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나에게 무엇인가?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가장 나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없다. 달샤벳의 있기없기. 이장희의 그건 너. 우리의 뇌는 상피질이 있다. 그리고 지방에는 피하지방이 있다. 달샤벳의 있기없기. 이장희의 그건 너. 우리는 한국에서 멍청하고, 미국에서 교수된다는 세계를 믿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은 권위주의 같은 것일까? 그러니까 아무리 똑똑한 지식인도, 봉건적 관료체제 앞에서는, 허울뿐인 이념국가의 군사 간부 앞에서는, 말도 더듬고 행동도 굼뜨고 복도에서 길을 잃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우리 한국 사람이, 잉글리쉬맨인뉴욕, 뉴욕에서 맨허튼 무슨무슨 거리에서,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고 치자. 택시 타고 가면 그만이고, 스마트폰으로 도보 여행시 소요 시간을 파악해 넉넉하게 처음 가는 도시의 거리를 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realm스트리트, 그러니까 뭐든 랠름 먹고 보는 금융가가 있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한쪽에서는 뉴욕 팝아티스트들이 브레이크 댄스를 춘다. 하루키의 댄스댄스댄스. 양사나이를 찾는 모험. 우리는 그러나 숱한 도덕적인, 혹은 두꺼운 소설적인 관념과 체계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숱한 건물들이 일어선 칼날처럼, 창날처럼, 양날의 검처럼, 복면검사처럼, 나를 덮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쪽에서는 키아누 리브스의 신작, 니코보코 형사 영화가 개봉하고 있다.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는 될 수 있다. 해열제인지, 자양강장제인지, 매우 쓴 커피인지, 아니면 몰핀 종류인지. 답답한 마음에 잘 생각나지 않는데 캔터키 팍 공원을 좌깅한다.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 그는 좌깅하다가, 스나이퍼에게 당하는 꿈을 꾼다. 건물이 날 덮치지는 않아도, 코브라의 여주인공, 브리짓스톤? 오브제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투표는 오브제가 하는 것이 아니다. 부자는 부자가 아니다. 유명한 말.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는 말은, 부자는 부자가 아니다는 말일 것이다. brugioses is o-brugioses. 오. 샹젤리제. 샹젤리제. 오. 부르주아제. 심은하가 아찌아빠라는 알 수 없는 연장 속에서 출연했던 적이 있다. 드라마이고, 그것의 제목이다.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물자체의 오브제를 피해, 민주적 아고라를 구축하는 투표권자를 찾으러 간다. 그것은 선셋대로일 수 있고, 뉴우멕시코일 수도 있다. 그러나 투표권자를 찾으면, 그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기가 막힌 사실이다. 눈물이 나온다면, 진리라고도 할 수 있다. 진리는 대게의 경우, 에어컨이 없었던 우리 옛날의 도심을 상정한다. 에어컨이 다만 은행에만 통용되었던 시절의 템포 같은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나는 투표한다. 그것은 히말라야의 내리는 눈과 같다. 사람들은 진리는 배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행여 모순을 경험하더라도, 진리니까 진리에 검은 눈물로써 흡수되고 만다. 어떻게 하다 보니, 세계 각국의 대통령이며 수상들을 내가 다 선정한 것처럼 되었다. 반도체의 힘이다. 헤롤드 블룸의 영향에의 불안, 혹은 어게인스트 그레인이다 할 것이다. 그것은 숱한 점들의 착시이지, 실제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만학에 취해, 홀로 걷는 경우,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첨에도 아직 발을 떼지 않는 숱한 작은 자부심들이 멀리 내려보고 바라다 보는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는 결코 그렇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이성은 이해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차별도 있고, 인종도 있다. 그러나 이성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 다음에야, 그것이 다만 이해의 수준에 있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의 뇌가, 알 수 없는 높이로부터, 혹은 원천적인 공자의 치기로써, 그것은 아니라고 지시한다고 해도, 그것은 라운드브릴리언트 컷처럼,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탔던 구형호넷600을 어느 방송 프로그램인, 무슨무슨 크레파스로 여겼던 적이 있다. 똑똑하다는 것은 파워풀한 것이다. 다만 데이스타 아래에 있는 것과는 차별이 있다. 인종도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을 일본어로 마모루하는 부모들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서 성공적인 오브제가 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드라마로 파고들면, 겨우 떼이야르드샤르뎅의 소주 한 병이 나올 수 있겠다 하겠지만.......
어차피, 모순의 아나키즘으로 고해성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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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어린이 통학 버스 차량이 나를 쳤을 때,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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