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칼과 꽃의 인디펜던스의 문제에 관하여
몇 회인지는 기억하지 못하겠다. 사람들의 쫓기는 마음은. 쫓기고 꽉끼는 마음은. 이론을 모두 서당의 학생들처럼 하늘천 따지 했으면서도, 그 수많은 인도 사람 합산처럼 했으면서도, 단 하나의 띠오리도, 심지어는 단 하나의 명제도 우리 손에 남은 것이 없다는 바하의 선율은, 참 참혹한 것이다. 그래도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좋다. 버렸던 책들도 요요처럼 다시금 들어올려서, 펼치고, 기억을 다시금 상기하는 것이 좋다. 아니나 다를까. 교회에 상기라는 이름의 선배가 있었다. 우리가 지식을 멸시하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을 멸시하는가? 누가 노동을 멸시하는가? 돈오돈수. 앞의 돈오는 지식을 좋아한다는 소리이고, 뒤의 돈수는 노동을 사랑한다는 소리이다. 필로소피. 그것은 지식을 사랑한다는 소리이고, 필로소피. 그것은 노동을 어쩔 수 없이 아가페하는 마음으로 한다는 소리이다. 아기가 많이 맞으면, 지식을 좋아하던지, 아니면 노동에 빠지던지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의 조상을 알 수가 없다. 여기가 반환점이다. 마라톤. 공부와, 생계와, 벌써 불시착의 묘법연화경이 어린아이의 뇌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때라는 것은.
연개소문은 한 사람으로만 그칠 때가 있고, 부모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연계될 수가 있다. 사람에게서는 냄새가 나지 않을 수 없으니, 도는 본체가 있고, 본체는 리와 기의 합산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의 기는 냄새가 날 때 비로소 고전과는 다르게 우리가 민중들의 거리와 들판을 사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프라블매틱.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기형으로 번개쳐지는 때라는 것은 숯한 것이다. 그 사람의 필력이 왕도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계속해서 연개소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연개소문은 시종들이 엎드리지 않으면 말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삼국사기 전반에 걸쳐지는, 플라톤의 느낌이다. 그리고 집에 돌들이 많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돌처럼 단단하지 않으면,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시문은 왕도에 이르렀으나, 나이가 사십이 넘어 오십이 되도록 결혼도 아니하고, 노부모와 사는 사람의 풍경은 문명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함께, 농촌 풍경으로만 모든 우리네 기억들을 일갈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어느덧 문장도 허물허물해진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얼마나 가슴이 사무치겠는가?
어제 최민수가 붉은 옷을 입고 찾아간 곳은, 기억과 재산, 사회적 지위의 관점에서 나이 사오십 되는 장군의, 자기가 그의 영혼의 할아버지라는 자의식을 갖게 된 곳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인지 모르나 그의 한옥집은 매우 좋아보인다.
생각해보자.
저녁의 한옥집을........
레드썬. 그대는 저녁 늦게 남의 집 아파트에 가게 되었습니다. 선린이고 친선이지 못한, 다소 적대적인 기분이 있습니다. 딸의 결혼은 거짐 들어누워서까지 막던 사람이, 한달 뒤의 이혼에 있어서는 초자아와 더불어 경제적 네메시스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그것은 나름의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논리만 있지, 통쾌한 존재에의 직관은 없어 보인다. 딸을 돌보고 싶은 마음은 모든 아버지의 마음이겠지만, 그 아버지의 경제력이 보다 상승에 있어서, 다만 이혼만 한대도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서둘러 귀가케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좀더 플라토닉한 이데아인 것이다.
한옥은 분명 칼부림을 조장하는 것이 있다.
맺고 끊음을 보다 선명하게 하고 싶은, 그런 욕망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죽고 죽이고 하기 전에, 잘 모르는 사람이 분명하니, 술이라도 한 잔 나누고 싶은 역발상도 동시에 상존한다.
그 때문에 하정우와 조상기, 홍상수와 함께 폐퇴한 한국적 현대는 삶의 조상에 이르러서 떳떳하지 못하고, 주춤하며, 위대한 진리요 선명한 문장들을 베드로처럼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이다. 최민수의 붉은 옷과, 정갈하면서 난폭한 머리 모양은 적어도 왕양명으로나마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진리도 칼싸움을 잘해야 주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영어에서도 오피니언이 양파 어니언과 동음이철자이겠는가? 한옥에 산다고 해도, 한자를 많이 알고, 한없이 위정척사만 영남의 유림들처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저녁 늦게는, 친구를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해바라기. 바람만 불어도 고개를 돌리는 우리는.........
어제는 그것까지도 보여주었다. 실은 술상의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개소문의 아들이 아무런 음식 준비의 냄새도 나지 않는데, 그렇게 슬픈 예의범절로만 블러핑하는 것을 알고는........
다른 때에 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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