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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불교와 유교의 오래된 경쟁. 불심의 사진 찍을 맛 나는 건물들.........

by 마음대로다 2015. 3. 9.

불교와 유교의 오래된 경쟁. 불심의 사진 찍을 맛 나는 건물들.........

 

 

 

 

 

 

 

 

 

 

 

 

 

 

 

 

 

하지만 이런 설명이 없어야 더 아름답게 느껴질런지 모르겠다. 불교의 처음은 인연으로 끝이 난다. 인연은 욕망인가? 아니면 일체의 욕망을 벗어버린 상태인가? 불교의 저변은 아직도 그러하다. 거기서 출발해서, 운동장 저 너머로 다시금 집에 가는. 죽비소리. 그것은 아임쏘리. 피아졸라이거나, 피노키오이거나, 피노체트이거나, 에밀졸라이다. 어쩌면 세계 고전은 이름이 이상한 괴물을 그나마 떠들어보는지, 아니면 떠들어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생각이 이성계 아름다운 것인지 하는 것의 제주도 우도의 아름다운 바닷가인 것 같다. 불교는 반드시 유식불교로 나아가야 한다. 유교가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서 신학적인 찬란한 주자학의 꽃을 피운 것처럼. 유식불교는 유식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유식하기가 힘이 든다. 그것은 종로서적이 사라지고, 빠이롯트가 아직 남아 있는 종로의 거리를, 서울에서, 서울극장에서 순수의 시대를 보고, 해가 다 저물 무렵에 걸어 보면 알 수 있다. 남자는 군대를 가야 사람이 되듯이, 학자는 보리밥을 먹어야 위대한 안정을 취할 수가 있다. 친구와 서울 여행의 마지막 날 보리밥을 먹었다. 일부로 양을 적게 주는 듯 했다.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먹었는데도,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새벽 한 시 차를 타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으로 일하는 도시인처럼, 원시인 촌락에 가면 사람들은 원시인이 한 번 되고 싶고, 도시에 가면 자기도 도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처럼, 배가 고프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용인 근처를 지날 때는 지금이라도 내려서, 빛나거나 미치거나 촬영하는 곳을 구경갈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휴게소에 도착하면 뭐라고 먹고자 하였는데, 그들도 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휴게소가 쉬고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날도 추웠다. 사람은 죽기 전에 성결하다고, 그 옛날 한신대학교 도서관에서, 휴게실 자판기만 빼고 다른 어떤 편의시설도 없던 것이 떠올랐다. 아무튼 사람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찍었던 사진을 남긴다고. 여행 후에 컴퓨터로 확인하는 사진들이란 나름 감동을 주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기가 죽었었다. 거기서는 일만 해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을 했다. 그러나 다시 보니까, 기회가 주어지고 틈이 생기면, 자유 연애 사상 같은 것을 펼쳐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마리아 칼라스와 사귀었던 적이 있는지 궁금해 한다. 불멸의 그 앞뒤 전후의 유럽 영화를 보면, 인문지리의 모든 행간 사이에서, 조선인 유학자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소용이 사라지고, 전쟁은 까스다 디바, 더 이상 기독교와 융합하여 프랑스 에세이적인 땅끝까지를 약속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윤석화와 사귀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에베레스트와 포탈라궁이 근처에 있는 것 같지만, 남산과 종로가 가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국대와 남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분명히 거기에는 나를 마징가 제트 라이더로 변신시켜주고, 만화처럼 살게끔 하는 뭔가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가 선조의 옷을 입고 좌우내관들을 향해 호통을 칠 수 있는 것은, 경들은 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게요 인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윤석화와 사귀지는 않아도 마리아 칼라스와는 사귀었을 걸로 생각한다. 주자는 나이가 한 삼 백년 정도 되기 때문이다. 나와는 상관이 없이, 마리아 칼라스는 J의 마리아 칼라스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대가 만일 교회에 가지 못하면, 죽음은 그대를 악마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악마주의는 따라서, 불교적인 기독교의 단순한 거울인 셈이다. 교회가 영광 굴비처럼 걸려 있으면, 사람들은 분명 내면적으로 혹하는 것이 있다. 혹한기 훈련. 남자도 뛰고, 여자도 뛰는. 훈련 뛰는 이라는 말을 어째서 하느냐고, 나름 언어학자 훈련 중의 중령이 사병이었던 내게 시비를 걸던. 그것은 아카데미. 뜻 밖의. 뜬금 없는. 까스다 디바에서, 디바가 정결한인지, 까스다가 정결한인지. 그것을 잘 모르고, 까스다 디바에 인접성의 오류처럼 빠져들 수 있었던 서울 사람들. 영단어 백 개의 위력. 한자어 백 개의 위력. 세계 고전 문학선 비치의 위력. 대학교가 가까운 홍도의 섬들처럼, 저마다의 화랑들을 쏟아내는. 그것은 고연전이 아니라, 연고전의 위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화약품 까스활명수. 나도 모르게 사귀었던 잠실 살던 마리아 칼라스를 닮았던 여학생과는, 군대를 다니다가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한 여자가 있을 때, 다른 여자를 맥반석 오징어 구이처럼 먹지 않았다. 촌스럽기도 했고, 나름 뇌를 보호하는 정책이었을 것이다. 남자가 군대에서 성기가 되어 나올 때, 그것에 준하는 지하여장군을 만나려는 작전을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런 일은 있었다. 마리아 칼라스를 닮은 그 여학생이 내 가까운 친구와 사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왠지 모르게 괘씸하고, 왠지 모르게 서글프고, 왠지 모르게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가 점수이다. 그러니 여자는 예술을 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자에게는 세 개의 조각이 있었다. 하나는 육십 점, 하나는 팔십 점, 하나는 육십 점이었다. 그 팔십 점이, 아직 여자 친구가 없는 불완전한 상태의 나를 절대적으로 사로잡고 있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괘씸하고,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내 친구는 나름으로는 독립체였기 때문이다. 그 아이도, 학과적인 의미에서 몇 개의 조각을 갖고 있었고, 저마다의 점수가 있었다. 하나는 육십 점, 하나는 육십 점, 하나는 육십 점이었다. 그 처음의 육십 점이 도저히 없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아까운 것이었다. 그러니 마리아 칼라스를 닮았던 여학생의 팔십 점이 생각의 연쇄 속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 번의 만남도 없었고, 귀신처럼 서로 지나쳤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인문학적인 토끼 죄가 청정구역에서조차 맥반석 오징어의 상태에 올랐다는 보고는 되는 것 같다. 대신에 이정표로는 대단히 비싸고, 마리아의 눈물처럼도 보이는........

 

 

 

이야기가 이처럼 불교로 흐르고 말았다.........

 

 

 

 

 

 

 

 

 

 

 

가까이서 사진을 찍는데^^ 탄성이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