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기초적인 어려움에 있어서,
집단적인 어려움이 발생할 확률에 관한 고고학
학문을 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일본이 한자문화권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무런 위로를 주지 않는다. 일본은 에이브이의 나라로서, 그것은 어느 나라에도 적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에이브이를 치르고, 수기치인을 하고, 공부를 하고, 교우를 잘하고, 팬시도 잘 만들고, 복잡한 입시도 잘 치러낸다면, 그것이 과연 에이브이를 한 것에 대한 일상사 사람들의 기대치이겠는가? 대신에 에이브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능성을 넘볼 수 없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일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매우 종류가 다양하다. 헤겔이 말한 바, 에이브이가 소통하지 않는 나라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우나, 에이브이가 소화가 가능한 나라는 인민이 자유로운 나라라고 말이다. 바로 이와 같은 말의 우스꽝스러움은 사실 일본 에이브이를 닮았다. 별로 아카데믹하지 않고, 오타쿠 영화를 적당히 떨어져서 보며, 철학 에세이 같은 것을 꾸준히 보는 사람들의 임기응변 명량대첩 임진왜란 같기 때문이다. 에이브이에 빠진다는 말이 아니다. 무슨 말인지 알지 않는가? 그렇다고 그것을 피켓시위하면서 무슨 대단한 고구려 정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맞추기가 전자제품의 수리보다도 어렵다. 학문을 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그것의 최종병기 같은 것을 발표하는 것이고, 수리 가능한 것인지, 그것의 일 년은 몇일로 이뤄진 것인지 생각을 나누는 것일 것이다. 일본 에이브이의 미덕은 팔다리가, 그리고 신체의 각 부분이 매우 선명하다는 데 있다. 여자가 수준 이상으로 예쁘다는 말은 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그것의 커트라인에 우리의 평범한 때로는 지적이며 학문적인 의식의 채널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있고, 그러나 그것의 커트라인을 우리가 매우 어렵지 않게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이 있다. 지식이 있으면, 드러나야 정상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본체로 삼고, 시황제의 고전을 진리라고 한다면, 시황제의 고전은 거의 모든 저작이 드러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성경 또한 같은 다윗의 정신을 갖고 있고, 예수는 바로 그와 같은 다윗의 자손이다. 그러나 성경이 사람들의 약간 미친 영혼과 베드로의 안배신할 수 없음과 유다의 은전 몇 닢에 예수를 팔지 않을 수 없음, 계속되는 이집트의 종살이를 할 수 밖에 없음, 모세의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음, 요한의 밧모섬에 갇히지 않을 수 없음으로만 집중된다면, 예수의 십자가에 달리지 않을 수 없음은 제외하고서라도, 성경은 끝내 드러나지 못하는 신체들의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칼라tv와 프로야구 시대를 맞이해서, 지금의 인터넷과,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서도 일본 에이브이를 보게끔 된 것은 일리가 있으며, 매우 문명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문학이 성경에 끌리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문법적이고 철학적인, 도덕적이며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초능력자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은과 금이 없는 베드로의 기적에만 집중되는 것 같은 내용이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더욱 쏠라 미친 듯이 쏠라 아주 쏠라 쏠라 개스크립추라 되고 말 것이다. 그것과 일본은 대척점에 있다. 우리에게만 일본이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학문을 해서 골동품 밖에 대지에 남은 것이 없는 중국에게도 일본은 매우 막중한 메시지처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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