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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평양성은 합성 혹은 합금을 하면, 고통피앙세?.........

by 마음대로다 2015. 5. 23.

壤成은 합성 혹은 합금을 하면, 고통피앙세?.........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어디 나갔다 들어오면, 어머니가 대뜸 또 친구들과 놀고 오냐? 했었다. 그런 말을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런 말을, 이런 템포를, 이런 마키즈 컷, 보석의 팬시컷 종류에 있다, 그것이 그렇게도 유명한데도 우리는 무엇이 유명한지를 모르고 지낸다. 라운드브릴리언트컷이라는 것은, 국정교과서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만을 믿고 신봉하지만, 신봉선, 선택받은 국립대학교 교수를 제외하고는, 평양성에서 나오고 만다.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을 것이다. 국립대학교 교수는 일본어로 교주이다. 우리가 사장을 문예사조할 때, 사조하는 것처럼. 이런 말들은 정말이지 전쟁터의 철천지웬수들이다. 그러니까 감각이 산딸기나 머루 종류가 아니라, 철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천지에 널렸고, 그것의 기능은 단지 작은 피신 구멍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평양하는 사람도 없다. 배우는 사람도 없으며, 누군가 기적처럼, 지금의 나처럼, 사람들에게 말해도, 듣고 배우는 사람이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것의 등고선은 그러하다. 고마움이라는 것은 약간, 보장성 같은 것, 보석의 4대 조건, 희소성, 내구성, 아름다움, 전통성. 그리고 휴대성까지. 사람들은 환금성은 보석의 조건으로 놓지 않는다. 뭔 말 같지 않는 것들이다. 시험에 통용되는 것이나, 배우고 익힐 때 고마움을 느끼지, 그렇지 않는 것은 평양성, kbs 대하 역사 사극 징비록의 평양성 전투처럼, 부조리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마움은 탱크이다. 우리가 전쟁에만 탱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을 담을 때도 탱크요, 곡식을 보관할 때도 탱크가 있다. 고마움이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관계적 예법이기도 하지만, 지능의 속성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면, 평양성 전투, 그것의 밤이 되는 시간에서, 소서행장은 보내주고 싶은 마음. 예고편에 보니까, 유성룡의 명을 어기고 한국 장교가 길을 터주었다는 것은, 화살이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늘 소서행장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나리봇짐에 논어와 맹자를 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소서라고 하면, 시편을 들고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죽간본이라고, 겨울에 들고다니다가 불을 땔 수 있는 용도인가, 한번 만들어보고, 얼마나 종이 책을 귀하게 여겼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중국 땅에 머리가 정해지면, 아무런 철기나, 화성이나, 예술에 있어서 개인적인 성격을 탐구할 수가 없다. 추사 김정희라는 것도, 그 사람의 이름이나, 부모님의 이름에다가 호를 더한 것의 하모니는, 정해지지 않고 갇혀있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추상을 통과하고 싶은 마음. 추사. 그러나 바른 글씨로써 나아가고 싶다는 것이, 우연히 작성된 것일 것이다. 늦은 저녁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의 원동력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행장 속의 작은 책은 분명 귀한 기억인 것이다. 그에게 퇴로를 만들어주는 것은, 알 수 없는 코스모폴리탄의 의미도착증 같은 것일 수 있다. 이렇게 보니, 평양성이 한없이 값지게 보인다. 지금까지 한번도, 북한이나, 우리나라 영화 평양성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는데.....

 

 

 

나는 한국에서 유명한 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서울 땅에서, 유명한 평론가가 되면,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들과 마음껏 염문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답고, 위대한 코스모폴리스를 꽃피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거리가 좁혀들고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소년의 존재론적 투영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음악이 끝나고 난 뒤, 보이는 문예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학교에서 만날 때는, 어떤 코스모폴리스의 백 단계에서 백위 정도의 서열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이 글 좋은데? 한번 누구를 만나봐. 출판사 아무개를 한번 만나봐. 내가 전화해줄게. 그 정도가 되려면, 한 오십위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설준규니 고갑희니 하는 것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설리나 최자 같이만 보였다. 다들 은거하고 있는 고수들. 그러니까 그 감각이 이상한 것이다. 서영채니, 김경재니 하는 것들도 다들 그랬다. 학교에서 만날 때는, 어디 황구지천에 떠밀려 내려온, 겨우 표류하여 도착한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입어야 하는 존재들처럼 보였다. 자. 나의 차에 올라타게나. 내가 가는 데까지 한번 데려다줌세. 그런 말을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어쩌면 문장의 개폐능력으로 보자면, 여자들 같았다. 꿍하고. 깽하고. 꼬꼽쟁이 같고. 지역을 떠나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그저그런 만날 수 없는 성룡의 용형호제처럼 지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학교만 떠났다 하면, 그것들이 다들 서열 오십위를 넘어, 십위권을 오간다는 것이었다. 서강목도 그렇고, 김경재도 그렇다. 어쩌면 두 사람 정도가 될 것인데,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지 않으면, 순위가 받쳐주지 않을 것이다. 내 친구도 그렇다. 서울에서 변호사 일을 하면, 내가 여자 연예인병에 걸려 있으니, 좋은 카페에서 꿈과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도 있고, 마련할 수도 있을 터인데, 일절 그런 생각은, 의도는, 마치 그런 생각을 내가 하지 않은 것처럼, 빙벽을 만드는데 천재인 듯 하다. 그런데 징비록이라니. 그런데 말입니다, 만해 유성룡이라니. 다들 그림자 놀이에 진쳐 있어서, 평양성이 그만 일본식 표현으로는 박쥐성의 비밀 정도가 되는 듯 하다. 그러니까, 평양성이 세상 모든 캐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겠지만, 함평에 밀리고, 그래서 소리질러 했던듯, 함성, 얼마나 깨끗한지, 이렇게 단정한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구대천지원수 천하대장군을 섬기는 가수 조무래기들은. 그러니까 그 순간 진실성은, 단어로써, 시로써, 문장으로써 담아지지가 않는 것이다. 더러운 징비록은, 아무런 평양성도 얻지 못하고, 다른 세계 프로그램에 묻히는. 계속적인 공주 토템들의 만행. 오직, 단 한 순의 진실만을 추구하고자, 제작자들이 숱한 미국 영화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단 한 평양성, 인간의 속성 중에서, 위대한 코스모폴리스를 추구하고자, 마치 영화 속에서 실제로 죽어가는 듯한 

 

 

 

 

도서출판 착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