰 페러렐. 그것의 색감은 동방의 것이고, 쓸쓸함은 스코틀랜드에까지 건너간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만나는 세상은, 그와 같은 일차원적 의미가역성이 아니다. 그러니까 패러다이스가 있고, 패러다이스 로스트가 있고, 악몽에서 벗어나면 패러다이스 리게인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레플렉션은, 내가 좋아하는 비유로서의 막대가 물 속에서 굽어 보이는 것처럼, 더 작은 아주 코딱지만한 패러다이스가 수천년 넘게 지옥의 원인이 되었던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출판물들로 인해서, 성경이 코딱지만큼 보이지만, 이와 같은 속사정을 알고 난 뒤에는, 우리가 인간 전체의 출판물을 몸에 지니고 오르게 된 불국사의 저녁 풍경 같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 편 되어줄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 성경 불국사에는 이런저런 스님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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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가 지옥이 되었는지, 상단이 지옥이 되었는지, 그것의 경쟁은 기록에도 없고,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묵경의 그림자로서나, 한비자의 몇 가지 지옥 같은 단락에서나 만나볼 수가 있다. 김옥균은 거기에서도, 하나의 중요한 각주가 되어 준다. 김옥균은 우리에게 묘하게도, 사물이 되어라 하고 말하고 있다. 그것의 설명은 많이 필요로 한다. 대충 하면, 물질주의자가 되던지, 실제로 박제상이 되던지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무수한 돌아갈 집과 같은 사물들이다. 세상에 시편과 같은 하늘 높은 장막이 없다. 사물은 우리를 연장시킨다. 그리고 사물은 우리를 공부케 한다. 사물은 우리를 유학케 하고, 사물은 우리를 심지어는 변호하기까지 한다. 사물은 우리를 음악에 사로잡히게 하고, 사물은 우리를 사랑하게끔도 한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토바이를 해마다 두 대씩 사다줄 수 없는 여자는 남자 인문어 작가로서 짝으로서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세상은 잔혹하여, 인문어가 실제로 문어짓을 하는지, 문어를 먹는지 구경하게끔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서글퍼할 수가 없는 것은, 한옥이 죄다 문어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할 뿐. 그들이 잘 말려져, 지붕으로 올려진 것을 보면, 저녁에 보면 또한 단단한 갑옷처럼도 보이는데, 그것의 신비한 영향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과정은 의식적으로 대단히 피곤하여서, 내 지금 유일하게 문어적으로 진행하는 오토바이를 내게 조달할 수 없는 여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자로서도 그것의 뜻이 좋아서, 다만 이십퍼센트의 낭비로도 여기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오토바이 회사 권력과 조인트를 맺는 것도 좋을 것이나, 우리가 풀어야 할 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오토바이는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리고 체력 운동을 하게끔 한다. 오토바이는 석양을 보여준다. 어떻게든지 나가고 나면, 해질 무렵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는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오토바이는 천년 고찰이 내 이름을 부르고, 와서 좀 둘러보고 가게나 하는 정다운 형님 소리를 듣게끔 한다. 오토바이는 저녁에도 질주할 수 있고, 여름 날에 질주하다보면, 정말이지 삼국사기의 백제 본기에 준하는 영혼의 합성을 경험하게 된다. 한번은 단 한 대의 차량과 나란히 질주하고 있었는데, 편안한 자기 집으로 방향을 꺾는 것이었다. 대게의 의식의 알파파 섹스라는 것이 그렇다. 섹스는 죽을 것처럼 하는데, 내 상대자는 늘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이다. 사물은 힘이 있다. 그것은 이석재가 모자란 것과 동형동수이다. 나는 일본 소니 회사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렇지 않을 아프리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니 회사의 사람들은 나의 손이 여자 손보다 아름답게 생긴 것을 보고는, 소니, 어떤 사람은 매혹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손을 잘라 결혼 관계까지 맺고자 하였다. 그리고 소니 회사의 제품을 내가 전투기처럼, 전투함처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사진 전원이 죽기를 각오하게끔도 하였다. 그러니 대림은 얼마나 목숨을 내놓겠는가? 그것은 오랜 삼성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의 코드 네임이 김옥균이다. 김옥균이 전국의 사람들을 여의도 광장에 모두 불러 모아, 대통령 선거도 하면서 민주 축제를 했던 시간을 가로 질러, 불완전한 유리성의 시대에 진입한 것을 두고 예언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는 사물이다. 십자가는 글월이다. 십자가는 다른 사람이다. 보라 이전 것은 죽었으되 새 사람이 되었도다 사도 바울의 외침이 그것인 것이다. 동양의 수도는 서울도, 동경도, 북경도, 평양도, 상해도, 홍콩도 될 수 있었다. 동양은 김옥균처럼, 궁궐에서 싸우다가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양은 계속 되기 때문이다. 내가 소니 카세트와 씨디 플레이어로 반젤리스 음악을 듣던 때, 서울은, 마치 서울 전체가 김옥균의 전시체제에 진입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편안한 것은, 따로 배운 인문지가 없이 농담을 잘하는 한국 조종사의 비행 능력이 관념과 훈련과 실제에 걸쳐 그처럼 훌륭한 것에도 원인이 있는 것이다.

 

 

 

 

 

 

 

 

 

 

 

 

 

 

*사진은 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