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조광조 역사학에 관한 책을 읽고, 엔니오의 러브 띰즈.......
사람들은 내가 엔지오에 가입하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러브 띰즈를 원용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티비가 조광조를 이용한 것에 비할 바이겠는가? 한국어를 쓴다는 원죄. 만만한 역사적 지식이 별로 없다는 사실. 조광조는 이광조마냥, 홍콩영화 강시처럼 뛰어다녔다. 귀여운 아기 강시도 있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 강시 영화를 보면서 시원하다 여겼다. 여름방학 납양특집을 시작하면서, 두려움과 공포가 더위를 조금 낮춰준다는 기자반 아나운서반 엠씨반 하는, 굉장히 훌륭한 지위의 인간의 분석에 깊은 인사이트를 받기도 했다. 내 다리 내놔는 히트였다. 우리는 저녁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나중에는 모기향을 피워놓고, 옥수수를 삶아 먹고, 수박을 쪼개먹으면 행복하였다. 그리고 자동차라는 거대한 족쇄가 달리기 전에, 그 지혜, 먼거리는 버스를 이용하고, 건강한 영화적 감상을 위해 걸어다녔던 시절. 어린아이도 눈앞의 아기 강시를 보면서 재밌어라 했었다. 그것은 조광조를 가리킨 것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조광조는 이름이 너무하다 싶다. 나와 비교할 것이 아니다. 내 이름은 궁녀들을 너무나 사랑한 현군이고, 필명은 내가 유교적 경험이 없어서 신휘라고 지은 잘못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청년으로서의 은하수 같다. 엎질러진........
조광조는 위성을 달린다. 나처럼 모던하고, 티비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여자친구의 심리와 내면, 가식과 외면을 두고 기타치는 사람이 무슨 조선시대의 권력 쟁탈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불만은 권력을 쟁탈하게 만들고, 세조가 자기 이응을 상실하자 불교를 끌어들인 기호적 폭력 군주라는 사실을 내비치게 한다. 나는 조광조라는 이름 조차 마음에 드는지 아니드는지 관심이 없었다. 나는 교회에 가면 찬송을 크게 불렀고, 예배가 시작하기 전에는 성경책을 읽었으며, 친구가 찾아오면 쉰옥수수나 닭강정처럼 이야기하기 좋아했다. 우리는 마이너러티, 어설프게, 중세문학이라던지, 서양이 문학사상이 팽배하게 된 계기가 수도원을 오가는 세속승려의 말주변에서도 그것이 기원하였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역사란. 요약이고, 이야기이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확대재상산하게 하는, 지구 아닌 화성만 같다.
조광조의 전기와 사상이었는데, 전기가 참으로 간략하고, 사상가를 자신이 대신한다는 취지가 좋았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혼자만 살았구나 하는 아쉬움이 향수병이 깨진 듯 퍼져나왔다. 나는 라디오가 고장 나면, 이렇게저렇게 두들겨 팼다. 그러면 라디오가 나왔다. 그리고 그것의 기적과 같은 컴퍼스의 손잡이 같은 매게를 갖고 다른 라디오를 구했다. 나는 라디오만 듣지 않았다. 사람들이 초창기 조선의 왕권과 그것과 다를 바 없는 훈구세력을 라디엔티어링할 때, 라디오를 들으면서 정해진 구간을 이동하는 놀이, 나는 그것의 현대문명적 사피엔스를 대신할 것을 찾았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내 목소리로 읽는 플라톤 철학이 아니었을까? 플라톤을 고삼 겨울방학 이전에 읽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예시와 흠모와 같은, 클래식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 하면서, 적극적으로 연주를 행하고, 사람들과 작은 음악회를 행한 것이 아닌 것이 잘못이긴 하다. 클래식은 조광조 같았고, 새중새, 아직 이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메시지가 내비치는 철학적 단편들 같았다. 눈이 올 때 나는 마이마이 카세트를 들으면서, 광주시 그 가난한 주택가를 돌아다녔다. 조광조는 사상적 매질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편이나, 중언부언, 혹은 의식으로 있는 것일까? 사람이 남의 세상살이적 의타기로서의 세종에서 세조로 넘어갔을 때, 성에 탐닉할 수 밖에 없는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조광조 홀로, 성인지도를 구했다고 한다. 한국인 저자는, 당연히 한국인 저자이지만, 조광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사상적, 개념적 매질보다는, 메시지와 의식의 비행이 때로는 도에 가깝다는 것을 자기도 알고 있다는 문맥과 잎맥을 갖고 있었다. 얼마나 조선 임금은 농간이 심한가?
행여 농간 심한 조선의 임금이 아버지이면, 자식은 일찍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바깥에서 일을 많이 하게끔 하고, 정신 노동으로 규율 정해주어야 하며, 잠언을 통해 아버지의 말을 거의 전부를 확립해야만, 아버지가 집에서 자식들을 함부로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열심히 공부하고, 집안 식구도 모르게 신학대학을 간다. 그것이 바로 수기치인........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학문의 기초적인 어려움에 있어서, (0) | 2013.07.06 |
|---|---|
| 우리는 무슨 과를 다니는 것일까? (0) | 2013.07.06 |
| 슬픔은 공부에 도움이 된다. 옛 선배들은 술픔........ (0) | 2013.06.29 |
| 니들은 니들하고 (0) | 2013.06.25 |
| 너희는 내가 이토록 혼자인데 (0) | 2013.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