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의 오로라 공주에 대한 문학 비평 이상의 플레이어적 판단이 가능하겠는가........
일단 우리는 기계 장치의 하나님에 대한 도올 김용옥이라던지 진중권의 서양 사전적인 의미를 일탈해야 한다. 그것은 날 수 없다. 그것은 진중권이 인용할 때, 엠에이치아브라함스보다, 그것들의 학생들보다 물리학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중권이 안정주의자냐, 매너리즘에 늘 빠질 준비가 되어 있는 바로크 후기의 인물이냐 반문할 수 있고, 내게도 물을 수 있다. 골이 한 개도 발생하지 않는 지독한 리얼리즘적인 성격에서의, 그러니까 그런 no goal적인 표현으로 다시금 생각의 전초로서의 분명한 형상 없음을 다독인다면, 진중권은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사람인가? 차타는 사람인가? 할 수 있다. 차는 정의내릴 수 없다. 차이코프스키의 시즌스에서의 준에 해당한다. 오늘은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차는 정의내릴 수 없다. 임성한의 오로라 공주처럼. 그것이 일본 애니 손오공에서 따온 것인지, 한국 영화와 연대하는지 알 수 있는가? 정의내릴 수 없다. 우리 어렸을 때 얼마나 집에 차가 있으면, 정원이 거대하고, 인간 스프링쿨러가 그와 같은 안정적인 국정원을 관리한다 했는가? 나쁘다 좋다, 또한 정의내릴 수 없었다. 어려운 시절의 사람들이 학교보다 절을 좋아한 것은, 약간은 뿌띠하고, 같은 말이지만 브루조아한 집안 상태에 대한 쥬라기부터의 염원이 있어서인 것이다.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내 친구들에게는. 나는 어머니건 누나건 간에 맛있는 밥과 반찬이 있어서, 그것의 에이도스적인 힘을 얻어서 출동하였지만, 다른 친구들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책갈피.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대학 학과로의 진학. 딱 한 친구. 대련이가 백제의 슬픈 아파트들의 스카이라인들 사이에서 전문대 조리학과를 갔었다. 나는 내 친구의 입방체를 보는 듯 했다. 내가 아팠고, 두문불출했었다. 아파트, 아픈. 작은 곳에 찾아와서, 집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어떻게든 해서, 요리를 해주었다. 그때 하나의 맥심을 얻었다. 뭐든 해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없다고 여기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주자학자였기 때문에, 그 말의 무게를 실감할 수 없었고, 그 무게를 다만 친구가 너무 좋고, 훌륭하다는 것으로만 이동시키고 있었다. 그 후로, 광주에는 더더욱 많은 단지들이 생겨났고, 자동차들도 전단지들처럼 뿌려졌다. 그것은 어쩌면 교양일 수 있다. 그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다만 부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얼마나 예쁘고, 튼튼한 인상을 선호하는지 아는가? 해드램프에 슬픔의 인상주의를 심는 나라도 어쩌면 우리나라 뿐일 것이다. 다들 그냥 탱텅 무슨한, 동그란 것들인데 말이다. 교양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났다. 그것은 소쇄원의 풍경과도 일치한다. 그것마저도 손에 쥘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임성한의 부르조아 비판 드라마를 향유할 수 없다. 선생은 기계장치의 하나님 같다. 이것은 분열이다. 스키조.......
선생들의 연수원이 소쇄원 옆에 있다.
진중권이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내게도 선물 보낼 수 있는 하늘 아래 혁명과도 같은 선남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선생이 기계장치의 하나님이라고 내게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진중권의 해석의 테두리, 혹은 우물의 저당 잡힌 습기의 높낮이 운동 같은 것을 가리키는 한에서 그러할 것이다.
인터넷에는 기계장치의 하나님이 있다. 그것은 당연히 인터넷의 비평들의 블로그들이고, 임성한의 꼭지를 쥐고 맹렬하게 달리는 한 사람을 내가 간파할 때 드러난다 하겠다.
엠에이치아브라함스를 닳고 닳도록 외우고, 적용하고, 비교문학하고, 기계장치의 하나님, 데우스엑스마키나, 이런 이야기를 자생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면 능히, 오로라 공주를 우리는 우리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게는 나포되고 만다.
최인훈의 광장 마지막 장면, 크레파스로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재수없게도 그럴 수 있다.........
왠지 모르게 예술틱한 에이도스.......
처음에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더니.........
성전의 미문 같은 가정 폭력, 우리 식으로 접수하면,
일본 라면 줄기 흡입하는 것 같은 마리오네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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