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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우리는 한반도 한민족의 후손으로서 신입 장군의 죽음을 두고 왈가왈부 가타부타.......

by 마음대로다 2015. 4. 3.

우리는 한반도 한민족의 후손으로서 신입 장군의 죽음을 두고 왈가왈부 가타부타.......

 

 

 

 

 

 

 

 

 

지금 사람들은 쓰리디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워낙에 모니터와 전송능력, 처음부터 카메라의 화소가 천문학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옛날에는, 대충 찍어도, 그것을 세밀하게, 기계적으로 보정하고 나누어서, 그럴 듯하게 실감을 재현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찍을 때부터 천문학적이어서, 그것을 그대로 재생 못하는,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편집하면서, 크기도 조정하고, 색깔도, 형태도, 그러면서 화소가 따운이 되어서, 엘이디 티비가 있다고 해도, 전송된 필름이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화소의 젊음을 살다가, 화소로 끝이 나는 시간을 살고 있는데, 무슨 더한 화소가 필요한 것인가 반문하게끔 된다. 너무 징그러운 장면을 끝내주는 화소로 본 경우에는, 잠에서도, 꿈 속에서도, 같은 꿈을 꿀 수 있을 정도가 아니겠는가? 이런 것은 가능하다. 우리는 판타지의 능력이 없다. 하늘을 날 수도 없고, 아픈 사람을 고칠 수도 없고, 아름다운 값비싼 옷을 입을 수도 없다. 영웅처럼, 그 모든 것을 다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을 화소를 능가하는 스토리로다가, 끝내주는 화소로써 경험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진작가의 딜레마가 그렇다. 앙리 브레송이 재등장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너무 화소 선명의 능력만 따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것은 비단 사진 작가의 문제만이 아니다. 옛날 탤런트는 막연한 브라운관 안에서, 막연하게 시장통에서, 막연하게 사람들이 올려주는 막걸리와 국밥을 천직으로 먹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엘이디, 올레드 때문에, 탤런트들은 옷감에도, 그것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의식하게 되었고, 대충 붉은색 일반이 아니라, 선홍색과 다홍색, 광이 있는 것과 없는 것까지도 구분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직면한 미학적 신경지이자, 난제인 것이다. 우리가 월미도만 있어도 행복했던 때, 그것이 상대적일지라도 하는 의식이 애초에 없었다. 무슨 말인지 더더욱 내용을 잘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서울랜드, 롯데월드, 그것을 향유하는 것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다. 먼거리에 적당히 떨어져서, 신기한 타기 경험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울긋불긋하고, 퍼레이드도 하고, 도시와 가까이, 도심 내부에, 우연히 들렀다가, 가볍게 신기한 타기를 연인과 친구들과 함께 즐기다 오는 것을 발명하고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학축제와도 겹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축제 중에 으뜸은 최루탄 터지던 연세대 교정이 아니었나 한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 기록이 되었겠지만, 연세대 바깥도 그렇고, 전남대 정문, 조선대 팔차선 도로도 그러하다. 대학이란, 꿈과 낭만의, 원더랜드, 네버랜드이기 때문이다. 학문이 있고, 스콜라가 있고, 교직원이 있고, 눈이 맞는 것이 있고, 연세가 있어도 홈커밍데이 같은 것도 하고, 종교의 자유도 있고, 은근한 종교의 강요도 있고, 학문을 하다가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있고, 보신각 타종 행사에 가는 것도 있고, 에밀레 종을 경주에 가서 보는 것도 있는 것이다. 징글벨, 징글벨. 알래스카는 우리 땅인데, 교회는 북극으로 상정하고,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미국 사람도, 개썰매를 타고 눈 내리는 저 끝으로 가보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은종. 그 종을 보자. 그것은 철기이다. 철은 돈이자, 검이고, 농기구이자, 보석이다. 사람들에게는 주얼리 정신이 있다. 만일 철이 많이 나오고, 제련 능력이 뛰어나면, 그것을 금과 양식으로 바꿔가고자 하는 이웃 마을 이웃 국가가 있는 경우, 주겠는가? 말겠는가? 처음의 용도는 오직 농기구 뿐이다. 주얼리 정신이란, 이웃 국가의 철제 농기구를 돌보는 정신을 말한다. 사람들은 단번에, 그것이 칼과 창이 되어 오는 경우는 돕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할 것이다. 나는 숱한 노인과 전쟁, 임진왜란의 내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다른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고대는 무엇인가? 한반도에서 철제가 건너간 시대를 뜻한다. 그렇다면 중세는 무엇인가? 그것의 아프리오리가 없는 성적 자유를 뜻한다. 그것은 배은망덕이 아니라, 그것만이 아니라, 대단히 매력적인 젊음의 양지인 것이다.

 

 

음악의 철기는 뭐니뭐니 해도 요한 세바스찬 바하이다. 거의 모든 클래식 음악은 약간은 청동기를 닮았다. 방식은 청동기를 발견하고, 철기가 따른 것이 아니라, 어쩌면 철기가 완벽해진 상태에서, 보다 아름답고 요원한 청동기로 돌아간 것일 수 있다. 사람은 tv가 없었고, 성경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청동기를 집안에 놓고, 그것을 실제로 쓰기도 하고, 녹슨 것을 아름답게 보기도 하고, 장식하는 것으로다가 흐린 날의 오후를 견딘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의 순서와 일치한다. 바하의 음악은, 딱딱하다. 딱딱한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먹다보니까, 나중에는 그것이 맛이 있는 이상한 상태까지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부와, 의식과, 정신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딱딱한 지경의 모든 것이, 익숙하고, 생각이 도리어 원활해지며, 사람들을 돌보고, 장래의 계획까지도 그 안에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입과 논개 때문에도, 요한 세바스찬 바하가 두 사람이나 되는 관계로, 그에 대한 저작권, 혹은 헤게모니를 갖고 있다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로부터의 아프리오리가 없는 성적 자유 상태라는 것은, 조건만 만들어주었지, 훌륭한 선생이 파견되어, 그들과 함께 싸운 적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아까운 상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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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은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다.

 

딱딱해서 먹을 수 없는,

그와 같은 주얼리 정신이 그를 덮친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