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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전장에서의 영혼들의 기장군.....

by 마음대로다 2016. 8. 30.

전장에서의 영혼들의 기장군......












참 우리들의 옛날은 아름다웠다. 그것은 고진감래, 괜한 복고풍도 아니다. 칼을 막쓴다고 하는 어느 사상가가 그랬듯이, 우리들은 감가상각, 늙으면 노쇄하고, 결국에는 우리들의 몸이나 가누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것인데, 잉여, 예쁜 아들과 딸이 있으면, 그것이 그렇게 봄날의, 신작로 아지랑이처럼, 이화여자대학교처럼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이다. 나는 감가상각도 아닌데, 잉여는. 여기서 방송이 중단되는 듯한 재미. 드라마가 재미가 없었는데, 중단이 되고, 아무 이유 없이, 방송 송출에 장애가 있었던 것을 사과한다는 문장이 별 재미 없는 옛날 드라마 하단에 내어나온다.


뭔가 감가상각이 아닌 관념이 있을 것인데, 그 사상가가 결국에는 빛나는 캐피탈리즘은 그것으로 산다고 했던, 그것이 있을 것인데, 내가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들에게, 혹은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그 옛날의 도로공단 밖에 없는 듯 하다.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고, 석가탑도 하늘을 날듯이 아름다운데, 무게를 모르겠는데, 다보탑을 보자니까, 돌이 사람 같고, 여자 같고, 아무런 무게를 느끼지 못하겠는 것이란 것이다. 그것의 이름이, 그것의 기념 사찰이 부석사이다. 그것은 미스테리이다. 인간이 만들었을 것이고, 크기도 그렇게 뭐 대단하게 삼층으로 사층으로 높고 웅장하고 거대하지도 않다. 가까이, 아주 턱 밑까지 가면, 크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지러이 놀고 있으면, 부석사, 그렇게 뭐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석가탑은 답답할 때, 위로가 되고, 다보탑은 내게 여유가 많을 때, 좀더 집중하게 하고, 좀더 밝고 아름답게 하게끔 한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영국의 스톤헨지도 그러한 것이다. 앙코르와트는 정확하게 말하면 아름답고, 유머가 풍부하며, 검은 다이아몬드 같고, 어린 시절, 호우 시절, 친구들과 수류탄 놀이를 하던 것을 연상시킨다. 아주 유머가 풍부하다. 그와 같은 스푼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약간 서양 사람 취양의 데모닉한 것이 있다. 서양이 제국주의를 연장시킬 때, 그 단 한 번 뿐이었던 기회, 신화적인 자발성을 사람들로부터 불러일으키는 것을 어떻게든지 만들고자 할 때, 신체적이며, 군대적인 통로가 아니라, 복잡한 이론적이고, 학술적이고, 조금도 그들에게는 득이 되지 못하는 기독교적인 전파가 아니라, 산뜻한 석공 같은, 떡을 썰겠으니 하는, 민중적인, 그와 같은 신비의 인터스텔라를 만들고자 하였다면, 그렇게 앙코르와트가 맞딱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유머는, 한국과 너무 멀리, 그것도 캄보디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톤헨지는, 우리 스톤헨지는, 밥통 같은 수많은 생명 연장 프로젝트들이 하는 말들을 들을 필요가 없이, 아름답고, 청아하며,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해가 지지 않는 참숯 총각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놀다가, 숯이 생기면, 밤이나 감자, 고구마를 집어 넣어 맛있게 먹는. 방법이 산뜻하고, 보이는 것이 아름다우면, 사탄 같은 본질도 변할 수가 있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원금이고, 무엇이 기억인지를 시간 속에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름은 계절의 여왕이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가을이 그렇게 좋고, 겨울이 되면 살아보다가, 봄이 되면 또다시 계절의 여왕을 만난 것 같은 것이다. 무엇이 원금이고, 무엇이 이자인가? 사탄이 원금이고, 천사가 이자인가?


사람은 끊임없이 떨어지고, 산뜻한 돌기둥의 기억을 상실하고 만다. 천사 개구리 같은 것들이, 뱀까지도 잡아먹는다는 고래적인 지오그래픽 채널을 너무 많이 보고, 익히다 보면, 인생의 반절을 미장센으로 살고, 반절의 반절을 아이커너클라스트로 살며, 나머지 반절을 새카만 앙코르와트로 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 문명들이 산포되어 있고, 그렇게 변천이 일자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제발 그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운전면허 학과시험을 보는데, 하나를 틀렸더니, 대체 무엇이 틀렸는지 도로공단 로비에 나와 쉬면서 생각해 보니,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넘실대는 심포지움,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아다지오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다만 여름에 많이 놀면, 앙코르와트처럼 검게 빛나고, 다시 가을이 되어 공부를 많이 하다보면, 선덕여왕처럼,또다시 흰빵처럼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겠는가? 그것은 다만 회전하는 것일 뿐, 회전교차로, 직진하는 것으로서, 다만 시간적인 의미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방법이 아름다우면, 본질마저 구원할 수 있다.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살고, 학문적인 아이커너클라스트로 살며, 검은 빛의 깊은 유머까지도 통달하는 사람으로 얼마든지 우리는 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카시, 그것이 그렇게 눈앞에서 간케나이데쓰요 하게 되는 것인 것이다......






영국의 스톤헨지가, 카이로의 피라미드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모두 불국토의 영혼과 그것의 전장에서의 부산 기장군이라는, 알것도 말것도 없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이 이렇게 고되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 내 단자리 숫자의 어린아이 때는 우리나라가 보다 가난했었다. 운전기사들은 코브라의 실베스타스탤론처럼 선글라스를 썼고, 손은 흰장갑을 끼고 있었다. 누가 내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 나는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초창기 고속도로를 맛보는 듯 했었다. 그러나 내가 공부하고 소망하는 것이 더 크고 원대해서, 그 길을, 한국도로공사, 마다했었는데, 드디어 지금에 이르러 무등산의 입석대와 서석대처럼,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듯한 것이다.



지금은 차도 많고, 도로도 많고, 그렇다고 그것이 싫지 않은 또하나의 반드시 정반합, 피아노의 반합 따까리 소리 같은, 정반합적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