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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죽상어 통신: 우리들의 위대한 예술적 왕권의 민주화를 생각하면서

by 마음대로다 2013. 5. 26.

죽상어 통신: 우리들의 위대한 예술적 왕권의 민주화를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사상가는 지속적으로 침범당한다. 아름다운 일반인들이, 그들의 아름다운 일반율에 따라, 예를 들면 계약파기라던지, 정언명령, 이율배반을 따르지 않고, 절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침범 중에 퐁당인 것이다. 침범 침범 돌을 던지자. 어떤 새끼야. 그러면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가장 유명한 장면이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 갔더니, 존재가 승천하고 없더라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장난은 우애의 인터컨티넨탈 프렌드쉽 같으나, 상대자의 심판의 위협이 무섭고, 자기가 단순 장난자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들통이 날까봐, 데리다의 해체를 데리다보다, 사상이기보다는 일본 애니처럼 잘해내는 것이다. 그것은 슬픔이 아닌가?........

 

아리아.

 

 

작금의 사상이 정체기를 걷는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다. 하나는 맘모쓰한 담론의 실종, 예를 들면 이차대전은 어째서 일어났나? 이차돈, 과학은 조선과 상관이 없나? 조센진, 옛날에 기라성 같은 후쿠오카 사상가들이 지금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불법이 거마대교 같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숲을 이룬 것들이 자기들끼리 기억과 상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하나의 저변, 한국의 이런저런 민담과도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다. 하필. 해인사의 은행나무는 일구사오년에 고사하였던 것일까? 절에 오르던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괜히 예술인처럼 보일까 싶어서 울음을 참았다.......

 

한국과 상관이 없는 서양 문명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것은 토토의 천국 같기도 하다. 남자는 금발의 여자를 좋아하고, 사랑했으나 헤어지고, 도시에서 명성과 서양식 전통의 도심 아파트에서 살다가,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금의환향한다. 그것은 환벽당 같기도 하고, 서강 대교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너무 한국적인데, 포멧은 정밀하게도 분명 프리사이슬리 서양의 것이다. 이태리를 서양으로 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또하나의 보비오 논쟁이다. 이태리가 서양이지, 그러면, 동방 정교회이겠는가? 우리 눈에는 이스탄불도 서양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지중해 사람들이며, 내가 나의 염력과 더위 때문에 부산 국제영화제에 갈 수 없는 것처럼, 돈 많은 집 아들은 프랑스 칸 영화제에 가볍게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낙양이나 심천, 란저우나 충칭에 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염력이 없어서이다. 자기를 움직이는 염력. 사람은 교복을 벗고, 직업과 가족과 불륜의 단 하나의 염력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낙찰된다. 얼마나 어렵게 잡아온 물고기가 헐값에 낙찰이 되면 어부는 아쉬워 하겠는가? 자기가 자기를 낚은 광장의 베란다. 반드시 메디슨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겨울 뉴욕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에 오백원 정도를 김연아 선수로부터 얻은 것처럼. 타국 사람들도 좋아하는. 태권도를 한국의 공중의 의식이 다 잘할 것처럼 여겨지는 것처럼, 스케이트도 한국 사람들은 다 잘할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다. 그러나 스케이트는 박정권 이전부터 박정권을 가로질러, 추위만 적당하다면 한국에서도 북방 민족들은 잘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소질이 있다. 다만 그것이 국제화되었다는 것이고, 집에서 하던 것을 밖에서도 할 때, 낯설게 하기가 너무 없는 것을 우리가 이승철의 노래처럼 밖으로 나간 것인지, 나갔더니 부처님의 손바닥인 것인지, 여행기가 없는 수필이 좋은 것인지, 다만 수필을 쓰는데도 반드시 여행기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나바보다 인기를 끌지 못했다. 얼마나 예수님은 나처럼 등단하고 싶으셨을까? 그래서 기호적 십자가가 있고, 저 알 수 없는 나라의 실제 십지가가 있는 셈이다........

 

이승철은 약간 라흐마니노프를 닮았다. 그리고 일본의 은하철도 구구구를 닮았다. 작가 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나 동료의식은, 그러니까 꼼레드쉽은 엿보인다 하겠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주 편한한 편퓨전한 이승철 노래를 불렀다. 그것의 시기를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청나라 사람들처럼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그러나 이승철 노래에 스피드가, 바디엔소울이 없었던 것일까? 내 학교 후배 중에 서소라라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여유가 넘치는, 아주 부유한, 다른 남자도 사랑하는 주머니가 많은 사람이라고는 조금도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정말이지, 하나님께 콘페션, 고싸움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마음의 가난은 나만을 향했다. 그러나, 나는 여의도 유리왕이었기 때문에, 하고 다니는 것은 편안할 지라도, 나의 유리관을 씌워주는 이상의 오후만 있던 평일들을 만들 수 없었다. 그것은 설명이 오묘하지만, 순자적 실체에 걸쳐서는, 다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을 좋아하고, 어떻게든 전라도 말로 개베 안으로 들어와 보려고 하고........

 

그러다가 원피스가 나왔다.

 

 

나는 그녀가 미국의 스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일본의 닌자라고는 더더욱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묵시적 예언처럼, 한국에서나 흙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