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자라는 슬픈 고대 풍경에 관한 상상
어떤 외국인이 한국어 여유가 번역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이 사람이 삼성 센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떤 섬의 풍경과 같아서, 거기까지 가는 한국 학생들이나, 선생들, 학원 선생들이나, 때로는 똑똑해서 아는 것이 많은 대학교 선배들이 실상은 없는 것이다. 모습도 어렵다고 했다. 그 말들이 그렇게 쇼팽의 어떤 연주곡 같고 그랬다. 모든 언어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우리 한국어를 두고 이제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은, 남의 나라 말 같은 한국어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와 같은 사념에 휩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지명이 그렇다. 그것들은 모두 주기도문의 시험과 같고, 그렇게 한번 시험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다시금 옛날 대학 시절로 돌아가서, 졸업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학점을 모두 마무리 짓지 못하고, 그래서 졸업을 못 하는 경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졸업을 못 하고 죽는다. 하다하다 안 되니까, 졸업을 시켜주는 것이다.
졸업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은가?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래서 폭풍을 만나고, 태풍을 만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막대한 자연재해를 만나고, 우리는 드디어 국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뇌자를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자연재해는 자연재해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뇌동자들을 들어 흔들 수 있는, 국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뇌자가 중요한 것이다. 채연이 노래한 것도, 여자들이나, 그것의 어떤 것이 아니라, 심오한 것으로는 뇌자를 말한 것일 수 있다. 읽는다고 의미를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문학적 영역을 놓고 보면, 뇌자는, 다만 읽는 것으로 의미의 정복 같은 것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뇌자를 좋아한다. 뇌자를 조종하면, 세계를 정복하고, 우주도 정복하고, 화성도 정복하고, 그 모든 것들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다. 글은 뇌자와 같다. 그러나 모든 글들이 뇌자와 같을 수 없다. 쇼츠들이 그렇게 뇌자 같다. 그러나 너무 많이 작아져서, 뇌염모기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의 인연은, 노사연, 우연이 아닌 것이다. 뇌자와 뇌염모기는, 관련이 있는 것이다. 둘은 처음부터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들이 피천득의 인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국어 시간에 읽는, 그 황홀한 피아노 소나타 같은 시간에, 읽었을 때, 얼마나 우리는 뇌자에 휩싸였는지 모른다. 그것은 도가도였고, 동시에 비상도였으며, 명가명이였고, 동시에 비상명이었던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다만 피천득의 인연 같은 것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끔찍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은, 미국과 한국이 자기들을 공격한다고도 생각했다. 하루키가 그것의 모든 물길을 막고 있을 것이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하루키는, 그 모든 막대한 물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진격의 거인 같다. 번역을 하지 않으면 뇌자가 아니지만, 번역을 하면 금세 뇌자가 되고 만다. 뇌자라는 말은, 그것은 머리라는 말이다. 헛된 글을 많이 읽으면, 뇌염모기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뇌염모기 같은 목소리를 가지게 된다. 우리가 쇼츠를 통해서 뇌자를 단련하다 보면, 금세, 공중파나, 케이블, 이런저런 만담 프로그램에서, 영화를 두고 자기들이 뇌자인 것처럼 구는 것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피라미드의 슬픔 같은 것이다. 뇌자가 아니면 전문의이다. 전문의는 세상을 비행기로, 씨엔엔 호텔로 날아다니지만, 뇌자는 버는 것이 뇌염모기 같을 수 있다. 전문의는 아름다운 육체와 가정환경, 어떤 불륜, 그런 것들을 가졌지만, 점점 머리가 사라지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잔 나머지, 아침에, 머리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형이상학이라는 것이 그렇다. 피직스를 연마하다 보면, 단 한순간도 형이상학적인 언급을 할 수가 없다. 형이상학이 피직스이다. 그러나 형이상학과 피직스는 같이 죽는다. 피직스도 형이상학을 가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같은 육체의 영화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것은 육이오도 아니고, 육영수도 아니며, 박찬국도 아니고, 왕이 될 육이오상도 아니다.
대충 비슷하게 생긴 여자는, 형이상학과 결혼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피직스의 형이상학과 결혼하게 되는 것인가?
전문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그것들을 많이 보여준다.
아다왕이 야하게 입고,
......
우리가, 내가 박이문의 노장 철학이라는 소책자를 읽을 때, 얼마나 우리는 뇌자에 사로잡혔었는가? 그때를 다 기억할 수가 없다. 여름방학이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너무 평이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어느 버려진 학교에서, 그것을 읽는 이들이 있겠다 싶다. 그것은 영원한 뇌자의 과정이다. 그것의 높이가 정말, 사람의 뇌의 것과 비슷하다 여겨졌다. 나중에, 서강대에서 세미나를 하길래 갔더니만, 너무 늙었고, 뇌가 따라서 함께 늙은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분명히 뇌자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왕권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말하기를 좋아한다. 왕권이란 절기마다 뇌자를 실험하고, 실험에 실패하면, 제사였다 말하는 것들의 연속에 불과하다.
광주에서 누군가 호락논쟁에 관한 명문을 쓰면, 한양에서 누군가, 대군이나, 세자, 심지어는 왕까지도, 왕권신수설을 과다 복용한 나머지, 머리를 붙였다 떼는 짓을 하는 것은,
한글의 공포이고,
베토벤의 운명이고 그렇다......
'클래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에 대한 두 가지 방향: 화엄과 천은 (4) | 2024.10.09 |
---|---|
사랑하는 국제 영화제 (16) | 2024.10.05 |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타락의 몇 가지 원리 (9) | 2024.09.19 |
신사론: 인사불성 (3) | 2024.09.03 |
어째서 하나님은 아랍 사람들에게 석유를 주셨는가? (1) | 2024.06.03 |