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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문학강좌는 개별자를 무엇으로 보는가? 그것의 접시꽃 당신, 시집 같은 찰라......

by 마음대로다 2012. 10. 1.

문학강좌는 개별자를 무엇으로 보는가? 그것의 접시꽃 당신, 시집 같은 찰라......

 

 

 

 

 

 

 

 

존재에 육박한 사람은 알리야가 말라식 같다. 귤을 굴리고, 오징어를 찢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당구를 치는 것은.......

 

존재는 무엇 때문에 육박하는지 모른다. 아주 육박해. 사람은 일찌감치 가사문학관.......

남자들은 기술. 여자들은 가사.

 

오늘은 유튜브로 위험한 초대 몇 편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독립영화에 매우 가깝다. 그리고 양명학과 이성계가 깊다보니,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이 되는 기쁨이 있다. 나는 국민학교 때에 공부를 아주 잘했고, 육학년에 이르러서, 중학교 때에도 잘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왠걸, 물론 국민학교 때에도 전체 단자리 숫자 석차는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못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만족감 같은 것일 것이다. 행복지수 같은 것. 부탄이 가장 높다는. 대도시의 회사원은 만족지수가 떨어지는 법이다. 세상은 햇빛을 많이 보지 못해서 잿빛이 되었고, 가장 햇빛을 많이 보는 동신중학교였지만. 과도한 학과목과 따라가지 못하는 체력 때문에 나는 어디에도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교회 임역원 문예부였을 때, 내가 좋아했던 여학생이 또한 문예부였다. 그녀는 나처럼 충실도가 높지 못했다. 늘 늦게 왔고, 잘 참석을 하지 않았다. 보고 싶었지만, 임역원 회의가 아니면 만나지도 못했다. 문예부는 일주일마다 하는 일이 없었고, 돕거나, 년말에 문예지를 내는 것이 유일한 항목이었다. 짧고 성실한 것이 아니라, 길고 보다 어두운 비행기의 그늘 비슷한 파르티잔 같았다. 주보를 만들 때, 그것은 다른 임역원들끼리 돌아가면서 했는데,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설교의 제목과 찬송가 몇 편인지를 알아냈고, 광고 내용이 있으면 또한 예쁘게 적어서 가까운 복사 가게에 갔다. 나는 주로 내 단짝이었던 남자 부회장과 갔고, 늘 임역원 일을 도맡아서 했던 봉사부장과 갔다. 그는 차례도 아니었지만 늘 일을 함께 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차례가 되면 했었다. 아주 작게, 약간은, 봉사부장 같았다. 부회장은 임역원들이 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주보 일을 혼자 다 하고 있었다. 여자 부회장도 잘 일을 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 문예부장이 토요일에 왔다. 교회 지하는 심리적인 중학생의 행복 지수 같았다. 학생들은 싱그럽지만, 분명히 낙원으로부터 추방된 밝기. 형광등. 미래를 저장해 놓고 있는 관념과 개념 찌라시들, 북과 북채의 캐비넷. 다른 쪽의 책장들. 나무로 된 둥그런 탁자. 대학부도, 고등부도, 토의하는 자리에 함께 한다는 지적인 긴장감. 피아노적인 발랄함. 나는 여자 문예부장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은 같은 재단의 중학교에 다녔다. 우연히 마주치는 일도 아주 간혹, 내가 일방적으로 볼 때로 있었다. 그러나 그 반대의 말을 들었던 적이...... 인간은 기억하지 못한다...... 나를 보았다던가 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집에 가고 있었다고 했었다. 나는 백림약국 근처에 있었고, 집이, 그녀의 집은 전대 근처에 있었다...... 그것은 사무적인 기억 비슷하다...... 둘은 이런저런 과목에 관한 이야기들을 했었다. 나는 마치 나실인처럼, 선생님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나의 선생님은 누구였을까?....... 학교 건물이었을까? 아니면 고려의 최충헌이었을까? 아니면 학교에 있는 동상 이름이 자유의 여신상이었는데, 그녀였을까? 둘은 그 이야기를 했었다. 여학생은 야하다고 이야기하고는 뒤로 넘어갈려고 했다. 버스가 급하게 가거나, 코너를 돌 때처럼. 나는 너무 말을 삽입하는데, 얄짤 없이 코스모폴리탄인 것 같다. 그녀를 잡아주고 있었다. 눈을 던지면, 텅텅 소리가 난다고 했었다. 또. 또. 또. 그런다. 나는 던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던지고는 내게 이야기해준 것이다. 그리고 음식의 영양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실기 수업도, 바느질 등의 과목 준비물 이야기를 했었다. 남자들은 기술 수업이 있는데, 지금 타고 있는 오토바이, 엔진이 이렇게 생긴 것 저렇게 생긴 것 배우는 동안, 여자들은 가사를 배웠었다. 그와 같은 설명은 매우 독특했다. 여자는 내가 봐도 다소 지적인 데가 있었고, 알고 있는 것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그리고 탁구 치는 폼이. 선물의 내용이. 카드의 글쓰기가.......

 

매우 떨리는 마음의 대화였지만, 생각은 논리적이고, 판단은 즉각적인데, 그녀의 모습과 필수 과목인 가사와는 겉도는 것 같았다.

 

남자는 오래된 것이든 최신 것이든 버스 같다면, 여자는 위험한 초대의 강정화 편처럼, 아름답고 얇은 옷과 같다는 인상이 있었다........

 

여학생은 감수성이 분리되지 않은 때인가? 독한 말일 것이다.

나중의 음악부장 여학생은 나와 매우 친했지만, 성리학적 요구에는 미치지 못했었다. 그녀가 몸이 아파서 집에서 라디오 듣고 쉬고 있을 때,

문을 열어보고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던 것이 전부이다. 보다 키가 작지만 귀엽고 예쁜 여학생과 사귀게 되었는데,

대학교 다닐 때에. 내가 풍향동과 계림동 산수동에서만 살다가,

전남대학교 근처의 주택가의 인민들을 따로 본 적이 없는데,

 

사람들의 지식의 미열이 단순하고 버스 노선 같은 연장으로 가라앉고, 담 너머의 불빛과 저녁 가로등이, 동정심과

유사성으로 포괄되는 자리에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와 내 친구의 경우처럼, 둘이 가까이 살았었다.

 

 

 

 

무슨 대법원 판사나 되는 것인지

가사라는 말에, 나의 종합적인 반응이 좋지 않았다.

 

 

*

 

내가 혼다 오토바이를 광주에서 제일의 것으로 소지한 것처럼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