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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기생수1(2015): 영화라는 강장제가 갖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기도적인 멘토링.......

by 마음대로다 2015. 3. 7.

기생수1(2015): 영화라는 강장제가 갖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기도적인 멘토링.......

 

 

 

 

 

 

 

 

지금은 우리 모두가 위기에 처해 있다. 영화는 포미닛, 지금의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개인적인 장남인 정글의 법칙을 두고 일종의 트랜드적인 용감한 가족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제 삼 세계의 백제를 점령할 수가 있다. 영화는 도가지와 같아서, 독아지, 혹은 도가니, 모퉁이와 모퉁이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우리들의 시각을 닮았고,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있다. 영화 기세주 시즌 원에서는, 만화와 애니에서 볼 수 없었던, 가족끼리의 눈물 겨운 대립을 보여주는 듯 하였다. 어쩌면 쿨하게, 일본 사람들은 육십 년대에 벌써 산업적인 세포 분열의 정점을 찍었다. 우리는 지금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는 듯 하지만, 일본은 대외적인 선전 수단인지 모르겠으나, 완벽한 섹스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최면이던지,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가졌던 위장전술이었으리라. 완벽한 섹스라는 익스프레셔니즘은, 일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라는 함수에 준하는 것이다. 완벽한 섹스라는 신비로운 클럽이 있다고 치자. 입구가  있고, 출구가 있는데, 출구에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먼저의 지식과 자부심을 챙겨 입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무라이 정신. 그것은 일본 특유의 의리에 또한 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한 영화 안에서 많은 좋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듯이, 그것은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그와 같은 부비추랩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주의를 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저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결코 발전은 커녕 회복을 약속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오는 사람들의 명랑함은, 출구를 입구로 잘못 안 사람의 일종의 연출된 동작들일 수가 있다. 입구는 있고, 출구는 없다. 공자. 맹자. 장자. 노자 할 때의 무서운 이름 중에 장자의 뜻이 그것일 것이다. 입구는 있고, 출구는 없다. 장. 자. 영화는 그렇다면 섹스와 다른 것인가? 줄여서 아이노센시라는 것은 영영 불가능한 것인가?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것인가? 또한 그렇지 않다. 아이노센시. 아이노센시. 다섯 번 말하면, 정말 아이노센시가 나타나던지, 자기가 되던지 할 수 있다. 그것의 캐릭터. 그것의 아름다운 만화 그림들. 그와 같은 만화 그림들이 백제의 문학이나 영화에 들어갈 수는 없다. 우리는 여기서 깜짝 놀란다. 그리고 인접성의 오류에 우리가 있었구나 싶은 것이다. 붙여놓고 보면, 고통과 인식이 배가가 된다. 한국은 순수의 시대 그렇게 만들 수가 있다. 내것을 카피하던지, 커피하던지, 내가 아무렇게나 말하지는 않았지만, 복명복창하고,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 말은 찰떡을 너무 높게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찰떡 정도의 이해력이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일까? 기세주 시즌 원은 영화로서의 독립성과 아름다움이 있다. 만화가 원작이고, 애니가 영화와 동시에 상영되고 있다. 벌써 기세주 애니 팬이 생길 정도이다. 그러나 영화는 굉장히 섬세하고, 문장들은 사람들을 공명시킨다. 전쟁에 두 명의 장군이 항전을 벌이고 있는데, 순수의 시대는 삶이 그래도 어떻게든지 보장자산이 되는 것 같고, 기세주는 왠지 모르게 싸우다가 죽는 순수 군인처럼도 보인다. 영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본 엔화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착근력은 있는데, 책임질 필요는 없는 거짐 태초어들. 단어군들. 엔화가 영화로울 때. 그것은 벗꽃이 아름답고, 봄날의 저녁까지 만개하더니, 바람이 불 때는 삼천궁녀들처럼 낙화하는. 한국 사람들은 완벽한 섹스에 대한 갈망이 없었다. 등산하고 오면, 남자건 여자건 민자건 도토리 묵 무침에다가 자기만의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나 일본에는 세계지리적인 강요에 의해서인지, 완벽한 섹스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일본을 이루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차관 같은 것으로서, 결국에는 향약집성방의 도움을 입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의 죄인들을 양산시킨다. 일본이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기세주의 잔잔한 보고에 의하면, 지진이 기대했던 것보다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남자는, 어떤 여자는, 지진이 열 손가락 가득히 하루에 한 번씩 핑계처럼 일어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더 나쁜 것은 정치인들이 그것을 위아래 위위아래 이용해먹는다는 분위기이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영화 속의 불멸의 한 인물처럼, 경찰처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떻게, 어떻게 그와 같은 식당의 함수를 이겨낼 수 있겠는가? 작가들이 나오고, 영화 감독들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카시. 가수 이용이 이름과는 달리 사람들을 이용해먹지 않는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어떤 사람 A는 깊은 충격을, 제임스 라스트 다시 한번 로망스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의도 한강 공원. 그것은 스즈키 신도이, 신현균의 공원이 분명했던 것이다. 한번 가고, 두번 가고,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방만하지 않고, 훌륭한 경찰복을 입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하게 소외된 사람에게 이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서울의 금싸라기 같은 곳에다가 기념 공원을 만들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부러움이었다. 스즈키, 농어, 신현균 신도이. 제임스 라스트 차이코프스키.......

 

 

 

 

 

 

 

 

 

 

 

 

 

 

 

JAMES LAST Chanson triste (Pyotr Ilyich Tchaikovsky).........

 

 

 

 

백제는 걸어만 다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