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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어째서 한국은 미국과 싸우는가? 싸우나...... 스트링 콰텟.......

by 마음대로다 2013. 2. 24.

어째서 한국은 미국과 싸우는가? 싸우나...... 스트링 콰텟.......

 

 

 

 

 

 

 

 

 

지구 문명론이라던지, 성경의 한국인 저작설 같은 것은 케이블 깊은 채널 디스코의 주체적 해석만 있으면 능히 올라설 수 있는 마추피추이다. 마추피추는 너무 멀다 하겠으나, 우리는 성지 순례가 남미 인디오들의 석조 건축에서 헤태로하지 않을까 하는 미학적 감수성의 최후의 섬니에 와 있는 것이다. 인 섬니 아...... 마치 그것은 명사십리의 의문형 같은, 부끄러운, 달나라 설리.......^^

 

문제는 현재형으로서, 어째서 그 크고, 막강한 경제력에, 엠엘비 리그를 갖고 있는 나라가, 슈퍼볼까지 가세하면, 사람들을 다시금 브레이크 댄스를 출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의 눈치를 보고, 훌륭하지만 한국 사람의 기호적 관심을 국민 대다수가 통령으로 선출하기를 마다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이젠 하워던지, 아이젠 버그던지, 하우저, 창비에서 나온 문명비평사의 책을 읽기란 것은 서울 시내에서 채시라를 만나는 것 같은 힐러리어스였었다. 그것의 미덕은 지식의 정확성이 아니라, 간편성, 피라미드까지도 그냥 노동 착취로 여기는 과감 무도한 비판적 유행인지 개인의 선달인지 모르는 콘사이스에 있었다. 그리고 나도 또한, 피라미드와 의식의 한 문장성의 매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그것을 대상의 팔할로 놓는 때가 있었다. 노동 착취라고 하면, 그와 같은 근대적 의지는, 수학적, 뭘로 해석할 것이며, 어디까지 노동은 권력자의 죽음에 봉사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의 언밸런스함이 가늠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헤이 아놀드라는 만화가 그렇게 나는 개인적으로 재미가 있었다. 아놀드는 국민학교에서 여러 친구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약간 둘 사이에 의식의 중첩성이 생긴다. 리프린트 오브더 컨션스 벤다이어그램. 아놀드 하우저는 쾌할하지만, 자기가 미국의 대통령도 아니면서, 적어도 바하나 베토벤의 부업과 같은, 음악성은 하나님의 저주로 깊이가 있다가, 집필은 신문지상의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아름다운 영혼, 불우한 의식의 결합 같은, 그런 것이면 애니웨이 노다우트 할 것이다. 결국에는, 깊은 서재의 중얼거림이고, 구성적 실재 이전의 청사진에서 그치는 것이면, 아놀드의 실재는 많이 불우한 것이다. 그래서 피라미드 같은 것도, 기계 장치의 하나님이라는 창조적 무지개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주저 앉고 말며, 서양의 깊은 썩소 문명 안에서 양심적인 바담풍은 해볼려고 하는 의지는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엘리멘터리로, 그것이 멜랑콜리로, 그것이 쏘셜 에스엔에스로 해석이 될 수 있다.

 

 

 

목사의 설교는 추위가 밉지 않는 강원도 평창 같다. 그것은 고조선 이래로 아무런 주소지를 찾을 수가 없다. 불트만이 케리그마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목사의 설교는 오직 성경 안에서만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디모데가 돌에 맞아 죽기 전에 행한 설교가 유명하며, 그것이 거의 유일한 가난한 자의 자기 영성적인 육성일 수 있는 것이다. 디모데는 이스라엘 현지인일 수 있다. 거의 전부가 한국인, 너무 한국인이니까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충청 경기인으로 부르다가, 일본인, 아이누족, 한족, 여진족 부르다가, 유일한 성경 속의 이스라엘 사람........

 

 

 

플라톤은 그것을 가리켜서 철인정치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