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진의 '부산정거장'이 뜻하는 여러가지를 생각한다는 것은 무용한 짓인가?
사람들은 닥치고 내 말 들어 하는 세계, 그런 낮은 천장에서도 산다. 그런 말이 어디까지 유효한 것일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울부짓는 듯한 문명진의 세련된 춤사위는, 우리를 힐러리 클린턴하게 만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닥치고 내 말대로 울부짖어 한 것일 수 있다. 불후의 명곡이 이년 가까이 되었다 하고, 관중들의 예쁜 얼굴을 본 것도 그렇다면 이년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소금적 카운터포인트는 거기서 가장 행복했을 것이라는 문명적 직관에서 엇갈린다. 행복하지 않았다. 이번 유호라는 옛날 작사가 편에서는. 그러나 거기서도 행복한 홍대 아이돌들이 있을 수 있다. 홍대는 핫식스와 레드불로 상징된다.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코카콜라인가? 아니면 막걸리이겠는가? 강제로 합병이 된다는 것은, 기분이 핫식스 같은 것이다. 아이돌들을 핫식스에 가둔다는 것은, 결국은 박카스의 산뜻하고 오래된 사물로의 이합집산이 아니겠는가? 이란 철학자 합산은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규모는 반드시 배신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감독의 남동생이 한 말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규모에 합리적으로 수긍하지 못하는 개별자에 악의 진파가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규모 자체가, 처음부터, 아이돌들을 핫식스나 불스원샷에 내모는, 처음부터 악한의 똥구멍으로 디콘스트럭션되어 있었던 것일까? 디스트럭션과 콘스트럭션의 중간상태. 미국 영화를 보면, 첨단의 빌딩에서 아이돌들이 부모와 싸우고, 아시드하고, 혹은 워크래프트, 리니지 하고, 대학에 합격하는 시뻘건 눈이 애타게 찾는, 그런 바닥에 탄피 소리 나뒹구는 것을 대변한다 하겠다. 그것이 나뒹구면 나뒹굴수록, 천만송이 장미를 싫어하는 마음 없이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는 기분이 하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공이 뒤집히고, 침은 흘리지 않기. 그것의 무의식. 생애 좋아했던 단 한 사람. 그가 예의 범절과 약간의 위생을 철저히 감독해서. 그 사람의 사람틀에 조금이라도 매치시키기 위해서. 에이매치. 영어 능력 하나 없이, 악동들을 계속 재생산하는 리커런스라는 것은 이미 미국을 장악하고, 일본을 장악하고, 동남아의 새 빌딩을 장악하고, 두바이 경찰을 장악하고, 한국까지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진나라 안티테제가 유호였다면 사람들은 믿겠는가? 아니면 아니 믿겠는가? 믿음이 그렇게 민들레 홀씨처럼 가벼운 것이면, 사람들은 믿음의 가장 큰 속성, 맹목적인 흔들림에 던져질 것이다. 일이란 정지이고, 안정이며, 빌딩 같고, 선각자 같다. 아니면 일송정. 아니면 성구자.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일에 관한 것 만큼 흔들린다고 하는데, 미국 영화는 늘 배신하는 무리처럼, 더블 익사이팅, 반듯한 빌딩을 보여줄 때가 없는 것이다. 현실추구주의, 일상성생활주의, 마이너러티에 대한 관심, 아주 희미하지만 정기적인 음악 영화, 그 중에 누군가는 아니나 다를까 죽는다는, 한국말로 말하면 불쌍한. 우리는 캡슐에서 태어나서, 우리 어린아이들이, 탕평책의 일환으로 정히 잘 자란다고 하는데, 타워팰리스의 인구만큼 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차 있다고 하다면, 뜻하지 않게 유호 작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낭랑 십팔세 같은, 희한한 힐러리 클린턴. 짐바브웨 누웅가, 요하네스버그의 요제프, 뮌헨의 린드버그, 네팔의 노추, 중국의 진심, 대만의 영훼이, 일본은 두 명, 사라따 그리고 죽은케이, 단 한 마디도 사전의 힘을 갖지 못하니까, 우리가 이십살 가까이 교육을 받아도, 어려서부터 일하는 인도 아이들처럼, 무료 급식을 먹기 위해 시간에 맞춰 일하다가 학교 가는 아이들처럼, 아이가 수많은 기자제들을 온 몸에 품고 있고, 자기의 종교랄 수 있는 관심 없이 일에만 열중하기에 똑같이 하고 있으면, 부모는 단 한 마디도, 뭐라고 단 한 마디도, 스가랴, 영어로 제카라이야 할 수 없는 것이다. 여자가 순결을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안해도 되는지, 혼전 핫식스 안먹기 해야하는지, 그냥 혼자 먹어도 되는 것인지, 레드불이 에프원 시리즈에 나치 전범해도 되는지, 우리는 해석할 수 없고, 설국열차, 독소불가침조약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둑들을 막아야 하는데, 그것은 기본적인 센스인데, 그것마저도 망치는 박준영 전남도지사.
어려서부터, 아무런 학교 없이, 뒷자리에 앉아서 시시껄렁거리는, 거대한 창녀 구멍 같은 우리 국토.........
부산정거장이 클래식하지 않다는 것이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우리에게는 싸움이 있고, 동시에 보다 코이노니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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