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칼가꼿을 잠깐 보다가 드는 미학적 정치학 어떤 깊은 어낼러시스, 장마의 심란한 마당 중에
여자들에게도 흐름이 있다. 어떤 신종 플루. 남자와 여자의 역기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역기 능력. 집에 역기를 기역기 갖다 놓는 설치미술적인 편집증. 편집증 뜻이 맞을런지. 그러나 그것은 염소 냄새를 갖고 있고, 여러 사람들을 체력 강국으로 이끄는 묘안은 되었다. 그래서 갖다놓는다는 것은, 고행석류의 미음자 서울 달동네 공동체에 대한 유경험적 혹은 무경험적 애착일 수 있을 것이다. 갖다놓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여자들에게도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칼가꼿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아무튼지간에 어제는 역사지로서의 연개소문의 새 왕 추대의 것이 있었다. 왕이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동명성왕 같은 것. 동명사인지, 아니면, 그것의 케이. 아닌 것인지. 실제로 죽지 않는 사극적인 관계 내에서, 그것은 중국집과 한식을 번갈아 가면서 이합집산하는, 다시금 등장하는 합산, 그런 경제적인 유동성 시세 안정성이 남자의 가냘픈 의식에도 날아들 수 있는 것이다. 장이 된다는 것. 사람은 때리지 않으면 능률이 오를 수 있다. 가장 더러운 것이, 공부만 한 사람을 무섭게 다루고서는, 아무런 사회적 행동도 하지 못한다는, 일도 못한다는 타박이 될 것이다. 아니 그런가? 일만 하던 사람도, 옆에서 누군가 무에타이를 할 것 같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인간이 실험실에 반드시 던져져야 한다면, 그는 진실로 불쌍함의 대지를 경영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와 같은 논리 때문에, 처음에는, 창세기에는 동서전쟁이 있다가, 점점 동서간의 전쟁이 사라진 것을 화석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맷집을 키운다고, 인간이 혹한에서 얼마만큼 살 수 있는지, 자유 평등 명제의 논리에 따라, 자기도 실험을 당하다가 황산벌 전투에는 나가지도 못하는. 사라브라이트만. 타임투세이굿바이.....
그래도 우리는, 그와 같은 거대하고 막강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반석 위에서, 누군가 왕이 되는 드라마는 손꼽아 기다리고 늘 보고 또 보고 김지수 하는 것인지 모른다. 질리지 않는 것들에게는 예술도 없다고. 그렇다면 바나바들을 선호하던 것들이 우리가 추석의 주인이고,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지 않겠는가? 그 국물. 건데기 옆에 있는 유동인구. 장이 된다는 것, 왕이 된다는 것. 그것은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마틴과 비슷하고 김상사와 비슷하다. 허무하고, 허무하다. 전도서와 또한 비슷하다. 그러나 아무런 내적 긴장도 없고, 기억하는 논리도 없으며, 늘 다른 사람이 쓰고 기억한다는 이유로, 성경의 맨 처음에 있고자 한다면, 왕이 된다는 것은 소꿉놀이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어려서 왕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나이가 들어서도 왕의 이야기에 꼼짝없이 매몰되는 것은, 장옥정, 그리스도의 수난절과도 미학적으로 구도가 같을 것이다. 장기를 두다가, 듀드, 왕을 옆으로 움직이는 것. 그것은 왕이 되는 것일까? 우리가 기관장이 되고, 학장이 되고, 총장이 되는 것은 거짐 왕과 같은 가을의 전설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학자들의 왕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어떤 연구소가 있고, 인원이 다 차 있기 때문에, 그곳의 장이 기필코 나와야 한다면,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기분이겠는가? 어제 칼가꼿 같은 기분이 아니겠는가?
카인의 어제 같은......
사탄을 대적하는 것이 유일무이한 존재의 이유가 되는 전경..........
하야끄 사탄을 만들고 마는 거대 메이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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