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순수할 때 공부를 잘하는가? 경험과 소란의 고고학: 서양 근대의 엔진에 관한 여러 생각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디에이치 로렌스라던지, 마란츠라던지, 잘만킹 같은 것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그 어떤 전체주의, 전경주의, 윽박주의, 현기증, 버티고, 하나는 히치콕, 하나는 밀양 쿤데라, 그것들의 무구원적 만행이라는 것은 육이오 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에 있어서, 북한군의 도끼만행 사건과 같다고 할 것이다. 어떤 영어 선생이 미국 호러 영화에 대해 아무런 방지턱이 없어서, 자기 집에 도끼가 있는 사람이라는 식의 즉흥 설문조사를 했었다. 그 말은 이구동성 같다. 하나는 서양의 인두껍을 갖고 있는, 걱정 많은 한국 사람. 학자. 다른 하나는 상상할 수 없는 버티고인 것이다. 성경은 북한군의 도끼만행 사건에 의해서 발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을 홀로 벌판에 세워두면, 오직 소나무 송강호만 버티고 서 있지, 발을 진흙에 파묻고, 솔방울도 만들면서, 오직 하나의 재미가 있다면, 자기 발 밑에다가 수류탄 비슷한 것을 던지면서, 어린아이 때를 상상하는 것. 다른 모든 사람은 대체 무슨 근거로 인간은 리기호발설 서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병에 낫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적을 갖고 있는 사람의 장풍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인가? 아니면 심리인가? 둘은 결코 같을 수가 없는. 아니면 신학인가? 신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 아니면 경제인가? 돈 안들이고...... 병원은 늘 낫고 나면 알 수 없는 것에 돈을 요구하니까. 자세히 보면, 옵티컬 일루젼, 우리가 서 있고, 오래도록 안정할 수 있는 것은, 순전 교육 덕택인 것이다. 경쟁은 귀한 것을 위에 두게 하고, 고통스러운 성경의 해석, 적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생각을 철학자처럼 많이 하게 한다. 때로는 경찰서 현상수배 전단에서 자기 비슷한 얼굴을 발견하기도 한다.
율곡 이이가 나중의 동경대전 같은 것을 지어서, 관군에게 쫓겨다녔다면 세팍타쿠르 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민중 놀이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옛날에 태국에 가서, 처음 그것을 가르쳐주었는데, 내가 창안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아노 선율 같은 것. 소유와 창작, 문화적 체육 공동체의 프랑스적인 은폐 아카이브 비슷한 것이다. 그들은 즉시 따라했고, 지금까지도 태국 하면 세팍타쿠르의 본국으로 통하고 있다. 그것은 운명론적인 이기호발설인지, 아니면 같은 말이지만 필연적인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이와 이황은 사단 같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깊은 퉁소소리이다. 그들은 떨고 있고, 보는 이도, 읽는 이도 떨고 있다. 누가. 사단이란 말을 붙인 것일까? 이이가 어렸을 때 지었다던 시도, 어찌 보면 사단 같으다.........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거절당하고, 그가 죽은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왜군들이 침범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내가 피난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이 있는 묘소에 갔고, 거기까지 따라온 왜군들을 상대로 싸우다가 죽었다고 한다. 최인호의 청소년을 위한 글에서 본 것들이다. 그 모든 에피소드들이 그러니까 이이의 것이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옆에서 보면 금방 의심스러운 사단이니까 말이다.
대체 그의 천재성은 무엇의 데지그네이션이었을까?
나는 옛날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외우고 다녔다고 하는, 그런 강사들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전대미문. 그러니까 공허한 말을 할수록에, 아름답고 도덕적으로 빼어나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년 시절의 진공관이 가장 깨끗하고, 소년이 소녀를 만날 때 가장 에로스의 구도가 완벽하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집안 사람에게만이라도 책임을 지는 것이란 것은, 미크로코스모스를 주장하다 화형 당한 이탈리아 철학자 부루노의 경우처럼, 미크로코스믹 카타스로피인 것이다. 글을 쓸 때 소란스러우면, 우리의 아남네시스는 침범을 당한다. 첫사랑과 물레방아에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템포 더 그래 라는 식으로 평소보다 더 있다 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바깥으로 나가, 시끄럽게 하는 아이들을 꾸짖고 때린다. 때리고, 꾸짖는다. 왕이란, 문왕일 때 가장 순수하고, 순결하며, 어린아이들도 설복시킬 수 있는 전형이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조선의 역사요 상징이 된다. 그는 글을 잘 모르는 군관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 역사는 안토니오 부르노의 화형에 따라, 갑자기 군관들이 총부리를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것에서 그것의 세팍타쿠르는 절정을 치닷는다. 군인들은 순수하다. 그것의 뇌noi를 따라갈 도화지가 세상엔 있지 않다. 순수의 높은 탑은, 물질이 없고, 관념의 부피가 크면 클수록, 아이가 단지 떠드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시험해 봐야겠다는 고문관적 의식의 단초에서도, 금방 무너지는 것이다. 이이가 똑똑하니, 그때는 현룡이었다지만, 얼마나 다른 유학자들은 시험을 많이 당했겠는가? 순수의 호연지기는 미래를 약속하고 있고, 눈앞의 사람은 권력만 높지, 아무리 미관말직일지라도, 채근 담 싸놓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가 여덟살의 나이에 시를 한 편 쓰니, 이탈리아에서 부르노가 화형을 당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이는, 기발을 요체로한 성리학적 주장을 펼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다 사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사단들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이런 생각의, 이야기의 가능이란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서양이 근대를 달성하고, 현대까지 달성했던 근본적인 동인은, 대한민국의 식민지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조선은 가난하고, 자원도 없고, 똑똑한 자기와 친구만 있으니, 보다 순수하게 공부할 수 있을 때, 문화도 발전시키고, 한국에 우호적이며, 피를 나눌 수 있는 프랑스가 되기를, 영국, 미국이 되기를, 독일까지, 스페인, 일본까지, 중국, 오 나의 중국, 그것의 불속에서도 살아남은 부루노의 철학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이가 어려서 천재였으나, 글이 널리 알려질 만큼 되지 못하고 전문가적으로 소진된 것은, 외교를 이렇게 깊게 하였고, 서양 문화 발전에 너무 많은 기도를 행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은 왕정 국가 내에서의 지식인적인 세계관이 필연적으로 문체의 시망을 만나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의 아내가 왜구와 싸웠다고 한다. 오지랖 넓은 남편이었지만, 늘 한결 같이 한국주의자였음이 증명이 되는 대목이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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