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 아프리오리.......
징비록은 아프리오리인가? 아포스테리오리인가? 난중일기를 보면, 전쟁 이전의 아프리오리가 무시무시하다는 느낌이 있다. 징비록을 보자면, 전쟁 이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횡횡하였다고 하나, 난중일기를 보면 그런 느낌이 별로 없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최고급 장교가, 이런저런 사전 전쟁의 발발을 대비한 준비를 하고자 하였는데, 부하 장교가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 정도로 멈춰있다. 그것은 마치, 찬란한 빛의 광영처럼 보인다. 그것은 부처님께 삼천배를 올리는데, 부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옆에 있던 보살에게, 부처님이 어디에 계시오 물으니, 보살이 부처님요? 잠깐 어딜 나가셨나?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유치환 영어로 하면 노플레이스, 또는 노훼어. 독일어로 하면 짓침레벤이 될 것이다. 부처님이 다시금 나타나셔서, 절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어딜 다녀오신 것이다. 그것은 천년에 한번 있는 자유의 시간으로서, 잠깐, 산 높은 곳에 올라가, 그것의 빛의 광영을 보시다 오셨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어째서 전쟁을 준비하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어째서. 한가로운 섬의 줄기를 돌아다 보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직감할 수 있다. 그것의 여서도. 대마도. 풍도. 홍도를 부르는 문학적 피날레는 상급 지휘관의 말을 분명하게 거절하는, 나름 거대한 동굴처럼 생긴 것으로서의 근거가 탄탄한 것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문학을 걸어놓은 새끼는 거칠게 흔들린다.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와 같은 다부진 마음의 표명일 수도 있다. 전쟁 준비를 어떻게까지 할 수도 없고, 그 정도로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지식을 다만 프로야구 선수 이정도 밖에 할 수가 없다. 이정도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지금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최남선. 김동인. 박목월. 그 사람들은 사람임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정도라는 사람은, 과연 인간인지 아닌지 아주 어린아이들은 헷갈려 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대단한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것일까? 예를 들면 지독한 지방자치적 헤도니스트인데, 관념적이고, 계급주의적 목적론자의 말을 도저히 따를 수 없어서, 그 이전까지는 성실하고 끝맺음이 확실했었는데, 갑자기 그런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각 절에 모시운 부처님이 천 년에 한번 움직일 수가 있는데, 참으로 그와 같은 경지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이와 같은 순수 오토바이 고속도로에 비추어서, 현실적인 자동차들은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마트를 너무 많이 갈 수도 없고, 가장 정확한 용도이긴 하나, 영화를 보러 자동차를 타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얼마나 미국 영화는 자동차보다도 멋진 영화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지금 피비린내 나는 전선이다. 사람들의 인구 정책은,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것을 보고, 그 정도의 혈루(홀)증(관)에서 멈추기를 바라는 것이다. 집정관이 말을 어린아이처럼 하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서, 어린아이로 직접 변하는데, 만일 그렇다면, 옷에서 몸이 빠져나오는 한이 있어도, 사람들이 그를 집정관으로 여겨주기를 소망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악에서도 그렇고, 선에서도 그러하며, 중간에서도 그러하다. 악이 그런 것은 설명이 불필요하고, 선에서도 그러한 것은, 우리들의 시계가 어린아이 같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으니 그러하며, 중간에서도 그러한 것은, 그것이 바로 시방 삼세의 모든 대화와 관계의 시초이자 종착 혹은 단초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로 변했을 때, 이마를 꿀밤 주는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 믿음은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인 것이다. 우리가 오연서를 보고 슬픔을 접을 수가 없는 것은, 그녀의 아프리오리가 '너무 멀어요'하는 독백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하겠다. 우리는 뭐가 먼지 잘 모르는 것이다. 대충 말을 잘 맞춰주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고, 주변 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춰주면, 얼른 그 정도의 기쁨은 회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싶었는 것이다. 너무 멀어요 했던 것은, 어린아이로 변했을 때 이마에 꿀밤 주는 사람을 견디는, 그와 같은 찬란한 아침 학교 분위기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게의 부모님들은, 같은 어린아이로 변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 있다. 어린아이는 왕집井 같아서, 그것의 코스몰로지는 그 옛날의 유학파 학자처럼 범신론적이고 호랑이 우주적이다. 그렇다고 성리학적 흉내만, 무겁고, 무섭고, 엄격하고, 성결하고, 때로는 폐선에도 들어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면 또한 안되는 것이다. 서울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넉넉하고, 부유하며, 젓과 꿀이 넘치고, 조금 지식을 쌓아가면, 무겁고, 무섭고, 엄격하고, 성결하고, 때로는 패션쇼가 넘치는 동네, 홍대 클럽 골목이나 대학가, 신당동 떡볶이 거리 같은 곳이다.
지금 듣고 있는 것은, 트럼펫과 오르간을 위한 마태수난곡인데, 신보이다. 내 나이에 이르도록, 놀라운 것은, 그것의 셀렉션이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셀렉션에 가까이 계신다. 우리의 손끝에도 계시지만, 주로 예쁜 꽃을 보고, 그것을 만지고, 줄기를 손에 들어보는 행위에 주로 독재하신다. 향기는 그것의 아브라카다브라이다. 서울을 어떻게 돌아야, 그것의 셀렉션을 자기의 것처럼, 자기의 정원처럼 여길 수 있겠는가? 우리는 믿음의 반석, 베드로 위에서, 트럼펫을 불다가 저녁 지는 해에 추워서 죽을 수도 있다. 우리가 내려오는 것은, 그와 같은 고집이 아무런 다음 장면을 만나지 못해서이다. 의미는 고작해야 다음 장면으로 되는 때가 많다. 의미를 설명하는 사람은, 의미를 모르는 사람일 때가 많고, 그 사람의 다음이 그것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는, 일본 애니 기생수보다도 찬란한 아브라카다브라인 듯 하다. 홍상수가 처음에는 정말이지 홍도의 홍상수였다가, 갈수록 그저그런 상수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의 아프리오리가 실은 나중의 아포스테리오리에서 드러난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세잔하고, 쇠라한다. 그것을 두고, 그 세잔하고, 쇠라한 것을 절정기의 예술 활동이나, 삶의 이력의 본질이라고 핀잔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강호동이 수많은 주마등들을 고작해야, 얼치기들과 알 수 없는 회사의 단합대회 간 것으로 소진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이만저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생생정보통에 미스터리라고 있다. 미스터 리이기 때문에, 미스터리이다. 어떤 액센트는 있다. 왜냐하면, 정중동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닌다는 것은 그런 독재가 있다. 남녀가 서로 섹스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잊고 싶은 것, 보기 싫은 것, 다 물리치고, 세상 맨 처음의 호모 사피엔스를 찬양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주여.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수많은 영화 중에 불멸의 클래식의 것이 하나쯤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십에 일조처럼. 그것의 접근은 배신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앙만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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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지 잘 모르겠는데?........
우리에게는 아프리오리도 있고, 아포스테리오리도 있다. 너무 그렇게, 맨처음의 홍상수만을 따질 필요도 없고, 너무 멀게만 여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쿵쾅거리는 심장의 박동. 자기만의 여정과 십자가가 있다는 것은 충분히 컬럼버스처럼 발견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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