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무의식의 첼로적 에이도스의 상관관계: 무의식에 관하여
야마하의 영어적 형용사형은 야마한이다. 그래서 야마하 악기라면, 야마한 인스트루멘트이다. 그렇다면 프로이트의 유명한 테제인 리비도의 형용사형은 무엇인줄 아는가? 리비딕? 리비돈탈? 리비딘? 리비디날이다. 이 추운 날. 눈은 곳곳에서 맹위를 펼치고, 우리는 무의식이 다만 내가 실수하는가 안하는가에 있지 않고, 단어조차 모른다는 조개종의 고고학적 현실에 분명 있기도 한 것이다. 우리의 소설은 무엇이었을까? 악기가 조금도 등장하지 않는 것보다, 이광수가 풍금이라도 연주하는 것이 아주 한 가지의 측면에서는, 야마한, 선적 문명에 가까운 것이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제법, 잘 추스리고 있다. 언젠가 우리는 작가는 도덕적 입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주장에 있기도 했었다. 그것의 뜨거움은, 작가가 어째서 되었는지를 무의식적이고도 망각적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다만 갑자기 자기 안으로부터 리비디날한 것이 폭증하였는데, 그것으로 어떠한 이념도 주장할 수가 없어서, 작가 만능주의, 작가 초월주의를 주장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분명 도덕과 상관이 없다. 그리고 문명은 답안을 차연시키면서 진행하고, 블록을 확장해가는데, 클래식이 가난한 자의 도덕성의 조로아스터교를 거두워간 것을 발견하게 된다. 디스커버리. 그것은 커버한 것을 디스한다는 것. 숱하게 사용하고, 목숨 받쳐 사용한 영단어가 이렇게 조잡하다니, 그래서 나는 아주 어린 시에서 물결 이불 덮히고라는 말을 썼는지 모른다. 상대의 게으름을 디스커버리할 게 무엇인가? 클래식은 일단은 퍼슈에이션이다. 읽지 않은 것과 선반에서의 아름다운 말의 위치. 피아니시모라는 말은, 기적과 같은 여성 인격을 분명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의 대지는 아주 닥달을 하는 칸트 앞으로, 임마누엘이 형상적으로 대체되어온 역사였는지 모른다. 작가 초월주의, 작가 자유주의라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발견이 하나의 악기 하나의 운명이라는 사실이다. 연주자가 작곡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로 넘겨보도록 하자. 클래식은. 유리와 빙판의 연장으로 형상을 대체하면, 첼로를 맹렬하게, 호랑이가 연주 중에 터져나오는 것을 상상하듯이, 연습하는 여학생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아주 에이도스를 난사하면,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의 아내로 나왔던 여자가 첼로 연주자였었다. 그것의 조개종은, 일단 시각적으로 선명하여서, 한자를 숭상하고 언문을 낮추어 보는 측면에서도 의미를 찾아보자면, 막연 개에서 섬세 계로의 진행이다 할 만한 것이다. 교육은 음악적으로 닥달을 뜻하며, 흥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놀부의 아내에게 밥톨이 묻은 주걱을 뺨으로 선사받는다. 이 얼마나 슬픈가? 민담이 아니라, 교육스가 그 안에는 장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에어 온더 지스트링..... 왓이스 유어오운 오얼 아워야마한데스티니? 후노우즈. 롱타임노씨......
우리는 무의식이 무서운가? 아니면 무의식을 무서워하는 것을 무서워하는가?
우리는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만, 아주 닥달을 하던 시절을 지나, 조금이라도 안정을 갖게 되면, 그것은 품위, 그것은 훌륭, 플라톤의 더 리퍼블릭 같은 것, 걱정이 겉잡을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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