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토샾

신학적 구심점 오브 아라비아

by 마음대로다 2017. 5. 1.







신학적 구심점 오브 아라비아






올드보이 이진우가 영화 속에서 

모래 알갱이도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을 했다. 그런 식의 사이즈 파워

그러니까 폭력은 잔인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언제나

가뇽상의 넘쳐흐르는 한국어의 힘을 갖고

그렇게 폭력에, 사이즈 파워에

당하고 만다. 누가 당나라를

중국이라고 하는가? 누가 수나라를

중국이라고 하는가? 


우리는 늘 당하고

우리는 늘 예수나라이다.

예수나라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은 그렇지 않아서

우리는 기독교를 터부시하지 않으나

서양은 늘 언제나 개독교니 뭐니

그렇게 한국 기독교를 두고

경원시하고, 배타적이 되고 만다.


나는 내가 잘생겼다고

예쁘장하게 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뿔테가 두꺼우면

얼굴을 다 덮었고, 밤낮으로

짧은 머리에, 가난해서 마음에 드는 옷을

한번도 사본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 세상이 매우 낯선데

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머뭇거렸던 적이 한차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 미친 듯이, 김흥국 들이대

그런 것이 아니라, 한번을 봐도

어느 보쌈 정식집으로 끌고가는 

화용의 힘을 가졌었던 것 같다. 어째서일까?


왜냐하면, 여자는 배신을 하고

여자는 예수의 제자이고

여자는 늘 나와는 다르게

학교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중앙여고를 오르는데

이렇게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참 남자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그래."


나는 그 초록색의 공을 손에 들고

이 무슨 공기 현상인가 궁금해 하지 못했었다. 


공부를 아주 잘하면, 운동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린다. 그런데, 그것의 그래프가

남자는 완만하고, 여자는 급격하다는 것일 것이다.


그는 누구일까? 


얼마나 아름다움은 사춘기의

하늘 같은 성이고, 시온성이고, 서양성이고

신춘문예 같은 것인가? 


얼마나 아름다움은

고작 한줌의 아름다움에 그칠 수 있는가?


우리들의 지식이 거울처럼 분명해지니

얼굴이 다들 비슷비슷해지는 현상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름다움은 확률이고, 연역적이고

적당히 귀납적이고, 그래서 철학적인 것 같아도

같은 양의 여학생들이 학교에 모여 있는

그러나 어엿한 독립된 현상이 맞는 것이다.


공부도 잘하는데 운동도 잘하면

대통령과 같은 사람인 것이고

공부도 잘하는데 학생운동도 잘하면

참 부처님 같은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샤라포바 신화가 있었다.


밀란 쿤데라가 그래서

생은 저 너머에라는 소설의 힘을 썼는지 모른다. 




공부도 잘하는데 학생운동도 잘하는

신화가 계속해서 시도되고, 계속해서

결과가 없고, 계속해서 시도되고, 계속해서

어긋나고, 대체 어째서 그와 같은 기어가

계속해서 돌아갔는지.......


아웃오브 리절트

아웃오브 바디......


바디.....









'포토샾'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은 에어리즘  (0) 2017.05.26
잘 알아듣지 못할 말들의 소설 속  (0) 2017.05.05
슬픈 서양인  (0) 2017.04.22
공포의 레트로  (0) 2017.04.20
현대수빈사회  (0) 2017.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