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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무서운 이야기2(2013): 우연히 잘된 비급 영화의 국문학적 위격.......

by 마음대로다 2015. 7. 20.

무서운 이야기2(2013): 우연히 잘된 비급 영화의 국문학적 위격.......

 

 

 

 

 

 

 

 

 

 

 

우리는 우연히 산길을 걷는다. 우리는 우연히 달동네를 걷는다. 훌륭한 달동네는 열 타운하우스 부럽지 않다. 내 사랑하는 여자는 금동이라는 순애보 드라마도 좋아하고, 주라기월드 최근 것도 좋아한다. 그렇다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투는 거기에 부응하는 것 같은 것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남의 힘을 이용해서도 남자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킴코 다운타운 신품을 두고도, 그것을 남자에게 사주거나, 말거나, 친척 중에 킴코 회사 사람이 없더라도, 남자가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킴코 회사 직원인 것처럼 구는 것이다. 그것의 무지개를, 그 의미를, 우리는 알 수가 알 수가 없다. 멀리에서, 서태지가 난 알아요 하는 것 같은 동시성. 공을 갖고 노는 아이들이 늘, 천녀유혼의 군선도처럼 행진을 하는 시간. 영화제작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영화의 힘을 이용해서 이성의 관심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만일, 내가 만약~ 사랑하는 여자와 만나고 있다면, 무서운 이야기투를 갖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다 섭리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은 문예 비평 강의를 해주기 위해서, 천사들이 만들어 놓았다는 것처럼. 대게의 사람들은 짝퉁이네, 표절이네, 김한민의 활이 미국 영화 아포칼립토를 따라했네 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섭리가 작동하기에는, 서로가 짝퉁이다보니, 그들 개인에게 가장 본질적인 말을, 그가 아는 유일한, 영화속의 번데기처럼 한 쏴하게 토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활을 갖고, 나와 같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얻기 위해서, 그런 말은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짝퉁이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어제 입은 옷의 짝퉁이기 때문이다. 세포는 나날히, 젊은 날의 짝퉁으로 늙어만 간다. 오늘은 건널목을 건너는데, 어떤 미소년이 냄새까지도 캔디스러운 것을 풍기면서 나란히 서 있었다. 건너다 보니, 여자였고, 그렇다고 보면 상당한 전투능력의 외모를 가진 듯이 보였다. 일단 내가 그랬을 것이다. 요즘 나는 비교적 여름 색감으로는 괜찮은 어제의 짝퉁을 입고 다닌다. 인터넷의 자갈치 시장 같은 논쟁을 볼 때마다, 때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생각도 하지만, 너무 할 말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가 자장면을 먹고, 단무지도 먹고, 양파도 먹고 하면, 입에서 그 냄새들을 지울 수 없지 않은가? 짝퉁은 운명이다. 나도 옛날에 뽀뽀도 해보고, 키스도 해보았다. 그 해피한 입냄새를 이동중에 지울 수가 없었다. 도무지. 단무지. 도모지는 너무 어원이 무서우니까, 단무지로 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무이투는 주라기월드를 위시한 미국 공포영화에 가까운가? 아니면 금동이나 미술관 옆 동물원 같은 한국 순애보 드라마에 가까운가?

 

내 말을 듣고 있다가, 관심을 이끌 말을 갖지 못한 남자들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사랑하는 여자의 핫팬츠를 한번 내리칠 것이다. 어째서 치냐고 물으면, 자기가 자기 무릎을 치면, 너무 관용어구적이고, 재미가 없다고 할 것이고, 둘은 좋다고 웃을 것이다. 그것은 아주 분명한 일이다.

 

 

그래도 내 말한 것 이상의 말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정말 무엇일까? 철조망일까? 아니면,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재성이 채시라와 키스하던 철조망일까?

 

츠케멘 노벨레테......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남의 우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은, 무이투의 선생적인 각성처럼, 별로 좋은 것이 아니다. 작품을 보고, 영화화된 것도 보고, 친구와 토론도 하고, 논문을 쓰고,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낸 뒤에, 커피와 담배 한대, 그리고 츠케멘의 노벨레테를 듣는 것이 좋다.

 

서울대학교. 오마이서울.......

 

그것의 현음은. 현음의 진리는. 오마이서울대학교이다. 서울대학교가 서울에서 가장 크다 싶다.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도리어 일식을 당하는 조건처럼 보인다. 연세대가 제일 크고, 다음이 경희대, 그 다음이 중앙대, 고려대 순이라고 한다면, 서울대가 그 다음이라고 한다면, 수뇌들이 모인 곳이 조금은 비좁지만, 있는 장소가 도리어 보석처럼 빛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가 제일 크고, 제일 공기가 좋다. 외국의 훌륭한 대학 전통으로 보자면, 미국을 통과한, 서울대학교는 풍모는 정말이지 외국 대학교인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곳에서 영화는 없다. 그리고 각종 서사는 잡스럽다.

 

결혼은 단국대스러운 것이다. 단국대 미안. 취직은 명지대스러운 것이다. 명지대 미안.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은 상명여대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외국 유학이 있는 것일까? 사람은 반드시, 육체의 전화로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정신이 또한 연속할 수가 있다. 빠른 타이밍으로, 문장이 마르지 않으면, 유학은 분명 서울대학교이다.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그리고 서울대학교 대대학원.......

 

그래봤자, 예일대 영문과, 튀빙엔 철학과가 되겠지만.......

 

다른 것들은 포항공대일 뿐이다.

 

 

*

 

 

어째서 우리는 알고 당하는 것일까? 우리는 어째서 관제적인 시험만 보려하지, 나머지 성리학적 시험은 모두 패스하고만 싶어할까?

 

독서와 글쓰기라는 것은 모두가 다 시험이다. 거기에는 알렉산더 포우프의 지적처럼 alps over alps인 것이 있다. 그의 곱사등이의 신체 구조가 묘하게도 드러나는 부분이다. 서울대학교는 끝없는 서울대학교에 직면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졸업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한다.

 

우연히, 삶이 우연한 것이니까, 교통 사고를 당한 것처럼, 대학을 병간호로써 졸업하고, 나머지 삶을 보다 치열하게, 고삼차에 근접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리한 부탁이지만, 그래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들어주기로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매우 비좁은 길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금동이 같은 신파 드라마가 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주라기월드 같은 미국 공포 영화가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선생된 직권으로, 그 사이에다 무이투를 놓는 것이다. 그래서, 금동이 같은 신파드라마로도 무이투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강요된 구조로 인해서,  

 

 

둘다 서울대에 준하고, 한 사람은 동경대학을 나온 인재라고 하자.

 

그런데 결혼은 상명대인 것이다.

상명대 미안......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서울대와 동경대를 분명히 나온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분명히 매번, 둘이 매번,

만날 때마다, 사랑을 할 때마다

상명대라고 하면

 

 

상명대 미안......

 

 

 

 

 

 

 

 

 

 

 

*영화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