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에서 나는 훌륭한 여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이 말은 경철초고, 참이겠는가 거짓이겠는가? 경찰청창살쇠창살. 참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구의 신분에서 태양에 가장 가까이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들은 대부분 신분이 낮고, 원한이 많으며, 짐승과 더불어 원령공주가 될 수 있는 대지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것은 극진 가라데. 아주 깊은 시크릿이다. 사람은 인인 것이지, 가루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는 가루가 되었을 때, 인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자는 가루가 되었을 때, 인간을 증오하게 된다. 닌자와 사람이 구분되는 지점인데, 대체 어째서 사람은 가루가 되는 시간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다만 부모님의 사업이 기울고, 학교에서 선후배들끼리 인함이 사라져서 발생하는 것일까? 학교에서는 마리아 칼라스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같다가, 졸업하니 피라미드에 가입하여서 그러는 것일까? 한신대에서의 여학생들은 산해경의 반대편의 부록, 판도라 상자에서의 희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미스유니버스나 미스유니버시티 미스코리아하고만 사귄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환율. 절대로 누구도 밝히지 않는 치사함. 여기서는 상자. 누군가 수권을 계속 유지하고, 뉴스거리를 독점하고 계속해서 일본의 오뎅 냄비처럼 한 번도 씻지 않은 것처럼 퍼주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알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대로 최대한 자립하고, 한국에서의 드라마와 시와 민간사절과, 보다 적극적인 사람들과의 교류에 힘쓰면 되는 일이다. 세상에 우리나라만큼 정신력이 대단한 나라도 없다. 일본은 순전히 우리 때문에 아프리카를 알게 되었는데, 아프리카는 그렇게 보면 친구가 많은 것이다. 아프리카와 중국은 옛날부터 삼세계 연합에 가입이 되어 있다. 아프리카를 아는 것이 국력의 척도가 된다면, 북한은 우리를 앞지를 수 있다. 아프리카와 연대한다는 것. 그것은 완전한 합일과 절대적 거리라고 하는, 쉘링의 형이상학의 원리와 일치한다. 원조를 바랄 때, 기계장치로써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원조가 없다 생각하라. 그렇다면 예수님의 성만찬의 시간이 기적처럼 이어지지 않겠는가? 아프리카에서 보내는 시간과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엇비슷한 폴리탄들을 보라. 그것이 어째서이겠는가? 기울기는 있다지만, 생각의 여유는 충분한 것이다.
나는 한신대에서 미스유니버스들하고만 사귀었다. 그녀들은 모든 중력의 법칙을 극복한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가능성을 만방에 고했지만, 여학생들이 내가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고, 서로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커피숍에 가서 이야기하자는 말에 응하기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적인 케이스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세계관의 지름길이다. 직관의. 지름길. 너무 직관의 완전 지름길. 기독교 교육학과는 워낙에 신학과와 교류가 많았다. 따로 엠티를 갔지만, 다녀오면 기독교 교육학과하고도 다녀온 것 같았다. 동아리에서 엠티를 가는 것도 그렇다. 동아리 엠티를 가는 것은, 학과를 배신하는 행위였다. 사람들은 선남선녀들로 이뤄져서, 일군과 이군, 미스유니버스와 미스충북으로 갈려져서, 보다 극심하게는 미스 차이나 여러 성들. 신학과 사람들이 내가 몽당연필인 것을 두고도 부러움이 많았다. 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하나도. 정말 짜리몽땅한 것이지만. 내가 신학과생이고 하니까 전시회를 하면, 그림을 보고, 그림이란 시지각의 보편적 공짜의 세계에서 돈이 저 먼 나라의 밭에서부터 싹틔워오는 원초적인 엘랑비탈과 같다. 그런 그림을 보고, 지나고, 잘 그렸다고 말하기가 안송자 같은 나를 너무나 좋아했던 신학과 선배가 아니면, 버티칼한 차원의 어려움이 아니라 프론트한 차원의, 그것은 호텔,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교적이라는 것은 얼마나 쏟아 부은 돈 때문에 가능한 우리들의 세상인가? 한국의 청년들을 위해서, 미국에 히피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아무도 모르는 것인 것이다. 그림은 잊혀지지 않고, 나는 사귀는 여자가 한정이 되어 있어서 불빛이, 영혼의 착상이, 사그라져 간다. 나는 대학 다닐 때 기승전결이 있었다. 첫 번째는 온전하고 완전한, 예수님이 완전하라 하셔서, 신학과 기간이 있었고, 두 번째는 몽연을 위시한, 다른 과와의 적극적인 친교의 시간. 물론 학습이 베이스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 문학에의 탐험 기간이 있었다. 그리고 문학에의 투신이 있었고, 나는 학과를 나오지 않고 문학을 하고 싶지 않았다. 투신에의 기나긴 터널 안에, 서울대영문학과 대학원이 있었던 셈이다. 나를 잡지 않으면, 나도 바쁘고 힘이 드는. 중력 문학 터널. 기돈 크레머의 피아졸라 탱고 음반. 영문학과의 교제 시간이 그래서 발생하였는데, 그렇다면 나는 영문학과 사람들과 사귀었을 것이다. 사랑은 버블버블, 기억은 가물가물. 나는 가물치이다. 가물치를 사람들이 먹으면, 그것은 나의 회인 것이다. 나는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고, 횟집의 천장을 올려다본다. 영문과 여학생들을 사귀기가 힘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기독교교육학과나 철학과에 비해 강하지 않았다. 나를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왠지 낯이 익었다. 신기하게도 같은 수업을 듣거나, 같은 발표 조에 있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컴퓨터로 조사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도덕적이지 못했다. 사귀는 사람이 많다하고, 그러니까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친구들이 증명할 수 있다. 공부를 기돈 크레머의 활질처럼 하는 사람인데, 돈은 없어서 돈 쓰는 시간도 화성의 표면처럼 전무한 사람인데, 왠지 모르게 그림의 물감마냥 물감만큼은 애타게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물감은 없고, 그렇다고 사비연필이 아니라, 흰 빛으로, 그것의 세찬 레이스의 선들로 된, 맥락은 시스루이지만, 안에 덧입어서 조금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옷을 나좋아라고 입고 다닌 여학생이 있었던 것이다. 뜻도 모르고 발음만 차용하자면, 가차문자, 정말이지 만한쭈엔시 같았다. 가슴도 한채영처럼 컸다. 나는 사귀고 싶었고, 그와 같은 의사를 가물치처럼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검은색의 인물 형상이 있고 그 가운데 흰 색으로 물음표가 그려진 사람에게 전했었다. 아니면 직접 말했는지 모른다. 직접 말했지 않나 싶다. 공부만 할 일이지. 그러니까 전신주가 있다면, 전선이 늘어져서 내려올 때, 작은 캠퍼스에서 만났을 때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여자는 눈이 극심하게 흔들렸고, 지금으로 보면 돼지 저금통 배를 갈라 동전들을 계획한 것이 아닌 것에 모두 쓰는 듯 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다. 그것은 에너지이고, 숱한, 바하의, 여자들의 현상이다.
나는 목적이 무능력하면 관심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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