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설국열차'에 관한, 이런저런 보탬이 되는 글이라 생각되는 글......
내가 언젠가 함석헌에게, 네가 고고학이라고 했느냐고 한적이 있다. 함석헌은 내게 주시경이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 그래서 주시경에게 네가 고고학이라고 했느냐? 더블고, 그러니까 고고학. 했더니 주시경은 내게 김옥균이 그랬다고 했다. 나는 확실하느냐 했다. 그녀는 내게 확신이 없었다. 다만, 모든 질문의 입출입에 자신이 떨어져서,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을 가리켜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랬노라고 중얼중얼거렸다.
드라마는 바깥으로 나가면 죽게 되어 있다. 드라마는 본시, 일본, 내면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생체와 경제가, 그것의 앙상블, 뭔지 모르게 뇌막에 가득차 있고 가끔 휘몰아치는 무분별이 드라마를 닮았기 때문이다.
*스콜피온즈의 블랙아웃......
송강호의 톤대로,
그러한가........
김옥균은 그와 같은 데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왠지 모르게 더블맨하고, 김옥균은 살아있다 쉽게 말하게끔 하지만, 드라마처럼 사람들을 먹여살리지 않는다. 김옥균 외면하기 운동이란 게 있었다. 기호학자들은 일제 강점기의 역사는 김옥균 되살리기, 김옥균 간접 화법, 김옥균 일제 청산, 청록파 박두진, 김옥균 외면하기의 것으로 온통 점철되어 있다고도 정리할 수 있다. 일본은 강점기 동안, 학자 하나, 시인 묵객 하나, 미술가 하나, 소설가 하나 우리를 어바우트하여 작품을 남긴 게 없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일본이 서양향만 빼고, 자기나라 역사에 대해 아무런 흙이 없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일본이 그렇다면 멍청하거나, 무식하거나, 덜 떨어졌다거나, 사이비라거나, 개념이 없다거나, 낫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거나 그런 것인가? 니혼진. 일본이 그렇다는 말인가? 사람은 시간의 중간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다가, 뒤늦게 자기도 반성하고, 한국을 하켄데시다 할 수가 있다. 외면은 세계를 일주할 수 있는 법. 어제의 얼굴이 없는, 쓸쓸한 다다미 방의 일본의 학자들이 오히려 갑신정변의 구원에 참여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바로 그때. 그렇게만 기차를 타고, 일년을 보내고, 이년을 보내고, 대학 사년제를 보낸 다음에는, 그다지 서양향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기의 몸과 마음이 또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 지각했다고. 예쁜 얼굴로 당당하게, 숨을 헐떡이면서, 지각했다고 할 수가 있다. 그것을 가리켜 스쿨 타임이라고 한다. 선생은 학생에게, 펜은 갖고 왔느냐고 하고, 일본인 학생의 모놀로그에서는, 제 펜이, 혹은 내 펜이 하면서 가방을 뒤적이다가, 펜을 보여주는 인.디-펜.던스........ 사람은 순수하게 철학하고, 명상하고, 아우렐리우스, 미국 소설을 읽고 지낼 수가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도와주지 않는다. 일본인의 본성은 학자적 개인 앞에서 영원히 도와주지 않는 것인가? 우주론적 측면에서, 우연히 공공 장소에서 집필을 할 경우에, 침 뱉고, 목구멍의 기관지를 자랑하는 사람이 백인이나 중국인이 아닌 경우에는 죄다 약간 위에서 떨어지다 만 한국 사람 같은 것은 무슨 뜻이겠는가? 나까무라던지, 무라카미던지, 류노스케던지,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순간적인 임진왜란. 그래서 순간이 지나면, 가등청정도 나오고, 소서행장도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이름이 적장이고, 아날로그로써 한국과 붙을 생각을 한 것이다. 그것이 아직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백번도 만들 수 있는 영원히 질주하는 기차일 수가 있다.
김옥균을 도와주지 않는다. 이인직은 그것을 나이브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학생을 미국 유학을 보낸다. 그것은 나름대로는 저항이었을 것이다. 이인직을 자세히 보면, 영화 내용 중의 꼬리칸에서처럼, 약간 추잡하게 보이는 것이 그 때문이다.
김옥균이 옛날로 따지면 반역한 것은 사실이지만, 후학들이 따져 물을 만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다만 글을 쓸 수 있다는 필살기가, 도리어 죽고 없는, 일본 사람들이 선망할 수도 있는, 김옥균을 적대시하는 것은 심각히도 내면적인 우스꽝스러움인 것이다.
김의 전쟁도, 화약이 크로놀되어서, 김옥균을 의지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도리어 너무나 소녀적인 필살기의 뻔뻔스러운 유학자 이인직 때문에, 부끄러워서 그런 것일 수 있다.......
김치를 먹으면, 가을은 파고들고, 숱한 누군지도 모를 관념 앞에서, 깊은 헝가리안처럼 떨어지게 된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것은, 외국 사람들이 클래식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한식을 병행하는 의무 사항을 너무 어려서부터 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빵만 먹다보면, 약간 설익은 밥도 맛있게 느껴진다. 어째서일까? 치즈만 먹다보면, 된장국만 먹어도, 감기에서 낫는다. 어째서일까? 다들 설국열차 때문이 아니겠는가? 클래식의 삼대 요소. 작곡. 연주. 감상. 서양이 작곡과 연주를 갖고, 우리는 감상만 갖는다는 것은 한계에 봉착하게 되어 있다. 서양이 작곡과 연주만을 갖고, 아무런 영광을 누릴 수 없다면 더더욱........
쇼팽 마주루카 Op63 No3........
우리나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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