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원 드라마의 병증의 보편성에 관하여: 선망과 섬망의 길항관계
'포스트 워'는 모든 자기 문학 자부심에서 다루는, 일종의 제의적이기도 한 문예적인 항목이다. 일본에도 비슷한 금자탑이 하나 있다. 둘도 있고, 셋도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야스꾸니와 같은 표시 기능에 빠지는 것은, 그것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증거이다. 일본 드라마를 보다 보면, 늘 학도병들이 나온다. 그들이 모범생이든지, 문제아든지. 문제아가 나오면 드라마는 재미가 있지만, 공부를 할 수 없다. 그것은 나카토미 할아버지나, 사키코 아주머니가 아는 것이다. 티비에 나오는 문제아와 모습까지도 꼭같이 하고 나가는 아들을 보고는, 그것이 콘트롤 부이 콘츠롤 씨가 된 것이 아닌가 andre gagnon adagio의 선율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했고, 다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했다. 그러나 온갖 편법과, 능숙과, 친구들의 동작들을 따라하면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만한 의식이 있으면, 다그칠 일이지. 지켜 보고만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의식의 힘이라는 것은, 대학 나오지 못한 어머니가 아들은 대학에 보내려는, 감옥 옥, 시 시, 어머니 모, 담론 론 해서 옥시모론이 분명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말의 힘이 필요로 하는데, 아들은 어느 때는 무섭기도 하다. 그와 같은 일본의 속사정을 어떻게 아는가? 방법은 간단하다. 몇 개의 기둥을 빼내면 한국은 일본과 구분이 되지 않는데, 그렇게 콘추롤 부이 콘트롤 씨 하면 되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 포스트 워 문학에 대한 탐구를 한다는 것은, 꿈과 같은 것이다. 그만한 드라마를 우리는 만나보지 못했다. 송승환이 할 것 같았다. 정보석이 할 것 같았다. 최재성이 할 것 같았다. 최재성은 묘하게도, 인더워를 하나 달성하였다. 그것의 히스테리걸한 의식의 축제가, 부자와 빈자의 클래스 놀음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빗발치는 항의 때문에서도 방영될 수 없는. 클래스. 클래스. 그것의 무한한 모놀로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중에 이반이 앓았다는 정신병이 일종의 딜리리움, 섬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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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워의 시기에 문학이 자리잡고, 죽순처럼 솟아나는 대표적인 난제가 선망이다. 어린아이들이 처음 울기 시작하는 것이 그것이고, 유아교육학과 드라마티스트들이 착잡한 마음으로 만드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그것을 포스트워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렇다고 전쟁이 일어나기 바랄 수는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Whi's Haikoo
전쟁을 많이 겪고도, 일본인은 잘 우는데,
그렇게 이동하여 내리는 곳은 카타카나 히라카나를 쓰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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