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은 교육의 교재로 쓰일 수 있는가 하는 케케묵은 논재. 접속(1997)에 관하여
처음 단자를 밝히고 시작하면, 나의 음악 헌정은 폴리탄들과 재야의 학자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폴리탄들은 그들의 지스폿이 깊이 눌리는 것이 희한하다 했으며, 재야의 학자들은 삼겹살 상추 쌈 싸먹는 여름 날의 수박까지 나눠 먹는 기분을 한국 소설에서 처음 느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역사와 시대가 죽기를 권한다. 그것을 마다하고 싶은 마음에, 예수님처럼, 비켜가기를 소원하지만 그것이 아니되면, 죽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의 음악 헌정은 경이로운 웰템퍼드의 현시였었다. 양명학은 로만야콥슨, 아니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과 닿아 있다. 등급에 따라서, 소재는 필연이 된다고. 무슨 말이냐면, 주자어류의 형이하 본기인지 하는 것에서 달과 별과 해의 장들이 많은 것은, 공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주자의 문건이 분명, 쓸쓸한 해와 달과 별을 언급할 만 했다는 것. 만일 우리도 자격과 능력과, 그에 대한 보답이 있다면, 사람들을 만나서 해하지 아니하고, 해해거리고, 달달한 것을 찾고, 서로 칭찬하면서 무슨 별말씀을 so starry remark to me 그랬을 것이다. 우리가 서울을 돌아다니면서, 서초국립도서관에서 나와서, 북측 판문점과 약간 닮았다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에서, 우리는 해와 달과 별을 그만 호주머니에서 마치 구멍이 난 것처럼 잃고 마는 것이다. 공부를 안하는 사회도 아니고, 공부를 못하는 사람만 모아 놓은 것도 아닌데, 나는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지 않아도 해와 달과 별이 있지만, 사람들은 꼭 맞아야만 그런 것이 사람의 개별적인 정신에도 친숙한 것을 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별들이 제법 늘었다. 이런저런 쭉팡카페라던지, 여시, 유우머 무슨 인터넷 사이트에서 재밌는 사진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새벽에 어떤 사람이 라면을 끓이려고 하는데, 자고 있던 흰색 곱슬털의 강아지가 나오더란 것이다. 그것의 대사가 이러하다. "라면 끓일겨?....... 그것은 LA MER 폴 모리아 악단의 것으로서........
우리의 아파트와 서재는 제법 단단해졌다. 그것을 옛날에는 딴 짓거리나, 딴 생각, 몽상의 거리로만 여겼기 때문에, 집중력도, 존재에의 탐구도, 본질을 직관하는 것도 어려웠다.
뒤늦게 접속 보기가 생겼고, 팔월의 크리스마스와 전지현 시스루가 아직 쓰여지지 않는 소설처럼 양양되어 있다. 접속을 보았을 때, 기분이 어떠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접속을 보았을 때, 우리는 분명 하이해졌었다. 이런 식의 소재가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니, 얼마나 프랑스 영화를 따라하는 학원물 청춘물들이 많았는가? 그들에게는 주자학도 양명학도 전통이 없는 천둥 벌거숭이들이었다. 차라리 싱그럽고 아름다운. 김완선 같았고, 우리가 가진 것은 김완선이 늘 티비에 나와서 회상하고 고백하는 것처럼, 열심히 연습하고, 동작을 반복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드디어 접속을 두고, 양명학은 교육의 소재로 얼만큼 타당한가 라는 논문의 주제가 붙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보자. 꺼진 불. 전도연. 아름답지 않은가? 리얼리즘으로는 해피엔드가 강력하지만, 전도연은 접속으로도 가나 축구 선수단 같았다. 우리는 그때 노트북이 있고 없고로 갈려졌다. 삐삐는 대중을 소환할 수 있었지만, 데스크탑도 아니고, 노트북은 천리안을 하기가 매우 고급스러웠다. 재야의 학자들이 아니라, 폴리탄들에게 나의 소설은 여의도의 스펙을 모두 쏟아붓지 않으면 닿을 수가 없는 수직의 나한이었다. 학생이 쓴 것인가? 사람들이 내가 학생인 줄 알았고, 사람이 쓴 것인가? 사람들은 나의 욕망까지도 모두 알고 있었다. 접속은 그것의 처음 해석이기 때문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주변과 더불어 관객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영화속의 한석규는 다만 여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있다없다의 모노드라마를 찍을 수 있다. 그것은 사실, 원죄에 가까운 한국 당시 소설의 뇌파였기 때문에, 한석규의 잘못도,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다만, 갑자기 해시계가 있는 어느 정갈한 고원에서, 계단이 아름답고, 새벽 깊은 시간까지 촉촉한 물이 흐르는 것을 놀라워하고, 기뻐하고, 그것과 심지어는 삼대와 무정까지도 한국 소설의 메이저리그가 열린 것이 기쁘기도 하였었다. 영화는 초조하다. 어떻게 봐도,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을 쏟아붓는 형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접속은 우리에게도 높았다. 그것의 소재. 카이저 소재.........
접속 원 접속 투 접속 쓰리, 홍콩 같은 열대우림의 기후라면 만들었을 것이다. 자존심만 강하고, 표현에 서툴던 학자들이 처음 양명을 시도했고, 사람이 한 번의 생명을 사는 것처럼, 접속 투는 만들지 않는........
만들지 않는 것으로 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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