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은 클래식인가?^^ 나의 일본 문학 경험기라는 두꺼운 책을 읽고......
다 읽지 않았다. 다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도서관에서 읽었고, 도서관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내가 책을 구입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액션의 삼단일과 같다. 액션을 위해서는 반공법이 폐지되어야 하고, 짚시법은 완화되어야 하며, 생각나지 않지만 다른 것도 또한 조건지어저야 한다. 콘디션. 그것은 광고와 상품으로서, 마치 코러스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조건지어져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아남네시스, 뒤쳐지지 말자, 그래서 김윤식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라고 시의 제목을 정했는데, 조건이라는 바울의 눈에 난 비늘을 벗겨내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싸우고, 첫번째는 가난한 남자의 조건을 따지다가, 두번째는 시집 간 집에서 시어미가 허구한 날 조건을 들먹이니까. 서울 시집의 말들을 다 폭포수처럼 듣고 자결하는 자경단이 되는 이유는, 여자는 아무런 객관적인 상관물 다음으로 문장이라는 것의 자기화, 그로 인한 비판의 능력으로 출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보면서 버티는 것도, 촉매교로 보자면, 불우한 백산과도 같다. 백산이 아직도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여자들은 하늘의 나라를 가리켜 항거하면서, 자기들은 아이 때문에 산다고 하지만, 산도, 그것의 과자, 무엇이 살고 무엇이 연명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들의 식민지 의식은, 식민지 문화와 문학을 두고 우리가 어떻게 고독 중에도 비행할 수 있느냐로 압축될 수 있다. 김윤식은 그 모든 체적이 반대급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김윤식에게는 시계가 있다. 내게는 왕시계가 있다지만, 김윤식에게도 시계가 있다. 여자의 인생은, 프랑스 소설가 플로베르땅의 미발표 원고 제목, 마굿간으로 남자를 불러내어 남자에게 자기의 KGB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학자의 인생은 사람 이름이 아닌 고도원에 걸쳐, 생각의 문장과 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것은 장관이다. 우리는 시계가 없고, 시계가 있는 사람이 그 일터와 거리와 만남과 학교에서 총장이 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거만하고, 동학교에다가, 개구리를 닮았다. 우리는 그와 같은 원형들을 이겨낼 수가 없다. 그런 그가 시계까지 갖고 있으면, 다시마 꼬끼오가, 그 소중한 전기적 정보, 김윤식 교수가 일본에 연구차 갔을 때 자결했다는 것은 북두신권의 계왕권을 실제로 갖고 있다고 세계 만방에 떠드는 행위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말할 수 있다. 김윤식은 능력이 없고, 내가 늘 말하는 것이지만, 문학가가 악마적인 계왕권을 가질 수 있는가?
김윤식은 사실 문학 종말의 시기에, 미시마까지 존재가 아닐지라도 현상으로 봐 달라고 하는 것 같다. 만일 능력자인 내가 간다면, 알베르 까뮈를 닮은 미시마가 훌륭한 청년이 되어 이웃에 살러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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