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미크로그램
영화는 무법천지인 것 같으나, 법칙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나라 영화 피아노맨(1996)을 처음 보고, 기분 좋은 마음에, 피자를 하나 다 먹었더니, 새벽에 배가 부르고, 목도 마르고, 콜라를 근처의 자판기에서 사 먹었다. 그것의 감각은 세련되고, 비는 내리고, 마음 속으로 음악은 흐른다. 내 이름의 현균을 생각하고, 무한하게 흐르는 기회주의들을 생각한다. 그것은 각도이다. 각오이며, 각호이다. 우리는 각오를 아는가? 남의 처지와 각오를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순수한 초월주의인지, 아니면 자기도 아는 뻔히 강요된 트랜인지. 사람은 청년기 시절에, 소년기 교육의 시기에, 무수한 각오들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의 시대는 그마만한 문명은 만들어 놓았다. 일본과의 관계도, 다만 경제력과 문화력을 이만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민주화운동보다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사치품 같은 것. 거리를 점령하고. 페퍼고고. 피자가 안 넘어간다고, 콜라를 사먹는. 격정적으로 스트림오브콘셔스니스를 그것도 최고 강도로다 쏟아내니, 식쌀의 표현주의도 아무런 관제탑 없이 이륙하고 떨어지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소년들의 기운과 학문을 위한, 아무튼 그것의 즐거운 소공자의 언덕을 만들어주는 것으로는 무조건 오케이이다. 그것들이 나이가 들어 언덕 위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되기란, 거기서부터는 알 수 없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고 했는데, 감시와 각오라고 해야 그것의 각도에 정확할 것이다. 각도기.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일찌감치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름의 보편 명제, 영화는 무법천지인 것 같으나 법칙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것. 그것은 실은, 영화가 없데도, 존재라는 한국이름에서부터 이미 발생하고, 소문나고, 충분히 선정적이고, 상상할 만한 것이다. 감시와 각오라고 하듯이, 존재와 빙이라는 병천순대가 가능하다. 우리나라 어떤 학자가 그런 제목의 타이틀을 하고, 프로레슬링을 찍겠는가? 존재와 빙은, 피아노 맨 같다. 법칙은 하나이다. 식쌀이 가리키는 단 하나의 다니엘서의 기문은, 자르기는 쉬워도 붙이기는 어렵다는 것. 영화 매드맥스의 가리킴도 그것일 것이다. 문명은 자르지 않기 위해서, 감각의 악무한을 극복하기 위해서, 마치 민중봉기처럼, 들불처럼 일어난 것일 수 있다. 누구는 계속해서 노동하고, 일하고, 노동에 필요한 생각을 서로에게 자극하지만, 영화라고는 자르고 하늘 보는 것으로 동일시 되는 것 밖에 없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메진데얼스노헤븐할 수 있는 것이다.
미크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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