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포우프
우세승에 관하여
유도에 보면 우세승이라고 있다.
유도 선수들은 웃을 일이 없는데,
어느 한 선수가 기적적으로, 혹은 전설적으로,
동작 하나하나의 추임새가 우스운 것이다.
같은 나라, 혹은 같은 아시안이면
그럴 수 있겠으나, 것도 매우 어려운 것이지만
서양 사람들까지도 경기 중에
웃음을 참지 못하면, 그는 마침내
우세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탄은 정확히 자기가 사탄의 정점에 있는 자라는
자의식이 없다. 늘 언제나 포괄적이고,
전시작전권 같고, 전작권 같고, 그렇다.
천사가 천사대교 흔들리는 것처럼
자기가 천사라는 자의식이 없지 않겠는가?
비슷한 것인 것이다.
사탄은 도저히 나올 수가 없다.
자기들끼리는 세이튼이라고 하고,
말을 잘 하는 것인지, 데빌, 이벌,
데모닉 하는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다들 이상하게 우리 한국말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
데빌, 이벌, 데모닉하는 말들은
잊는 것이 좋은데, 왜냐하면 세이튼이
사탄이 제일 우습기 때문이다.
이 씨발놈의 사탄새끼,
개같은 사탄새끼,
찢어죽일 놈의 사탄새끼 하면서
정신의 마지막 항거를 이끌어나기기 때문에
주자는 주변의 여자들도 다 떨어져 나가고
늘 슬픔에 젖어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백인들은 툭하면
백인우월주의를 외치나, 우리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대체 어디에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 중국 사람의 외모의
차이가 있는가?
백인들은 마음껏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백인들은 표백제처럼 밝지는 않으나
흑인들은 정말이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것처럼
새까만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과연 옛날에, 사탄이 우세승을 거두는
하이어라키의 우주 사회가 있었던 것일까?
상상을 조금도 할 수 없으나, 미국 영화들을 보면,
마징가 제트가 상대했던 기계수들의 가상한 노력과
풍부한 자원들을 보면, 그와 같은 역전 현상이
그런 기미가 충분히 엿보였는데, 틈만 나면
거대하고, 아름다우며, 다수의 주인공들과 싸우는
한 사람의 외로운 영웅적 사탄들을 보면,
지금 미국 어딘가에서, 그것의 산가지를 꺾어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 것이다. 주인공마저
싸가지가 없고, 안하무인적이며, 별다른
철학적이지도 않는 이상한 말들을 어렵게 내뱉는 것을
보면, 그 둘의 차이가 엿보이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욕을 들을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이것들은 영혼은 커녕,
육체의 그림자도 없는데
욕을 또 듣는구나 하는 것이다.
중국은 공산혁명, 문화혁명을
다시 한번 해도 우세승이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가 우세승을 노릴 것이 아니라
완벽한 영화, 완벽한 아름다움을 노렸고,
그것의 장단과, 성공과 실패만 있었다면,
일본이 그림자라도 챙기고
중국이 우세승이라도 거뒀지 않았겠는가?
주자는 시를 쓰고, 죽고,
그림을 그리고, 죽고,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은 못하더라도
시인들을 조심히 추방하여
못생긴 여자와도 결혼할 수 있겠으나,
가끔은 하나님의 의지를 한 몸에 받은 것처럼
사탄 새끼, 이런 찢어 죽일 사탄 놈의 새끼,
사도 세자 새끼, 개새끼,
개씨발놈의 새끼 외칠 때도 있는 것이다.
난 말은 새가 듣고
반말이나 욕지기는 쥐가 듣는다고
부름에 응답하여 나가려고 하면
항상 아프리카 사람들이
때로는 관념 속에서나, 기억 속에서,
사진 속에서
비교를 불가할 정도로
새까만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주자를 아끼시고
사랑하시며
편안케 하시고,
두루두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셨기를......
Love is magic. Newton family.
그러나 오직 한국말만 있을 때는
망설이는 사탄들 사이로
주자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사탄을 징벌하는 욕지기를 외치다가
죽었다고 한다면, 그 말들이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
유럽에 도착하였다면, 적들의 수장을
몇 명 정도는 불구덩이에 넣을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짐승들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숯은
주자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이겠지만
동시에 기계적인 기쁨이기도 한 것이다.
사탄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