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민중문화이야기

Dr 장옥정의 국문사학적 돌파력에 대한 염원 희구 사랑의 기도를 우리는 가납할 수 있는가?

by 마음대로다 2013. 5. 22.

Dr 장옥정의 국문사학적 돌파력에 대한 염원 희구 사랑의 기도를 우리는 가납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향유하고 있는 것을, 출판 문화는 아무런 사랑의 가교를 놓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마치 밤섬 같다.......

 

제도 샤프는 만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마치 모든 필기구는 제도 샤프를 향한 즉자대자적인 관계 독립체인 것처럼 그 다음부터는 별로 쓰이지 못한다. 그렇다고 제도 샤프를 노비 취급하고, 몸종 취급하는 것인가? 누가? 우리 아름다운 제도 샤프를 낮추어 보겠는가? 사랑을 볼펜으로 쓰거나, 유성펜으로 쓴다 해도, 우리의 양심 자체가, 혹은 높은 지식 수준이, 모자라거나 나도 모르게 높아서 그냥 패키지하게 되는 것이다.

 

엠넷에서 음악의 신을 우연히 보았는데, 어제, 재밌게 보았다. 우리가 우리들의 영화를 모두 내린 뒤에, 백제의 공분에서 토론하여, 극장에서 돈받고 재방송을 하거나, 극장에서 먼저 방영하는 것으로 해서, 사람들을 호객한다고 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결국 음악 영화라는 것은 만들기 굉장히 쉬우나, 음악의 신이라는 타이틀처럼, 우리는 처음부터 그것으로부터 불만을 배웠는지 모른다. 음악 영화는, 취직에 실패한 아무개가 밤낮 기타 연습을 하다가, 직업이 일정치 않은 어쩌면 식민지 시대 때부터 아직까지 살아온 아무개라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지금 우리들의 국정교과서가 아닌가 한다. 그것의 실제와, 영화적인 지식소. 음악적인 질서라는 것은, 실제로는 매우 막강한 것이다.

 

전문용어로는 부정신학이라고 있다. 에리히 프롬이 아주 많이 좋아하고, 설명하고 했던 지식의 챕터이기도 하다. 기억하기에는 마이모니데스라는 학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연관을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설명하시기를 나는 나다 했던 것에서부터, 노자의 도가도 비상도까지 찾았다. 하나님은 알 수 없으며, 알려질 수 없는 자라는 주장이 부정신학이다. 지식의 핍진성이 처음부터 끼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나, 지식의 자유민주주의라는 화용적인 국가의 맥락에서는, 숱한 신학적 담론 중에 그런 것도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즐거운 일인 것이다.

 

차라리 에너벨 리의 작가의 까마귀라던지, 우리 이태준의 까마귀라는 소설과 연관을 맺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미국 영화도 까마귀를 좋아했다. 마치 베트맨이나 베트남 하는 것이, 현재 필름 시대 이전에서부터 있었던 것인가 의구심이 드는 것과 연장 선상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수준 높은 담론과 논리가 다른 수준 높은 담론과 논리, 특히 스피노자나 키에르 케고르와 관련을 맺는다 하면,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카드나, 콘티넨탈 익스프레스, 중경삼림 등을 탄 것처럼 기쁨이 넘쳤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상스럽게도 베트남 하나 설명하지 못한다.

 

까마귀는 까마귀 자체로 남고, 우리에게는 반포조라는 해석으로서, 역전의 명수가 된다. 사랑은 까치가 받으나, 까마귀가 효성이 있다는 것으로.......

낮게 나는 새. raw roads bird........

 

화투의 모란꽃. 내지는 한국에서는 야쿠르트 아주머니로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 가서는 야구 선수로 활약하는 신속성. 부정서사성不定敍事性.......

 

책장을 넘긴다는 것은 사림들의 부정서사성이며,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지배적인 조선의 훈구적인 문화에 자기의 육체를 합치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